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죽는다 오너들 이빨 ‘꽉’
▲ 삼성전자(왼쪽)와 LG전자 3D TV. |
두 업체가 물러서지 않는 싸움을 벌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적으로는 3D TV 방식을 둘러싼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지만, 지난 연말 승진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지난해 ‘구원투수’로 등판한 오너 CEO(최고경영자)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3D TV를 둘러싼 삼성전자와 LG전자 간 자존심 싸움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양심이 없다.”
“이성을 잃었다.”
개인 간의 다툼 과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세계 굴지의 전자회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서로를 향해 내뱉은 일갈들이다. 한 국가 내 두 회사의 다툼은 해외 언론이나 리뷰 사이트에서도 화제 거리다. 국내나 해외 언론들이 설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두 회사들은 생존경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절박하다.
두 회사의 자존심 싸움은 비단 이번 사건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다. 백색가전 휴대전화 컴퓨터 등 거의 전 품목의 전자제품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여왔고 이 중 TV 관련 품목에 대해서만큼은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여 왔다. 이런 경쟁이 3D TV 방식을 둘러싸고 결국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두 회사 간 경쟁은 창립 때부터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삼성그룹을 창업한 고 이병철 회장과 LG그룹을 창업한 고 구인회 회장은 한때는 사돈을 맺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였다. 경남 진양군 자수보통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두 사람은 1957년 구 회장의 삼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 회장의 차녀 숙희 씨가 결혼하며 사돈이 됐다. 두 사람은 1964년 라디오서울과 동양TV에 공동출자하며 동업도 했다. 당시 두 사람의 동업이 원만하게 이뤄졌으면 지금까지 두 회사 간 신성불가침 영역이 존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양가에서 파견된 임직원들 간의 알력다툼 등으로 동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삼성과의 불화를 원치 않던 구 회장이 방송 사업을 삼성에 넘기고 철수했다. 게다가 삼성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를 설립,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와 대립각을 세우며 두 사람은 남보다 더 먼 사돈이 되고 말았다. 이후 전자는 물론이고 식품 의류 화학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두 가문은 라이벌이 됐다.
수십 년간 이어지던 대결 구도는 최근 TV나 휴대폰 시장에서 두 회사가 1, 2위를 다투면서 더욱 격화됐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해 중국 LCD 패널 공장 건립을 둘러싸고 두 회사는 현지에서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TV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두 회사 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향후 몇 년간 급성장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국 LCD TV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현지 공장 허가권을 따내는 것이 필수 조건이었다. 중국 정부는 2개 회사에만 공장 허가권을 내주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고 여기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업체 등이 참여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이 한 국가에서 삼성 LG 두 업체가 출사표를 던졌다. 때문에 한국 업체 두 곳이 모두 허가권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삼성과 LG는 현지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벌였다. 중국 LCD 시장에 먼저 뛰어든 LG에 비해 조금 늦게 뛰어든 삼성의 경우 지난해 이재용 사장까지 나서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부주석을 만나는 등 각별한 공을 들였다. 결국 중국 정부가 입장을 바꿔 지난해 삼성과 LG 두 업체 모두에게 공장 설립 허가권을 내줬다. 현재는 중국 정부의 최종 승인만 남은 상황이다.
삼성에 비해 느긋한 입장이었던 LG는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삼성은 쾌재를 불렀다. 올해 초 기자와 만났던 LG의 한 관계자는 “LG가 먼저 추진한 사안인데 삼성이 뒤늦게 뛰어들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됐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공교롭게도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중국 쑤저우(蘇州) LCD 공장 허가권을 둘러싸고 이면계약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공장 허가를 받기 어려운 삼성이 일부 기술을 중국 정부에 넘기고 공장 허가권을 따냈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였다. 이런 소문을 접한 삼성 관계자는 기자에게 “LG 쪽에서 흘린 마타도어 같다”며 소문의 근원지로 LG를 지목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그 쪽(LG)이 원래 그렇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LCD 공장을 둘러싼 물밑 다툼은 이번 3D TV 전쟁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현재 세계 TV 시장은 1위 삼성과 2위 LG가 주도하고 있다. 향후 주력 상품이 될 3D TV 시장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격차가 벌어지느냐 아니면 순위가 뒤집히느냐가 결정된다. 특히 이번 싸움에서는 양측이 내세우는 방식이 달라, 만약 한 쪽의 방식이 더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되면 다른 한 쪽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사실상 ‘승자독식’의 표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의 표준 전쟁에서 베타방식이 VHS방식에 밀린 후 종적을 감췄고, 이동통신시장에서 유럽식 GSM과 미국식 CDMA 경쟁에서 GSM이 승리한 후 현재 CDMA 방식이 차츰 사라지는 것을 보면 지금의 3D TV 표준 경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3D TV는 아직 콘텐츠도 턱없이 부족하고 기껏해야 초기 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삼성과 LG는 기선제압을 위한 초반전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는 맹공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이 전쟁에 두 회사 오너가 직접적으로 연관됐다는 점은 이번 경쟁을 더욱 절박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의 경우 이번 싸움의 선봉에 이재용 사장이 서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사장은 중국 LCD 공장 허가권을 따내기 위해 시진핑 부주석을 수차례 면담하는 등 TV 관련 제품에 각별한 공을 들여왔다.
지난 2004년 삼성이 51%, 소니가 49%의 지분을 합작해 만든 LCD 회사도 삼성이 회사 차원에서 이 사장의 업적을 만들어주기 위해 세운 회사였다는 것이 재계의 정설이었다. 지난 연말 사장으로 승진하며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그에게 앞으로의 사업은 하나하나 그의 경영능력과 직결되는 셈이다.
LG전자는 삼성에 비해 더 절박하다. 지난 한 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리며 자존심을 구긴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구원투수’로 친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을 내세웠다. 취임 후 인적쇄신을 단행한 구 부회장이 사실상 첫 번째로 오른 시험대가 바로 3D TV인 셈이다. 구 부회장은 TV사업의 핵심인 LG디스플레이(옛 LG필립스LCD) 대표이사 시절 과감한 투자 결정으로 삼성을 제친 적이 있다.
구 부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승부구를 던진 셈이다. LG전자는 이번에 3D TV를 출시하기 전 구 부회장으로부터 “매우 좋다. 이 정도면 내다 팔 수 있겠다”고 극찬을 들은 후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위상을 지켜내는 동시에 ‘뭔가 보여줘야’ 하는 이재용 사장. LG전자의 옛 영광을 되찾아야 하는 구본준 부회장. 3D TV의 표준경쟁이란 점에서도 양보할 수도 없는 극단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의 ‘3차원 전쟁’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3D TV’ 삼성-LG 차이점
삼성 “고화질 구현 가능”
LG “편하게 볼 수 있어”
도대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어떻게 TV를 만들었기에 서로의 방식이 ‘최선이다,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삼성전자는 셔터글라스식(SG)을, LG전자는 필름패턴 편광안경식(FPR)을 접목해 입체 영상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셔터글라스란 3D 신호 처리를 위해 적외선 칩을 내장한 TV에서 신호를 보내면 반도체가 내장된 안경으로 3D 신호를 받아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이 방식은 TV 화면 자체에 3D로 보이는 기술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 좋고 그만큼 제조 단가도 저렴하다. 반면 편광안경식은 TV 화면에 3D 효과를 발휘하는 얇은 필터 역할을 하는 필름을 부착해 3D 영상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3D 효과를 안경보다는 화면에 의존하기 때문에 저렴한 편광 필름을 이용해 가벼운 소재로 안경을 만들 수 있어 비용도 적게 들고 무게도 가볍다.
두 방식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TV 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해상도와 시야각 등에서 어느 방식이 더 낫느냐는 것이다. 삼성은 LG전자의 FPR 방식은 풀HD(고화질)를 구현할 수 없다고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는 “편광안경식에서 진화한 FPR 기술의 핵심을 모르면서 폄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삼성은 시야각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방식이 더 우수하다고 말한다. 편광 방식의 상하 시야각은 위로는 3도, 아래로는 17도를 벗어나면 이중 영상이 보이는 등 3D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LG 측은 “상하 시야각 26도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시청하는 데 전혀 문제가 안 된다”며 “머리를 수평으로 고정시켜야만 시청할 수 있는 액티브 방식보다 훨씬 자유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고 맞섰다.
LG는 삼성 TV 안경의 불편함과 비싼 가격을 꼬집는다. 배터리를 장착하는 만큼 무겁고 전류가 흘러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에 삼성은 “안경 무게 28g 가운데 코에 걸리는 무게는 10g도 안 돼 편광안경 무게와 비슷하고 휴대전화보다 미세한 전류가 흘러 문제되지 않는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삼성 “고화질 구현 가능”
LG “편하게 볼 수 있어”
도대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어떻게 TV를 만들었기에 서로의 방식이 ‘최선이다,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삼성전자는 셔터글라스식(SG)을, LG전자는 필름패턴 편광안경식(FPR)을 접목해 입체 영상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셔터글라스란 3D 신호 처리를 위해 적외선 칩을 내장한 TV에서 신호를 보내면 반도체가 내장된 안경으로 3D 신호를 받아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이 방식은 TV 화면 자체에 3D로 보이는 기술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 좋고 그만큼 제조 단가도 저렴하다. 반면 편광안경식은 TV 화면에 3D 효과를 발휘하는 얇은 필터 역할을 하는 필름을 부착해 3D 영상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3D 효과를 안경보다는 화면에 의존하기 때문에 저렴한 편광 필름을 이용해 가벼운 소재로 안경을 만들 수 있어 비용도 적게 들고 무게도 가볍다.
두 방식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TV 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해상도와 시야각 등에서 어느 방식이 더 낫느냐는 것이다. 삼성은 LG전자의 FPR 방식은 풀HD(고화질)를 구현할 수 없다고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는 “편광안경식에서 진화한 FPR 기술의 핵심을 모르면서 폄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삼성은 시야각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방식이 더 우수하다고 말한다. 편광 방식의 상하 시야각은 위로는 3도, 아래로는 17도를 벗어나면 이중 영상이 보이는 등 3D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LG 측은 “상하 시야각 26도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시청하는 데 전혀 문제가 안 된다”며 “머리를 수평으로 고정시켜야만 시청할 수 있는 액티브 방식보다 훨씬 자유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고 맞섰다.
LG는 삼성 TV 안경의 불편함과 비싼 가격을 꼬집는다. 배터리를 장착하는 만큼 무겁고 전류가 흘러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에 삼성은 “안경 무게 28g 가운데 코에 걸리는 무게는 10g도 안 돼 편광안경 무게와 비슷하고 휴대전화보다 미세한 전류가 흘러 문제되지 않는다”고 맞받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