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어야 해요. 사람 없는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 걸 잊어요….”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에 왜 그렇게 빨려 들어갔을까. 잊을 수 없는 순간들, 그러나 이제는 덤덤한 삶에 복무하기 위해 놓아버려야 하는 순간들을 떠올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살아오면서 최고의 순간이라 고백할 순간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
그 순간은 진실한 사랑을 발견한 순간일 수도 있고, 종종 빠져드는 내 안의 함정을 발견한 순간일 수도 있겠다. 기대치 않은 행운의 순간일 수도 있고, 종종 외향적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세상이 인정해주는 업적으로 일군 시간일 수도 있겠다.
당신은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리고 고백한다. 그때 그 순간이 최고의 순간인지 몰랐었던 이유는 모든 감정을 삼켜버릴 만큼 ‘나’를 덮치고 지나간 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최고의 순간은 화려했던 시간일 수만은 없겠다. 그 순간은 생의 의미를 남기며 자꾸자꾸 되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이므로. 어쩌면 그 이후의 삶은 그 순간에 대한 각주인지도 모른다.
그 ‘최고의 순간’ 얘기를 윤여정 선생에게 기자가 물었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 일이 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냐고.
“최고의 순간은 없겠죠. 난 최고, 그런 말이 참 싫어요.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 그냥 최중만 하면 안돼요?”
어찌 최고의 순간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아카데미가 전부가 아니라는 대답에선 선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슬쩍 훔쳐본 것 같다. 거기엔 외적인 행운에 취하지 않는 당당함이 있었다. 그런 이의 힘은 외적인 불운에도 기죽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그 불운의 징검다리를 건너온 데서 온다.
인기를 모으고, 부를 모으고, 젊음을 추구하게 하는 일은 현대사회가 조장하는 일이다. 그런데 삶의 답은 거기에 있지 않은 것 같다. 할리우드 스타 짐 캐리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고 인기인이 되어 희망하는 일을 다 이루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 테니까.”
내 힘으로 돈을 벌고, 내 이름을 지켜낼 만큼의 힘을 챙기는 일은 사회공동체에 스밀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이것저것 내야 하는 것들이 많고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취업도 되지 않고 돈 버는 일까지 막혀 있다면? 요즘 우리 20대가 그렇지 않나. 사회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사는데 무능의 도장까지 찍히면 어떻게 자신감 있게 세상을 대면하고 이웃과 교류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남들처럼 취업해서 혹은 창업해서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보는 일은 중요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그렇게 살다가 놓쳐버린 것 속에 생의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 찾아든다.
놓쳐버린 일은 멀리 있지 않다. 별 일 아닌 것 같은데도 소중한 일, 삶의 기본이 되는 그 일은 ‘나’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다. 당신은 아는가. ‘나’는 어떤 일에 분노하며, 어떤 일에 어떻게 안달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안해하는지, 두려워할 때 ‘나’의 호흡은 어디에 걸려있는지. 그렇게 나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어떻게 지쳐왔고 지쳐가는지, 그 기대를 거둬낼 힘이 생기지 않으면 진짜 내 감정과 놀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내 표정을 찾아야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킬 수 있게 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