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기술’ 팔아먹기 봉이 김선달 뺨치네~
▲ 윤상조 플래닛82 대표.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생각만 해도 황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국내 전자업계에서 벌어졌다. 지난 2005년 11월 지식경제부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인 전자부품연구원은 나노기술을 이용한 초고감도 이미지센서 기술(SMPD) 개발 성공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아무리 어두운 암실에서라도 사진촬영이 가능하다는 꿈의 기술이었다. 100억 원이 투입된 국책과제의 눈부신 성과였다. 한 유망 중소기업은 거액을 들여 이 기술을 이전해 갔다.
그런데 황당한 반전이 벌어졌다. 국책연구기관이 개발했다고 한 SMPD 기술이 6년 만에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이 민간 기업을 상대로 사기를 친 꼴이 됐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책연구기관은 물론 지도·감독 의무가 있는 정부기관도 그 책임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그 기막힌 사연 속으로 들어가봤다.
센서와 전자부품사업을 주종목으로 하는 중소기업 ‘플래닛82’는 한때 코스닥의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2001년 처음 상장된 이 회사는 2005년 하반기 두 달 동안 주가가 무려 28배나 급등하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한때 코스닥 상장사 시가총액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전자부품연구원이 개발한 SMPD 기술을 거액을 들여 이전한 결과였다. 플래닛82가 전자부품연구원으로부터 2003년 12월 50억 원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이전해간 SMPD 기술은 나노기술을 이용해 어두운 암실에서도 촬영을 가능케 하는 신기술이었다. 2005년 11월 전자부품연구원은 기술개발자 김 아무개 박사(46)의 주도로 SMPD 기술 상용화 성공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8년 플래닛82는 참담한 결과를 맛보게 된다. 한때 5만 원에 육박하던 주식이 100원짜리로 급락하면서 상장폐지된 것. 파국의 시작은 2007년 KBS가 방송을 통해 SMPD 기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였다. 당시 KBS는 전자부품연구원의 김 박사가 개발한 SMPD 기술은 기존 기술과 차별화된 점이 없으며, 나노기술조차 이용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기술시연회 역시 적외선을 이용한 눈속임이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전자부품연구원의 상급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수년간의 조사와 재조사를 거듭한 끝에, 지난 1월 결국 SMPD 기술을 허구로 결론지었다. 전자부품연구원과 개발자 김 박사의 100억 원대 국책과제가 만천하에 실체가 없는 기술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개발자 김 박사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여러 기술적인 이유를 대며 거짓말을 반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거짓 기술을 고스란히 이전해 막대한 피해를 본 플래닛82 윤상조 대표는 현재 전자부품연구원을 상대로 계약금을 제외한 기술이전대금 41억 원에 대한 반환청구서를 낸 상태다. 3월 7일 기자와 만난 윤 대표는 “처음에는 설마 했다. 우리가 이전해 간 SMPD 기술은 정부가 100억여 원을 들여 직접 투자한 R&D(국가 연구개발)사업이다. 기술시연회 이후 IBM 등 유수의 기업들이 호평한 바 있었기 때문에 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기술이전금 50억 원 이외에도 연구개발비만 100억 원이 투자됐다. 피해가 막대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지난 1월 전자부품연구원을 상대로 낸 반환청구금 41억 원은 연구개발비 100억 원과 이전 계약금을 제외한 최소한이다. 회사는 상장 폐지되었고 임직원들은 퇴직금도 못 받고 나간 상황이다. 최소한의 잔금이라도 받아서 임직원들 퇴직금과 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회생의 기회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윤 대표의 반환청구서를 받은 전자부품연구원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3월 10일 전자부품연구원 측에 반환청구에 대한 계획을 물어봤다. 전자부품연구원 측은 “현재 기술 개발자인 김 박사가 재조사에 대한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때문에 아직까지 반환청구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 더 이상 답변드릴 것이 없다”고 밝혔다. 더 놀라운 것은 전자부품연구원에 확인한 결과, SMPD 기술 개발자인 김 박사가 여전히 재직 중이라는 사실이다. 혈세 100억 원을 공중에 날려버린 비양심 연구자에 대한 제재와 징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정상적인 절차로는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자 윤 대표는 지난 1월 31일 전자부품연구원의 감독관리 책임이 있는 지식경제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2월 9일 지경부는 회신을 보내왔다. 회신공문에는 “재조사 결과 이의제기 신청기간 완료 후 후속 조치를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며 불명확한 답변을 했는가 하면 “기술료 반환 문제는 우선적으로 전자부품연구원과 귀사 간에 해결할 사항이다. 당사자 간 원만히 처리될 수 있도록 협조 요청하겠다”는 등 하급기관에 책임을 떠넘기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