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감독’ 김인식 ‘소방수 역할’ 부담감 토로…선동열 국감 출석 불명예, 김경문 도쿄올림픽 참사 책임론
대한민국은 야구 강국 중 하나로 통한다. 2021년 8월 현재 한국의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세계야구랭킹은 일본에 이어 2위다. 역대 아시안게임(시범종목 채택 포함)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 채택 이후 5번의 대회에서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야구대표팀 감독 자리도 영광의 자리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김인식 감독이 그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경문 감독이 그랬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어려운 자리'가 됐다.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과정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특히 최근 사령탑들을 향한 질타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잔혹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부작용 일어난 겸임제도
FIFA 월드컵과 같은 대규모 국제대회가 존재하지 않는 야구 종목은 1998 방콕아시안게임을 전후로 프로 선수들의 대회 참가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야구 국가대표의 경기에 많은 시선이 쏠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98년 방콕에서 당시 인하대 사령탑이던 주성노 감독이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대표팀은 각종 대회에서 프로구단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KBO리그 우승 감독이 이듬해 국가대표 감독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0 시드니올림픽부터 김응용, 김인식, 김재박, 조범현, 류중일 등 대부분 '우승 감독'들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모두가 대표팀 행을 반기지만은 않았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의 경우 프로야구 시즌이 진행되는 기간 내 개최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 야구 국가대항전은 비시즌 기간 열리지만 이 역시 겸직 감독들에게는 부담이다. '본업'인 프로팀 감독으로서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KBO리그 우승팀 감독이 이듬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는다'는 룰은 지켜지지 못하기도 했다. 야구 규약에도 명시된 내용이었지만 곧 유명무실해졌다. '소속팀에 집중하겠다, 지도자 경력이 짧다'는 이유를 들며 지도자들이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한 것이다.
감독들의 기피 분위기 속에 대표팀 부름을 많이 받은 인물은 김인식 감독이다. 김인식 감독은 국가대표 사령탑에 올라 수차례 호성적을 거두며 '국민 감독'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러나 그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고 국가대표를 이끈 것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 단 한 대회뿐이었다. 동료 감독들의 고사 속에 김인식 감독이 자주 국제대회에 나섰다.
#겸임제에서 전임제로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에서 잇달아 좋은 성적을 내며 국민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2009년 WBC에서 2위에 올라 박수가 쏟아졌지만 정작 소속팀 한화는 최하위에 머물며 감독직을 내려놨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부터 야구 대표팀 감독직이 본격적으로 '독이 든 성배'로 불리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 '삼성 왕조'를 일궈낸 류중일 감독이 팀을 이끌며 금메달을 따냈지만 그 과정에서 잡음이 뒤따랐다. 특정 팀이나 선수에게 특혜를 줬다는 비난이 이어진 것이다.
이후 감독들의 '대표팀 기피현상'은 심화됐다. 결국 대표팀이 손을 내민 사람은 또 다시 김인식 감독이었다. 그는 2015 프리미어12부터 2017 WBC까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김인식 감독도 지속적으로 부담감을 표현해왔다. 2017 WBC에 나서던 당시 그는 칠순의 고령이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뇌경색을 앓은 전력도 있었다. 누구보다 대표팀의 소방수로 많이 나섰지만 전임감독제의 필요성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다시 한 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17년 당시 전임감독제를 준비하던 KBO 기술위원장이었다.
2017년, 한국 야구대표팀은 전임감독 시대를 열었다. 2018년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올림픽 등 국제대회가 예정된 상황에서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을 감독 자리에 앉힌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보상도 보장해 대표팀 재임 기간 중 프로팀 사령탑으로 적을 옮길 위험성도 방지했다.
#계속되는 불명예 퇴진
공교롭게도 전임감독제 시작과 동시에 야구대표팀 감독 자리는 잔혹해졌다. 첫 주인공은 선동열 감독이다. 선 감독이 내정되자 국보급 투수의 첫 전임감독 등극에 많은 기대감이 쏟아졌다.
전임감독으로서 처음 치른 대회는 24세 이하 선수들이 주로 출전하는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이었다. 우승은 놓쳤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유망주 선수들을 육성한다는 취지는 박수를 받았다.
이어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은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에겐 상처만 남은 대회가 됐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일부 선수 선발에 대해 의문이 따랐고 그 선수들이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결국 선 감독은 그 해 가을 국회 국정감사장에 불려 나가 국회의원으로부터 대표팀 구성에 대한 지적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결국 선 감독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호기롭게 출발한 전임감독제가 초대 감독부터 삐걱거린 것이다.
명예회복을 노린 대표팀의 다음 선택은 김경문 감독이었다. 2018년 여름 NC 다이노스에서 사퇴한 김 감독은 반 년 만에 국가대표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9전 전승 금메달을 이끈 사령탑이었기에 기대감이 컸다.
김 감독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호성적을 목표로 선임된 지도자였다. 올림픽 예선 격으로 열린 2019 프리미어12에서 준우승과 올림픽 티켓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 역시 도쿄올림픽에서 처참한 성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13년 전 베이징에서 좋은 추억도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2020 도쿄올림픽이 끝났지만 현재까지도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다.
김경문 감독 역시 전임 감독들처럼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수 선발을 놓고 논란에 휩싸였다. 다른 점이라면, 이전 감독들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온 반면, 김경문 감독은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전 국제대회들과 달리 도쿄올림픽은 불과 6개국이 참가한 데다 대회 대진과 운영 특성상 여러 번 기회가 있었음에도 최종 4위 노메달을 기록해 더 큰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13년 전 베이징에서 9전 전승을 기록한 김경문 감독은 도쿄 올림픽에서 3승 4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3승 중 2승은 약체로 평가받던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것이며 이스라엘에 거둔 2승 중 1승마저 승부치기에 들어간 후 끝내기 밀어내기 사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올림픽 10연승'이라고 자축하던 야구대표팀은 이후 경기에서 일본, 미국, 도미니카공화국을 차례로 상대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야구대표팀의 '감독 잔혹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김경문 감독의 임기는 올림픽 폐막으로 종료됐다. 하지만 대표팀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당장 1년 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그 이후 2023 WBC가 열린다. 야구대표팀 감독 잔혹사를 끊을 인물이 나타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