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공공기관이 민간사업 가로채” vs 시 “수수료율 낮추려는 것”…장애인예술단 운영 공간 마련 의혹엔 “상관없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한직협)는 ‘인천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인천판매시설)’을 1998년부터 운영해 왔다. 판매시설은 장애인 복지시설로, 휴지와 인쇄용지 등 중증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을 유통한다. 보건복지부가 사업 권한을 한직협에 부여함에 따라 한직협은 1996년부터 전국에 판매시설을 운영해왔다.
사건의 발단은 인천시가 인천판매시설을 직영화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인천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이란 이름에 ‘시립’ 두 글자를 추가해 ‘인천시립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을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천시는 전국 최초 시도로 수수료를 낮추고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인천시의 직영화 과정에서 잡음이 무성하다. 우선 인천시는 시설 운영을 위해 5월 24일 인천판매시설에 임대차 계약 종료를 알렸다. 인천시는 보건복지부로부터 6억여 원 국비를 지원받아 2012년 9월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 운영 용도로 건물을 준공했고, 이 건물을 인천판매시설에 9년여 무상 제공해왔다. 장애인복지법 48조(국유·공유 재산의 우선매각이나 유상·무상 대여)에 따라 지자체는 장애인복지시설에 건물을 무상 임대할 수 있다.
인천시는 애초 동춘동에 건물을 지었다가 이를 매각한 뒤 2019년 7월 원창동에 건물을 새로 준공했는데, 인천판매시설은 이 과정에서 함께 옮겨왔다. 인천시는 이사한 뒤 인천판매시설과 맺은 2년 무상 임대차 계약이 6월 30일 끝나자 계약 종료를 알렸다. 인천시는 인천판매시설에 무상 임대해줄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이 건물은 인천시가 넘겨받아 쓸 예정이다.
애초 건물 무상 임대는 인천시 필요에 의해 이뤄졌다. 2012년 말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율은 약 0.3% 정도로 1% 기준에 한참 모자랐던 인천시는 이 건물을 준공했다. 건물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면 국비 6억여 원을 반납해야 했던 인천시는 인천판매시설에 무상임대를 제공했다.
이어 인천시는 보조금 지급 중단을 결정했다. 인천판매시설은 매년 1억 7000만 원 보조금을 지원받아왔다. 보건복지부 국비 지원 6800만 원과 인천시 시비 지원 1억 200만 원을 합한 금액이다. 인천시는 사전 협의 없이 보조금 중단을 인천판매시설에 통보했다.
판매시설 운영 주체인 한직협은 인천시의 임대차 계약 종료한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보조금 중단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직수 한직협 사무총장은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다른 곳을 알아보면 되지만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불법·위법 사안이 전혀 없는데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건 부당하다”며 “보조금을 받아도 마이너스인 상황인데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 30조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보조사업자가 보조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하거나, 법령, 보조금 교부 결정의 내용 또는 법령에 따른 중앙관서의 장의 처분을 위반하거나 거짓 신청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받은 경우 보조금 교부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
인천시는 인천판매시설이 법을 위반하진 않았지만 인천시가 관련 사업을 직영화한 만큼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시는 발생한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사정 변경의 경우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보조금법 21조 2항을 내세웠다. 인천시의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직영화가 ‘그 밖의 사정 변경’이라는 것이다.
인천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기존 사업자가 법률이나 규정을 거스른 건 아니다”라면서도 “인천시가 관련 사업을 시작했는데 보조금을 다른 기업에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이어 위 관계자는 인천시가 “기존 수수료율을 낮추고 좀 더 투명한 운영을 위해서 인천시가 직영화를 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판매시설은 직원 7명 전원이 인천시에 넘어가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인천시는 지난 6월 기존 사업장 직원들을 고용했다. 신직수 사무총장은 “보조금 지급 중단 사실을 알자 직원들이 동요했고, 그 사이 인천시가 물밑에서 채용해주겠다고 한 것”이라며 “직원들이 동시에 사표를 써서 굉장히 당황했다. 직원들이라도 있으면 다시 사업을 할 수 있는데, 강제 폐업 상황까지 놓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 사무총장은 “인천시의 명백한 업무방해다. 인천시는 고용승계라고 하는데, 우리 인천시의 위탁사업자가 아니라 임대차 계약을 맺은 관계에서 고용 승계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느냐”며 “명백히 뺏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천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7명 전원을 고용한 건 맞다”면서도 “직원들이 원한 것”이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인천시는 판매시설을 직영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민간 사업자의 사업장, 직원, 보조금을 그대로 가져온 셈이다.
인천시가 잡음을 내면서까지 판매시설을 직영화한 이유를 두고 박남춘 시장이 추진하는 시립장애인예술단 운영을 위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박남춘 시장은 2022년 1월까지 원창동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 용도의 건물 2층을 증축한 뒤 20명 규모의 시립장애인예술단을 전국 지자체 최초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병래 인천시의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인천시의회 추가예산편성에서 증축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대신 장비구입비와 관리운영비 등을 확보한 인천시는 원창동 건물 1층 일부를 활용해 오는 10월부터 단원을 뽑는 등 시립장애인예술단을 우선 운영하기로 했다.
원창동 건물은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로 일부 공간이라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자립과 관계자는 “2층을 증축해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면 허용될 수도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해당 건물 1층을 일부라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판매시설 운영 주체가 인천시라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운영도 배제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현장 실사를 나오지 않는 한 문제 제기가 될 가능성은 낮다.
이에 대해 인천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그것(시립장애인예술단 운영)과는 상관없는 부분"이라며 "일부 용도 변경 신청을 복지부에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런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는 인천시의 판매시설 직영화로 발생할 이득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기존 6.2%의 수수료를 대폭 낮춰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신 사무총장 말은 다르다. 신직수 한직협 사무총장은 “수수료를 낮추겠다는 건 결국 세금이 더 들어가는 것”이라며 “보조금으론 직원 4명 정도의 인건비밖에 안 된다. 기존의 수수료를 받으면서 운영해야 겨우 나머지 인건비와 운영비가 나오는데, 같은 예산으로 수수료를 낮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실제 인천시 관계자 또한 “보조금으론 4명의 인건비를 충당하고 시비를 더 들여 3명의 인건비를 메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세금을 더 들여 수수료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신직수 사무총장은 “시가 운영하면 더 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협의도 없이 보조금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빼가는 것이 올바른 행정이라고 볼 수 없다”며 “장애인복지시설의 경쟁을 부추기지 말라는 것이 보건복지부 지침이다. 우리가 폐업하지 않으면 결국 경쟁해야 하는 건데 인천시는 세금을 더 써서 승자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갈등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자립과 관계자는 “지자체와 민간의 갈등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인천시가 한직협과 어떤 합의를 도출하는지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