물고 물리는 ‘남의 텃밭’ 뺏기
▲ LG와 웅진의 시장 쟁탈전이 과열 양상을 띠면서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은 사진은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이자녹스’(위)와 웅진 코웨이의 정수기. |
LG와 웅진의 다툼이 노골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은 최근 LG전자가 정수기 방문판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이는 지난해 10월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의 새 사령탑에 오르면서 신성장동력으로 헬스사업 분야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가 발판이 됐다.
그동안 정수기·공기청정기 제조 전문업체 진텍에서 제품을 받아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정수기를 판매해오던 LG전자는 지난 연말 정수기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LG가 하는 것이니만큼 ‘프리미엄’을 내세웠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올 초 창원공장에 정수기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3%대에 머물고 있는 국내 정수기 시장 점유율도 올해 안에 12%까지 대폭 늘리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LG는 또 가습기에 공기청정기 기능까지 더한 신상품 ‘에어워셔’를 출시하며 업계 1위 웅진을 압박해나갔다.
문제는 자체 생산이 아니라 LG전자가 정수기 방문판매에도 뛰어든다는 것이었다. LG전자는 현재 방문판매원을 교육 중이며 인원도 차차 늘려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하 LG전자 사장은 지난 2월 23일 한 행사장에서 정수기사업에 대해 “방문판매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말했다. LG의 정수기 방판은 올 하반기에 가서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웅진을 비롯해 기존 정수기업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LG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중소업체의 영역까지 넘본다’는 것이 반발의 핵심 이유였다. 즉 LG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에 진출할 경우 과열경쟁을 일으켜 결국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는 얘기다.
LG전자 측은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제품으로 최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여기에다 “매출 1조 원이 넘는 웅진이 어떻게 중소업체냐”고 반문하고 있다. LG가 웅진을 타깃으로 삼은 까닭은 웅진의 반발이 가장 큰 데다 웅진이 국내 정수기 시장에서 절반 가까운(48%) 점유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웅진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재계순위 30위권에 해당하는 대기업에 속한다.
이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먼저 LG가 정수기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해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상조사업을 하려던 삼성이 그런 것까지 해가며 돈을 벌어야 하느냐는 이건희 회장의 질타를 받고 계획을 멈춘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재계 관계자는 “웅진 역시 내로라하는 대기업인데 LG가 들어온다고 해서 우려를 표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경쟁을 펼치는 게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LG의 심기를 먼저 건드린 쪽은 웅진이다. 웅진은 지난 2009년 10월 홍준기 웅진코웨이 대표이사 사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화장품 사업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국내에서 화장품 사업을 재개할 뜻을 내비쳤다. 1999년 외환위기로 인해 코리아나화장품 지분을 매각한 후 꼭 10년 만에 화장품 사업 재개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그전에도 이미 웅진이 화장품 사업을 재개할 것이라는 소문은 자자했다. 그러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1999년 코리아나화장품 지분을 매각할 당시 꺼냈던 “향후 10년간 국내에서 화장품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럼에도 화장품 사업과 방문판매에 대한 노하우, 제품 개발, 기술을 간직하고 있던 터여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됐다. 게다가 비록 국내 시장에서는 철수했지만 2000년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중국에서 화장품 사업을 계속해오던 상태였다.
과거 웅진은 1988년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과 함께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국내 시장에서 4위에 오르며 쾌속성장을 했다. 특히 방문판매에서는 점유율 2위까지 기록한 바 있다. 웅진이 이 같은 노하우와 경력,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국내 화장품 시장의 판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홍 사장이 화장품 사업 진출 의사를 밝힌 후 10개월 만인 2010년 8월, 웅진은 마침내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웅진이 타깃으로 삼은 것은 프리미엄 화장품. 웅진코웨이가 출시한 고기능성 셀에너지 화장품 브랜드 ‘리엔케이’(Re:NK)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평가와 실적을 기록했다. 톱스타 고현정 씨를 앞세운 스타 마케팅도 한몫했다.
이에 LG는 바짝 긴장했다. LG가 긴장했다는 것은 LG가 취한 일련의 조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LG생활건강은 웅진코웨이 홍준기 사장이 국내 화장품 사업 진출 의사를 표명한 직후인 2009년 11월 87.9%의 지분을 인수했던 더페이스샵의 나머지 지분 12.1%를 전량 인수해 업계 2위 수성을 확고히 했다.
LG생활건강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10년 12월 웅진의 리엔케이에 대해 ‘상표권침해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자사의 헤어케어브랜드인 ‘리앤’과 흡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LG생활건강이 제기한 가처분소송은 장기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 같은 두 대기업의 물고 물리는 싸움이 재계는 물론 시장에서 좋게 보일 리 만무다. 게다가 감정싸움으로까지 비쳐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기업 모두 내수에 치중하기보다 수출에서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증권사 투자분석팀 연구원은 “정수기와 화장품이 모두 아직까지는 내수 위주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포화상태에 다다른 내수시장에서 점유율 몇%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붓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LG는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와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웅진은 중국시장에서의 선전을 발판으로 수출에 더 많이 신경 쓴다면 둘 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두 대기업이 경쟁의 와중에 ‘윈-윈’(Win-Win)의 길을 찾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임준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