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용과 넘쳐흐르는 케미 과시…첫 로맨틱 코미디 도전 ‘로코 요정’ 수식어 얻어
“처음 미팅할 때 들었는데 원래 원작 작가님께서 담이를 처음 그릴 때 저를 모티브로 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웹툰 원작 작품을 처음 하다 보니까 내가 원작 캐릭터대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부담이 됐던 게 사실이었는데, 그 말씀을 듣고 뭔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좀 더 생겼던 것 같아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는 여러모로 이혜리에게 처음이었다. 판타지가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로도,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라는 면에서도 그랬다. 더욱이 자신이 이 정도로 많은 분량을 소화하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부담이 있었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이혜리 특유의 ‘하늘을 찌를 만큼 낙천적인 성격’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극 중 이혜리는 털털하면서도 시크하고 솔직한 성격을 가진 사랑스러운 요즘 대학생 이담 역을 맡았다. 사랑이 제일 귀찮은 모태 솔로였지만 우연한 사고로 얼떨결에 한집 살이를 하게 된 999살 먹은 구미호 신우여(장기용 분)에게 첫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벌어지는 달달한 로맨스를 그렸다.
“요즘 친구들은 적극적이면서 솔직하고, 그러면서도 자기감정에 신중하고 또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담이도 그런 면이 있어요. 또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이외의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개인적인 부분도 많고, 트렌드에 되게 예민하면서도 민감한 친구라고 생각했죠. 어찌 보면 차가운 것 같은데 속으론 여린 마음을 가진 친구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낯도 별로 안 가리고 두루두루 잘 지내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담이는 경계를 하는 타입인 거죠(웃음). 저는 사람들한테 다 관심도 많고 궁금하고 그런데 담이는 자기 주변 사람들이나 딱 자기에게만 더 관심이 많지 않을까요? 저랑은 한 80% 정도만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그런 이담의 삶에 성큼성큼 들어와 떡하니 자리 잡은 구미호 신우여 역에는 장기용이 분해 이혜리와 넘쳐흐르는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다. 장기용은 2014년 이혜리의 주연 데뷔작인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는 두 배우 모두 어렸고 자기 앞가림에 바빠서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는 게 이혜리의 이야기다.
“제가 ‘선암여고 탐정단’을 할 때 아마 스물한 살이었나, 그랬어요. 저도 연기를 한 지 얼마 안 됐고 완전 신인이었기 때문에 촬영을 하면서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어요. 장기용 씨랑도 대화도 많이 못 나눠보고 친해지지 못했는데, 그래도 사람을 한 번 보니까 이 분이 (그 후로) 어떻게 지내는지 자연스럽게 찾게 되더라고요. 늘 멀리서 응원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 같이 작품을 하게 돼서 그때와는 또 많이 다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엔 많이 어색하고 낯선 게 끝까지 갔지만 이번엔 진짜 서로 의지하면서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했습니다(웃음).”
첫 주연작은 ‘선암여고 탐정단’이었지만 이혜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배우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알린 작품은 ‘응답하라 1988’이었다. 2016년 종영했으니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혜리를 보면 ‘덕선이’를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캐릭터가 너무 찰떡처럼 잘 어울렸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는지, 이후 어떤 작품을 찍든 이혜리는 ‘덕선이의 XX 버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었다. 배우의 길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계속 고민해야 하고, 한편으론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혜리는 “서운함보단 감사함을 느낀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응답하라 1988’을 인생 드라마라고 말씀해 주시고, 덕선이가 정말 사랑스러웠다고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렇게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남는 작품을 못 할 수도 있었는데 ‘응답하라 1988’을 만난 것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죠. 사실 그렇게 기억해주시고 말씀해주시는 데엔 서운함보다 감사함이 더 큰 것 같아요. 덕선이도 그렇고 담이도 그렇고, 앞으로 제가 연기하게 될 캐릭터는 다 제 모습에서 비롯된 걸 테니까요. 어떤 일정 부분은 그런(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거기서 서운해 하기보단 시간이 갈수록 시청자 분들의 마음에 남을 인생 캐릭터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으려고 해요.”
서운함을 감사함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데엔 그의 한없이 밝은 성격이 한몫하진 않았을까. 동세대 연예인들 중 텐션이 높은 연예인을 꼽으라면 최상위권을 차지할 이혜리는 인터뷰 강행군 속에서도 시종일관 ‘비글 미(美)’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tvN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에서 다른 출연진도 쫓아가지 못할 에너지를 마음껏 뽐내왔던 이혜리는 정작 자신에 대해선 “텐션이 높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생각 잘 안 해봤어요(웃음). 저 별로 텐션 안 높은데? 그냥 즐거운 걸 좋아하고 재밌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보다 텐션 높은 분들이 더 많던데요! 그런 분들 보면 에너지가 정말 넘친단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렇게 텐션이 높아 보이는 비결은 따로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성격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요(웃음)?”
이처럼 늘 흥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이혜리는 최근 훈훈한 소식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 배우 전향 후 2016년부터 꾸준하게 기부를 해오던 그는 6월 9일 생일을 맞아 유니세프에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 기금은 여자 어린이들의 위생용품을 지원하는 ‘위시’(we=she) 캠페인에 전액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에는 아시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스쿨스 포 아시아’에 1억 원을 기부하며 최연소로 유니세프 고액후원자 모임 ‘아너스클럽’의 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선한 영향력을 뿌리고 다니는 이혜리만의 ‘기부 철학’ 같은 게 있진 않을까.
“사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부끄럽고 쑥스러운데(웃음). 제 생각에 기부라는 건 어쨌든 제게도 좋은 행위이지 않나 싶거든요. 제게 여유라든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시야를 주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좀 더 여러 가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시간과 상황이 주어지는 거거든요. 그러니 제게도 기부는 늘 감사한 일이죠(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