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부장판사 폐지 후 일만 많고 승진 없는 자리 전락…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대법 근무 기피 분위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자리였다. 동기 판사들 중에서 소위 ‘인정받았다’고 평가받는 20~30%만 갈 수 있었다. 일이 고되지만 성장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많이 다룰 수 있기도 하고, 선배 판사들의 연구 자료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재판 연구관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재판연구관을 하면서 기존에는 1심 재판부의 시선에서만 보던 게 ‘대법원이라면 이렇게 보고 접근하겠구나’라는 것을 알게 돼, 법리적으로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대법관들에게 직접 사건 관련 법리를 보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법리의 대가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자연스레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1순위로 평가받던 자리이기도 했다. 법관으로 임용된 뒤 하급심 법원에서 10년 정도의 재판 경험을 가진 이들이 2년 동안 재판연구관을 경험한 후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갔다가 서울의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2~3년 정도 거친 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인사 시스템을 손봐 고등법원 부장판사 자리가 없어지면서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아졌다. 과거에는 성적 평가 상위권 20~30% 판사들이 줄을 서서 가고 싶어 했던 자리였다면, 이제는 평가 성적 하위 30~40%에도 재판연구관 근무 제안이 갈 정도라는 후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연구관의 인기가 사라진 것은 ‘승진’이 전부였던 문화가 바뀐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라며 “9시 출근 6시 퇴근을 희망하는 웰빙 문화가 퍼지면서 일은 힘든데 인정은 받지 못하는 자리가 된 재판연구관을 누가 하고 싶어 하겠나”고 얘기했다. 판사 출신의 법조인은 “예전에는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게 능력이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척도였다면,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판사들이 대법원 근무를 오히려 기피하게 된 분위기도 재판연구관 인기 하락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