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택 총재 사상 초유 리그 중단 구설…역대 총재들 낙하산 논란부터 게이트 연루까지 풍파 겪어
정지택 제23대 KBO 총재는 2021년 1월 1일 임기를 시작했다. 5선 의원 출신인 정운갑 전 농림부 장관 슬하 5남 2녀 중 3남이다. 그의 동생은 정우택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정 총재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 25년 동안 경제 분야 관료 길을 걸었다. 공직생활을 마친 뒤엔 중앙종금 부회장을 지냈다. 그러다 두산 IT부문 총괄사장으로 ‘두산맨’이 된 그는 두산테크팩BG, 두산산업개발, 두산건설 등에서 대표를 역임했다. 두산중공업 부회장으로도 재직했다. 20년 정도의 세월을 두산에서 보냈다.
정 총재의 리더십은 7월 코로나19 4차 대유행 과정서 시험대에 올랐다. KBO리그 현역 1군 선수들이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 선수단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정 총재는 7월 12일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을 결정했다. 기존 KBO 코로나19 통합 매뉴얼 상으론 “구단 내 확진자 및 자가격리 대상 인원수와 상관없이 구단 대체선수를 투입해 리그 일정을 정상 진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KBO가 기존 매뉴얼을 뒤집으면서 리그 중단을 결정하자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KBO는 “향후 구단 당 1군 엔트리 선수 50% 이상이 확진 및 자가격리 대상자가 될 경우 2주간 해당 경기를 순연한다”는 규정을 추가했다. 원칙을 뒤집으면서 규정을 소급적용한 셈이다. 여론의 화살은 정 총재를 향하고 있다. 원칙을 깨면서까지 구단 내 확진자가 발생한 NC와 두산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한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야구계 일각에선 “두산맨 출신 총재가 두산을 위한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KBO 총재를 둘러싼 구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권이나 경제계에서 이름을 알린 인사들도 KBO 총재직을 맡은 뒤엔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정권 실세가 KBO 총재직에 낙하산을 타고 안착하는 일이 빈번했던 까닭에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슈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현직 총재 14명 가운데 8명이 장관 출신이다.
1세대 KBO 총재들은 정치권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관료 출신 원로들이었다. KBO 초대 총재는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이었다.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그룹 샵의 멤버 서지영의 할아버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 전 장관은 1981년부터 1988년까지 KBO 총재로 재임했다. 서 전 장관은 유신정권 시절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전두환 정권에서 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추대한 초대 총재다.
서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재학 시절 담임교관이었으며 그가 육군 참모총장을 맡고 있었을 때 부관이 전두환이었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 후원자로도 알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군사정권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사였다. 서 전 장관은 프로야구 출범 초기 KBO를 정치 외압으로부터 지켜내 리그 기틀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만큼 전두환 정권 시절 KBO 총재는 ‘상왕’이라 불릴 정도의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한 셈이다.
서 전 장관 후임으로 이웅희 전 문화공보부 장관이 취임, 1988년 4월부터 1992년 5월까지 3~4대 총재를 지냈다.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를 거쳐 MBC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 출신으로 용인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 전두환 정권에 서종철 전 장관이 있었다면, 노태우 정권의 KBO 총재는 이웅희 전 장관이었다.
이 전 장관 임기 중 야구계엔 굵직한 사건이 있었다. 먼저 서울 연고 프로야구단인 MBC 청룡이 럭키금성그룹(현 LG)에 매각됐다. 그리고 전북 연고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하면서 8개 구단 체제가 완성됐다. 이 전 장관이 임기를 마친 뒤 KBO 총재 1세대가 막을 내렸다.
2세대 KBO 총재들은 ‘스쳐가는 정권 실세들’이라는 단어로 압축이 가능하다. ‘자진사임의 시대’다. 1992년 5월 27일부터 1993년 7월 9일까지 409일 동안 재임했던 5대 KBO 총재는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었다. 이 전 장관은 KBO 총재 임기 중 희대의 방산비리 사건으로 알려진 ‘율곡사업 게이트’에 연루됐다. 노태우 정권 시절 국방부 장관들에게 칼날이 휘몰아쳤고 이 전 장관은 총재직을 내려놨다.
6대 KBO 총재는 오명 전 철도기술연구원장이다. 오 전 장관은 1993년 11월 26일 취임한 뒤 25일 만에 사임해 역대 최단 기간 재임한 총재다. 그가 사임한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직을 제의받았기 때문이었다. 7대 KBO 총재는 권영해 전 국방부 장관으로 1994년 3월 21일부터 1994년 12월 23일까지 277일 재임했다. 그 역시 정부의 '스카우트'를 받아 KBO를 떠났다. 권 전 장관은 지금의 국정원장에 해당하는 국가안전기획부 부장 제의를 받고 총재직을 내놨다.
권 전 장관의 후임자는 박근혜 정부 때 ‘왕실장’으로 불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 전 실장은 현역 의원 신분으로 KBO 8대 총재로 부임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부터 야구계 전반에 걸쳐 ‘낙하산 거부반응’이 심했던 상황에서 김 전 실장 부임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1995년 2월 9일부터 1996년 6월 8일까지 485일을 재임했던 김 전 실장은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KBO 총재직을 내려놨다.
김 전 실장 후임도 정치인이다. 3선 국회의원, 재정경제원 장관(현재 기획재정부로 통합)을 지낸 홍재형 전 국회 부의장이다. 홍 전 부의장은 1996년 7월 4일부터 1998년 5월 6일까지 9~10대 총재를 지내다 자진 사임했다. 자진사임 이면엔 종합금융회사 인허가 특혜 의혹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9년 2월 정우택 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경제청문회’에서 홍 전 부의장을 향해 “재무부 출신 관료들의 전관예우가 금융권의 총체적 부실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정 전 의원이 2012년 총선에서 홍 전 부의장 4선을 가로막은 지역구 경쟁자인 점이다. 여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 전 의원은 정지택 현 KBO 총재의 동생이다. 홍 전 부의장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상임 고문단에서 활동한 바 있다.
홍 전 부의장이 KBO 총재직에서 물러난 자리는 정대철 전 의원이 채웠다. 정 전 의원 임기는 길지 않았다. 취임한 지 정확히 100일 만에 사임했다. 대전 소재 건설업체 ‘경성’이 지역 민영방송 사업권을 따내려 유력 정치인들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했던 이른바 ‘경성 게이트’에 연루돼 법정에 선 까닭이었다.
이후엔 KBO 총재 3세대 문이 열렸다. 시작은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KBO 총재 취임이었다. 박 전 회장은 1998년 9월 23일부터 2005년 11월 25일까지 2611일을 재임(총재대행 및 12~14대 총재)하며 역대 최장수 총재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퇴임 사유는 일신상 이유였다. ‘일신상 이유’의 내막은 퇴임 이후 드러났다. 박 전 회장은 이후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 원을 선고받았다. 성지건설을 인수하며 재기를 노렸던 박 전 회장은 2009년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박 전 회장이 물러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KBO 총재로 발탁됐다. 신 전 부의장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7선 의원 출신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500만 관중 돌파 등 업적도 있지만 논란도 많았다. 히어로즈의 장원삼 현금 트레이드 파문, 프로야구 도박 파문 등이 신 전 부의장 재임 시에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임기를 시작한 신 전 부의장은 이명박 정부 초반인 2008년 12월 16일 사임했다. 15~16대 총재다.
이후 야구계에선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강구했다. 이명박 정부 실세가 KBO 총재로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로 급하게 신임 총재를 추대했다. 17~18대 총재를 지낸 유영구 전 명지학원 이사장이었다. 유 전 이사장은 2009년 2월 취임 당시 명지학원 비리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야구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2011년 5월 2일 유 전 이사장은 KBO에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그 다음 날 법정구속됐다.
19~21대 총재 바통은 다시 기업 오너가 이어 받았다. 범LG가로 잘 알려진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었다. 구 회장은 무보수로 KBO 총재직을 맡는 파격 행보를 보여 화제를 모았다. 10개 구단 체제로 리그를 개편하고 중계권 500억 원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 구 회장도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구 회장 재임 당시 프로야구계는 사상 초유의 승부조작 게이트에 휩싸였다. 여기다 ‘최규순 게이트’라 불리는 심판 금품 요구 사건이 야구계를 강타했다. KBO 직원이 운영하는 가족회사에 입찰 특혜를 줬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2017년 국정감사까지 불려간 구 회장은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2017년 12월 31일을 끝으로 2321일의 임기를 마쳤다.
구 회장 후임자는 서울대 총장 출신 ‘야구광’ 정운찬 전 국무총리였다. 정 전 총리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회를 기점으로 논란 중심에 섰다. 금메달을 목에 건 야구 국가대표팀의 선발 과정 등을 놓고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KBO 총재가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 전 총리는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동열 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난하는 뉘앙스를 보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20년 10월 13일 정 전 총리는 연임을 포기하면서 KBO 총재직을 내려놨다. 정 전 총리의 후임자는 현 정지택 총재다.
KBO 총재 비사는 ‘다사다난’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다. 한 야구계 원로는 “수없이 많은 정·재계 실세들이 KBO 총재직을 거쳤다”면서 “일부 총재들이 연루된 게이트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중대 사건들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제는 총재 이름이 거론되는 논란이 더 이상 불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프로야구가 한국 사회 일부로 정착한 상황에서 총재 이름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야구계의 악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한때 ‘실세 집합소’라 불렸던 KBO 총재의 연봉은 ‘억’ 소리 나는 규모로 알려져 있다. KBO 규약에 따르면 ‘임원(총재, 사무총장) 보수는 총회가 정한 별도의 임원 임금 지급규정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정확한 액수는 표기되지 않았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KBO 총재 연봉은 3억에서 4억 원 사이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 외에 판공비가 지급되는데, 이 판공비 규모는 정부 기관장 연봉 급일 정도로 높다”고 주장했다.
역대 KBO 총재 중에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현직에 있는 정지택 총재가 연봉을 지급받지 않았다. 정 총재는 “코로나19 고통을 함께 분담하겠다”는 취지로 무보수의 길을 택했다. 판공비는 정상적으로 지급받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