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영남 압도적 지지 받아야 최종주자 등극…“중도층 잡아야 하는데 눈앞의 텃밭만 찾아” 우려도
정치권에서는 전혀 신예답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 3인방 가운데 최종 승자는 집토끼 가두기 전략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1987년 제도화된 민주주의 체제 이후 역대 대선판에서 최종 승자는 언제나 막강한 집토끼 부대를 뒤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토끼 얼마나 무섭기에
보수 야권을 대표하는 1야당 국민의힘 출신 대선주자 가운데 천신만고 끝에 청와대행을 이뤄낸 인물들의 공통점은 확실한 집토끼들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2012년 치열한 양자대결이 벌어진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애를 먹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당시 ‘안철수 바람’을 일으켰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낸 것은 물론,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와의 단일화까지 성공하면서 야권 세력 결집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51.55%의 득표율을 획득, 48.02%의 문 후보를 간신히 이겼다. 투표 당일 6시 정각이 되면서 공개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박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다른 방송사 조사에서는 박빙이거나 문 후보가 앞선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그만큼 오랜만에 펼쳐진 대선 양자구도는 치열했으며 박 후보를 마지막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박 후보 승리 요인은 확실한 집토끼 지지세였다. 박 후보는 자신의 출생지이자 정치적 근거지인 대구에서 80.14%,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에서는 80.82%라는 압도적 득표율을 올려내면서 확실하게 집토끼를 지켜냈다.
대구·경북(TK)과 함께 역시 보수정당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부산에서도 박 후보는 59.82%의 득표율을 올려 문 후보의 득표율(39.87%)을 크게 앞섰다. 자신의 고향 부산에서조차 문 후보는 박 후보에게 밀린 셈이었다. 경남 역시 박 후보에게 63.12%, 문 후보에게는 36.33%의 득표율만 허락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방송사 PD는 “워낙 치열해서 문 후보가 이겼다는 개표 방송까지 나왔을 정도”라며 “문 후보도 집토끼 획득에 성공해 호남에서 몰표를 받았고 야권 단일화 효과까지 더해졌지만 인구가 호남보다 훨씬 많은 영남에서 집토끼 몰표를 받은 박 후보가 결국 근소한 차이로 이길 수밖에 없었던 구도였다”고 회고했다.
양자구도가 아닌 후보가 난립, 다자구도로 치러진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도 최종 승자 이명박 후보는 텃밭에서 확실한 지지세를 거머쥠으로써 손쉽게 승리했다. 그는 대구에서 69.37%, 고향인 경북에서 72.58%의 득표율을 올렸다. 고향인 TK에서 이 후보는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비율의 득표력을 보였고 이를 통해 청와대행을 결정지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구에서 18%를 가져가고, 경북에서 13%의 득표율을 가져갔으니 이명박 후보의 TK 득표율이 60~70%대에 머물렀지, 이회창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명박 후보가 더 높은 텃밭 지지율을 올렸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경선이 한창인 지금의 여권, 더불어민주당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호남에서 압도적 지지세를 올리지 못한 후보는 경선에서 최종 후보로 선택되지 못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그리고 이후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됐던 것은 민주당의 텃밭 호남의 전략적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호남 출신이 아니라 영남 후보를 택해 호남이 압도적으로 밀어준다면 영남에서의 일정 득표까지 더해져 표의 확장성이 커진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첫 지역 방문 행사로 전북에서 열린 바다의날 기념식을 택했다. 그는 2017년 5월 31일 전북을 찾은 자리에서 “대선 기간 동안 저를 가장 뜨겁게 지지해준 곳이 전라북도다. 여러분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직접 내놓기도 했다. 자신을 가장 많이 지지해준 전북에 대한 답례였다. 문 대통령은 전북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64.84%)을 올렸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 말이다.
“직전 대선에서 오랜 기간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대선 출마 행보 보름 만에 대권 도전을 포기한 것은 그가 충청권 출신이라 보수의 텃밭인 영남에서 확실한 지지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호남에서, 국민의힘 등 보수 야권은 텃밭인 영남, 특히 TK에서 압도적 지지세를 이끌어낸 후보가 최종 주자가 될 것이다.”
#집토끼, 극진히 모신다
보수 야권 대선판에서 일단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윤 전 총장은 7월 17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눈시울을 붉힌 데 이어 7월 20일에는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찾았다.
광주 방문이 다소 격식 있는 것이었다면 대구에서는 작심 행보라고 불릴 만큼 여러 곳을 다니며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말을 쏟아냈다. 특히 윤 전 총장은 찾아가는 장소마다 TK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코로나19 방역 등 일부 이슈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 등 대구·경북 기 살리기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보수성향이 강한 TK 지역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박스권에 갇힌 자신의 지지율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범야권 1위 대권주자로서 텃밭 선점효과를 누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대구를 찾아 “대구에서 세 번 근무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대구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윤 전 총장은 1994년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 대구지검에서 초임 검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9년 대구지검 특수부장으로 근무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에도 국정원 사건 관련 좌천성 인사로 대구고검 검사로 발령받았다.
윤 전 총장은 “대구에서만 세 번을 근무하며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기득권을 수호하는 그런 식의 보수는 이 지역에 전혀 없다”면서 “오히려 TK는 기득권을 타파하고 나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아주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도시라고 생각한다”고 추켜세웠다.
윤 전 총장은 보수 정치권 성지로 불리는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간담회를 했고, 지난해 대구에서의 코로나19 1차 대확산 초기 방역 최일선이었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도 방문, 지난해 여권 일각에서 나왔던 ‘대구 봉쇄’ 발언에 대해 “철없는 미친 소리”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은 이 지역 출신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과거 처리한 일은 검사로서의 숙명에 속하는 문제이고, 박 전 대통령에게 애정을 갖고 지금도 지지하고 계신 분들의 마음과 거기서 빚어지는 (비난의) 말에도 일정 부분 공감을 하고 있다”고 한껏 몸을 낮췄다.
제3지대에 머무는 윤 전 총장과 달리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대선주자로서 첫 행보를 자신의 고향(경남 진해) 권역이라 할 수 있는 부산을 택했다. 그는 7월 17일 부산 해운대을 지역 당원들과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을 벌였다. 자신의 고향이 아닌 부산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은 부산·경남(PK) 출신이라는 점을 연고지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려 한 포석으로 읽힌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당원들 앞에 나선 최 전 원장은 “최근 부산시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박형준 시장이 새로 취임한 이후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부산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충북 음성이 고향이다. 그는 일찌감치 지난 4월 말 고향을 찾아 강연을 했다. 그가 곧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한다면 ‘충청 대망론’을 앞세울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는 보수 정당 전통적 최대 지지 기반인 영남 출신이 아니다. 윤 전 총장이나, 최 전 원장보다 영남권에 이름이 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역이 아닌 다른 유형의 집토끼를 잡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상고와 야간대학 출신으로 경제부처 수장에 오른 입지전적 스토리를 무기로 과거 보수정당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유능한 경제’를 내세워 전통적 보수 지지층의 주목을 이끌어내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전 집토끼 아니어서 골머리
집토끼를 잡으러 다니는 후보들의 부담도 감지되고 있다. 예전의 집토끼가 아니라는 이유다. 과거 보스형 정치 지도자가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는 집토끼들의 쏠림 현상이 컸는데 최근엔 텃밭 지지세도 유동적인 측면이 크다. 선점하기가 쉽지 않고, 잡아놔도 이탈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목소리다.
윤 전 총장 경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정도의 압도적 지지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지지율이 영남에서 나와야 하는데 아직은 만족스러운 수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자체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런 연장선에서 국민의힘 의원들도 일단은 소극적이다. 윤 전 총장 쪽으로 확 다가서면서 국민의힘 텃밭에서의 세몰이를 본격적으로 못하고 있다. 6월 29일 윤 전 총장의 정치 참여 선언 현장에 참석한 20여 명의 의원 정도가 물밑 우군 정도로 거론된다. 여기에는 국민의힘 최대 지지 기반인 TK 출신 의원도 여럿 들어가 있다.
PK 출신인 최 전 원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PK 의원들도 박대출 조해진 최형두 의원 정도에 불과해 PK에서 최 전 원장이 제대로 된 바람몰이를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더욱이 자신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고향이 충남이라 충청권과 연고가 있는 윤 전 총장은 집토끼로 따지면 김 전 부총리와 권역이 겹치고, 국민의힘 최대 지지 기반인 영남을 놓고 보면 최 전 원장과 집토끼 세력권이 중첩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신예 3인 후보 모두 확실히 집토끼를 잡을 만한 배경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부터는 집토끼를 잡기 위해 권력을 분점할 만한 수준의 거물 영입에 성공하느냐, 또 집토끼를 위한 거대 공약 만들기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느냐가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 일각에선 이들의 집토끼 경쟁이 자칫 중도 확장성에 방해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태극기 세력과의 어정쩡한 스탠스로 논란을 자초했던 황교안 전 대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를 잇는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보수층은 ‘반문재인 정서’가 강해서 민주당 후보 안 찍는다. 승부는 중도층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원장이 왜 떴을까. 바로 현 정부에 실망한 중도층이 돌아선 반사효과다. 이 중도층을 잡아야 하는데 자꾸 눈앞에서 열광해주는 텃밭만 찾으려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