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융희 약사, “병은 약이 아닌 마음의 치유가 먼저여야!”
사계절 관광객이 줄을 이어 찾는 채석강과 적벽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부안군 격포항에서 20년 넘게 약국을 운영하는 김융희 여사의 남다른 50년 약사 인생을 듣기 위해 지난 16일 격포를 다시 찾았다.
필자가 이 약국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4년 어느 가을 격포항을 취재차 찾았던 필자는 며칠째 심한 복통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다가 길옆에 보이는 약국 표시를 보고 약국 안으로 들어간 것이 첫 만남이다.
“배탈이 난 것 같으니 약을 주세요” 라는 필자의 말에 여느 약사 같으면 보통 배탈이 났을 때 먹음직한 약을 주는 것이 보통인데 김융희 약사는 필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증상을 들어보면 장염 같지만, 장염을 일으킨 원인 먼저 치료되어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두 가지 약을 조제해서 주면서 첫째 먹을 약과 두 번째 먹을 약을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참 신기했다. 이미 의약분업이 시행되어 약국에서는 약사 임의로 약을 조제해서 줄 수 없다. 조제약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근거해서 약을 조제할 수 있는데 약사가 아픈 나에게 직접 이것저것 증상을 물어보고 약을 조제해 주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당시나 지금도 격포 인근에 병원이 없다. 그래서 관련법에 의해 의사의 처방이 없어도 약사가 환자의 증상을 물어보고 직접 약을 조제해서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인연 이후 필자는 지금까지 격포항을 가면 꼭 이 약국을 들린다. 김융희 약사는 그 때마다 필자에게 강장제 하나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을 나에게 권한다. 마치 큰 누나가 어린 동생들을 대하듯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정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에 다시 찾은 약국은 격포서만 벌써 세 번째 옮긴 곳이다. 그런데 보통 약국처럼 약들만 보이는 것이 아닌 약국 곳곳에는 다른 약국에서 보지 못하는 천과 나뭇가지로 만든 각종 공예품이 눈에 띄고, 나를 보자 늘 그렇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안부를 물어오는 김융희 약사의 모습이 약사라기보다 우리네 이웃집 편안한 아주머니 같은 모습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나서 50년 약사 인생을 듣고 싶다고 필자가 말을 건네니 해줄 이야기가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서 “왜 약국에 공예품이 많이 있느냐?”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갔다.
이때 김융희 약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증상도 중요하지만, 약이 아닌 마음의 치유가 먼저여야 한다”며 “그래서 내 약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약을 먹이기에 앞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약국에 공예품들을 하나둘 갖다 놓게 된 것이 지금처럼 됐다”고 웃었다.
김융희 여사가 약사가 된 배경에는 집안의 내력이 큰 영향을 끼쳤다. 증조부인 故(고) 김농학 옹이 한의사로 의학에 종사했고 아버지 故(고) 김흥국 옹은 평안남도 의주 출신으로 만주서 의대를 졸업하고, 해방 후 평안북도 용천군 불하면에서 병원을 개업하다 후에 평양중앙병원에 근무한다.
이후 6.25 발발 후 1.4 후퇴 때 남으로 피난을 와서 전주서 8개월의 고된 수용소 생활 후 당시 의사가 부족한 사정에 따라 정읍서 의사로서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 고부면 보건소장을 시작으로 영원면 보건소장 등 8년을 병원장과 보건소장을 함께 하면서 주변에 인술을 펼쳤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영원면에 교회를 지어서 헌납하는 등 나눔에 앞장섰다.
이런 배경 속에 김융희 약사는 지난 1973년 조선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병원에서 약사로서 15년을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환자를 진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의사들이 배우는 남다른 의학적 지식을 터득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는 약사가 환자의 증상을 직접 물어보고 약을 조제하는 시절이라 약사들의 의학적 지식에 따라 환자들의 병의 치유 결과는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지금 약국을 운영하는 이곳 격포도 병원이 없어 약사의 의학적 지식이 이곳 주민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융희 약사가 50년 약사로서 살아오면서 강조하는 것은 “내 약국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이제 것 나를 먹게 살게 해 준 것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나 또한, 내가 약을 팔아서 돈을 남기는 것이 우선이 아닌 내 약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병이 치료되는 것에 앞서 정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필자는 김융희 약사는 약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약사의 모습이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감 있는 모습으로 언니나 누나처럼 때론 동네 아주머니처럼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모습에서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강효근 호남본부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