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함께 날카로운 슬라이더 회복, 5~6월 5패 뒤 값진 5연승…“이 기분 만끽하고파”
7월 11일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전에서 6이닝 5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였던 김광현은 23일 컵스를 홈으로 불러 들여 6이닝 2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 호투를 펼쳤다. 투구수는 84개였고 평균자책점은 종전 2.87에서 2.88로 소폭 상승했다. 무실점 행진은 24이닝으로 마무리됐지만 김광현은 7월에만 4전 전승을 거두며 4경기 평균자책점 0.72,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도 0.76, 피안타율 0.153으로 모두 리그 최정상급 수준의 성적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이날 김광현의 투구에 대해 ‘연속 무실점 기록이 24이닝에서 끝났지만 1985년 이후 세인트루이스 구단 역사에서 좌완 선발 중 가장 길었다’며 김광현의 24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평가했다.
#‘이달의 투수’ 눈앞
김광현은 23일 컵스전까지만 해도 2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올렸다. 그러나 23일 선발 등판한 김광현은 4회 2사 1, 2루에서 제이크 마리스닉에게 2루타를 맞아 연속 이닝 무실점이 24이닝에서 멈췄다. 이 숫자는 MLB에 진출한 한국인 투수로 박찬호(33이닝), 류현진(32이닝)에 이은 연속 이닝 무실점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김광현은 경기 후 화상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살짝 미소를 보이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꼭 그게 기사화되면 다음에 점수를 주더라, 그래서 기사화되지 않기를 바랐다(웃음). 오늘도 그 공(제이크 마리스닉한테 맞은 적시타) 하나가 너무 아쉽다. 포수 몰리나와 이야기 나눴을 때 변화구로 카운트 잡고 직구로 승부구 던지자고 해 직구를 던졌는데 살짝 몰렸지만 타자가 잘 쳤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안 하면 되고 야구란 스포츠가 시행착오의 연속이기 때문에 실투를 줄이고 다음에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
MLB에 진출한 한국인 투수들 중 ‘이달의 투수’를 수상한 선수는 1998년 7월 박찬호, 2019년 5월 류현진 두 명뿐이다. 당시 LA 다저스 소속의 류현진은 2019년 5월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59를 기록하며 이달의 투수에 선정됐다. 김광현의 7월 성적도 ‘이달의 투수’로 뽑히기에 손색없는 성적이다.
MLB네트워크는 7월 21일 7월의 투수 후보 6명을 꼽았다. 김광현은 후보들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김광현은 7월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경기부터 5경기 연속 승리 행진을 벌였다. 현지 시간으로 7월에 나선 4경기에서 모두 값진 승리를 거뒀다. 7월 들어 메이저리그에서 김광현보다 많은 승리를 얻어낸 투수는 없다. 이 기간 매 경기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3자책점 이하)를 달성한 김광현의 평균자책점은 0.72(25이닝 2자책점)에 그친다. 비록 연속 무실점 이닝은 24에서 멈췄지만 7월 4경기에서 4승, 25이닝 동안 2실점을 기록했다.
6월까지의 성적을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대반전을 이뤘고, 무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기간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인 최강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두 차례 만나 모두 승리를 거뒀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독보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김광현은 7월 남은 마지막 등판(7월 29일 클리블랜드 원정 경기로 예상)에서 지금과 같은 페이스를 선보여야 한다. 그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이달의 투수’는 김광현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7월 대반전 비결은?
MLB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광현은 6월 중순까지만 해도 빛이 보이지 않았다. 시즌 두 번째 등판이었던 4월 24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첫 승을 신고한 뒤 두 달 넘게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고 6월 21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까지 5패를 기록했다.
허리 부상으로 뒤늦게 시즌을 시작한 김광현은 부진이 반복되면서 웃음을 잃어갔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한 김광현은 주무기인 슬라이더의 날카로움을 회복하면서 마운드에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무패 행진을 이끌었다. 23일 경기 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실트 감독은 김광현의 호투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광현은 스프링캠프 때 부상으로 일정을 중단한 데다 시즌 초반에도 잠시 멈춰야 했다. 이로 인해 리듬이 끊겼는데 최근 되찾았고, 이 부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대단한 활약을 펼쳤고,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광현도 7월 자신의 호투 관련해서 이런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작년 시즌 마치고 계속 걱정했던 부분이 작년에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시즌을 치르지 못하고 많이 쉬었기 때문에 올해 많은 이닝을 던지게 되면 부상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올 시즌) 트레이너한테 큰 도움을 받고 있고, 한 경기 끝날 때마다 로테이션 중간에 루틴을 잘 지키고 치료 잘 받아서 그분들 덕분에 건강히 시즌을 치르는 것 같다. 앞으로 몸 관리 잘해서 시즌 끝까지 부상 없이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3일 시카고 컵스전을 앞두고 김광현은 미국을 찾은 가족들과 또 다시 이별을 경험했다. 야구장으로 출근하기 전 가족들을 직접 공항에서 배웅한 그는 선발 등판이라 루틴대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배웅하지 않으면 눈에서 아른거릴 것 같아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떠나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이한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다 “야구는 끝이 없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SK 시절) 팔꿈치 수술했던 게 2017년이었다. (프로 데뷔 후) 10년이 지난 상황이었고, 그 해 통째로 쉬면서 반환점을 돌았다고 생각했다. 이후 3~4년의 시간이 흘렀다. 반환점을 돌았음에도 야구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여기 와서 많은 걸 배웠고, 한국에서도 배우며 성장했다. 앞으로 MLB에서 선진 야구를 배우며 좀 더 성장하고 싶다.”
김광현은 개인 5연승을 이루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이전 두 달 동안 승리가 없었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5연승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김광현이 그곳에 있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