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재명 전선 ‘구심점’ 삼으려던 전략 차질…여권 주자들 ‘김경수 감싸기’ 역풍 맞을 수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무겁게 가라앉았던 친문계의 분위기는 최근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재명 대세론’이 흔들리자 결선 투표에서 ‘뒤집기’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친문계가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이낙연 전 대표에게로 속속 모여드는 정황도 포착했다. 추미애 정세균 후보 등과의 단일화가 과제로 남아 있긴 하지만, 친문이 주도하는 ‘반이재명 세력’의 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경선 연기라는 ‘낭보’가 더해졌다. 당초 민주당은 8월 7일부터 지역 순회 경선에 돌입, 9월 5일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라 10월 10일로 미뤘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0월 중순경 최종 후보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는 선거일 180일 전에 뽑아야 하지만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연기할 수 있다.
경선 연기를 놓고 각 후보 측은 셈법 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재명 지사 측은 ‘굳히기’를, 나머지 후보들은 역전을 자신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낙연 전 대표에게 유리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지지율 추세로 봤을 때 하락세에 있는 이 지사보단 상승하고 있는 이 전 대표가 경선 연기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지금까지 경선 연기 논의가 있을 때마다 이 지사는 강하게 반대했고, 이 전 대표는 긍정적 입장을 내놨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경선 연기의 불을 지펴왔던 친문계는 반색하고 나섰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다름없었던 경선 연기를 가장 먼저 거론한 것도 친문 전재수 의원이었다. 한 친문 초선 의원은 “이재명 지사가 검증에 휘청거리는 사이 이낙연 전 대표가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어대’(어차피 대통령은) 타이틀을 이재명에게 빼앗겼는데 곧 찾아올 것”이라면서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했다.
코로나19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긴 하지만 친문계가 경선을 미루기 원했던 진짜 이유는 ‘시간 벌기’ 아니냐는 시선이 파다했다. 조국 전 장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소위 ‘친문 적자’로 불리는 잠룡들의 출마가 어려워지자 최대한 경선을 늦춰 판세를 바꿔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이재명 지사에 대한 비토 기류도 영향력을 미쳤다. 경선 연기론은 친문계의 ‘포스트 문재인’ 고민이 담겨있는 셈이다.
그 중심엔 김경수 전 지사가 있었다. 경선 연기 기준점을 김 지사 대법원 선고일(7월 21일) 이후로 잡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김 전 지사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출마는 힘들다. 친문 일각에선 김 전 지사가 살아올 경우 단숨에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할 것이란 말도 나오긴 했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면죄부’를 받더라도 지사직을 중간에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친문계에선 ‘김경수 역할론’에 주목했다. 김 전 지사가 직접 출마는 하지 않더라도 단일대오 형성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아주길 기대했다. 김 전 지사의 '차차기' 대권 도전과 연관시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친문 간판’으로서 입지를 굳힌다면 차차기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친문계가 그동안 강조해온 ‘20년 집권론’과도 맞닿아있다. 친문계 한 원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결국 미래권력으로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친문엔 마땅한 후보가 없다.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하는 계파는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친문도 분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김 전 지사의 존재가 필요했다. 문재인 대통령 ‘복심’ 김 전 지사를 중심으로 친문이 뭉친다면 이번 대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김 전 지사의 대법원 선고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 판세를 바꿀 수 있는 트리거가 될 것이다.”
실제 친문 인사들은 현재 대선 후보 캠프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이들 대부분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적으로 가장 많은 계파이지만 흩어졌을 땐 ‘머릿수’는 별 소용이 없다. ‘반이재명’을 외치는 친문 핵심들이 ‘다시 뭉치자’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민주당 본 경선에서 결선투표가 이뤄질 경우 친문계의 이런 움직임은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모든 후보들이 앞을 다퉈가며 ‘문재인 마케팅’을 외치는 것도 그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친문계 기대와는 달리 김경수 전 지사는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7월 21일 김 전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 씨와 공모해 포털사이트 기사 8만여 건의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업무방해)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댓글 조작 대가로 드루킹 측에 센다이총영사직을 제안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김 전 지사는 1심에서 법정구속 된 지 7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1년 9개월가량 잔여 형기를 채워야 한다. 김 전 지사는 신변 정리를 마친 뒤, 7월 26일부터 창원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다. 또 김 전 지사는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복역 후 5년간 선거에 나갈 수 없어 2028년 4월 이후 선거부터 출마할 수 있게 됐다. 2027년 21대 대선도 출마할 수 없다.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번엔 물론 다음 대선까지 그렸던 친문계의 구상은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김 전 지사 형 확정은 문재인 정부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댓글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 정권 도덕성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야권은 ‘부정선거’ 프레임을 내걸며 총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김 전 지사를 옹호하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역풍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조국 사태처럼 김 전 지사를 감싸다가 중도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