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세계적인 배우인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았다. ‘세븐’, ‘파이트클럽’, ‘조디악’ 등을 만든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잔뜩 긴장했다. 한국 영화 발전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선두로 생각하고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2등 전략을 노렸다.
그래서 2009년 겨울엔 할리우드 영화 한 편과 한국 영화 한 편, 이렇게 관람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대중들에게 호소했다. 한국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영화가 독보적인 강자로 떠올랐다. 존재조차 몰랐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였다.
2009년도 소띠 해였다. 그해 겨울에 늙은 노인과 늙은 소의 우정을 그린 ‘워낭소리’가 압도적인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워낭소리’는 할리우드 대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물론 그 시기에 개봉한 한국 영화 ‘마린보이’, ‘작전’, ‘핸드폰’ 등을 모두 압도했다. 당시까지 한국 다큐멘터리 장르 사상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스코어는 약 300만 명이었다.
‘워낭소리’는 단순한 다큐멘터리 장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불과 1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개봉일 전국 6개 스크린에 1000여 명 관객을 동원한 굉장히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였다. 같은 시기 필자가 제작한 영화 ‘마린보이’는 총 제작비 70억여 원에 개봉일 350여 개 스크린에서 와이드로 개봉했다. 이 작품은 상업영화였다. 그러나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마린보이’는 전국 83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워낭소리’는 그보다 세 배 이상 관객이 찾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워낭소리’ 존재조차 알지 못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 작품이 경쟁상대가 될 것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겨울 대한민국의 관객은 40여 세에 가까운 늙은 소와 그 소를 진심으로 아끼는 시골 노인의 우정에 열광했다. 관객들은 그 이야기에 감동했고 위로받았으며 눈물 흘렸다.
언더도그 효과라는 게 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면 관람하는 사람들이 몸집도 작고 경험도 없는 데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다윗이 이기는 것을 더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한다. 여기다 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환호를 보낸다. 그러나 ‘워낭소리’로부터 시작된 언더도그 효과는 그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겐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운 고통스런 사건이기도 했다. 골리앗의 마음이었다.
‘마린보이’라는 영화에 투자해준 회사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70억 원을 들여 전문가들을 동원해 만든 대중상업영화가 고작 1억 원을 들여 만든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와 경쟁해서 3분의 1도 안 되는 관객을 동원하고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했다고 하면, 투자사들은 나를 영화전문가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그들은 나를 믿고 제작비를 투자해줄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당시 내가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진입장벽이 높다. 1000여 명이 넘는 배우들과 보조출연자들에 100여 명이 넘는 스태프들과 수많은 장비, 그리고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제작비를 생각하면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제작할 수 있는 문화산업인 까닭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방송을 제작하려면 수많은 제작 인력에 각 파트 전문가들이 합심해서 스튜디오를 만들고 첨단 장비를 동원해 촬영을 해야 한다. 여기다 고가의 후반작업 장비들을 이용해야 하며 수십억 원이 넘는 컴퓨터 그래픽 장비까지 활용해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그렇기에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권력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21년 7월 현재를 생각해보라. 지금은 수백에서 수천 명의 전문가들이 합심해서 만들어내는 뉴스,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만큼이나 1인 크리에이터가 제작하는 콘텐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이젠 영화도 스마트폰으로 제작하는 시대가 됐다.
수백 명의 전문가 없이 단 한 사람이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이 제작한 콘텐츠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손쉽게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젠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개념도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다윗은 존재하지 않으며 골리앗이라고 해서 조금도 유리할 것이 없다. 오로지 창의력만 존재할 뿐이다. 기성 미디어들이 기존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향유하려 든다면 1인 미디어에게 순식간에 그 영향력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이젠 오로지 창의력과 혁신만이 생존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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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