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 럭셔리한 반상 수업을
▲ 1교시는 식사를 곁들인 각 분야 전문가 초빙 강의로, 2교시는 수업과 대국 등 바둑을 즐기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정식 수업이 끝나면 ‘3교시’ 뒤풀이 시간이 이어진다. |
쉽게 말하면 기우회다. 대학에서, 대학의 바둑학과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든 기우회, 조금 덧붙이자면 고급스러운, 보통 기우회와는 조금 다른 기우회다. 기우회에도 고급 저급이 있나. 바둑을 좋아하고 즐겨 두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무슨 신분의 고하, 재력의 유무를 따지는 것이 필요한가.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대학에서 만든 기우회, 말하자면 선진국형 세련미를 갖춘 CEO 기우회, 글로벌 바둑 최고위 과정 같은 것이 이상할 이유는 더욱 없다. 이른바 ‘격조 높은 고급 사교의 장’이 될 것이니 그 자체로 바둑계의 새로운 모델로 순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바둑 최고위 과정은 지난해 생겨 지금 제2기가 진행 중이다. 6개월 단위. 모집 인원은 40명 안팎. 1주일에 한 번 저녁 6시부터 수업을 한다. 명지대 캠퍼스가 있는 경기도 용인은 너무 멀어 좋은 장소를 찾을 때까지 당분간, 수업은 주로 서울 시내 유명 호텔을 이용한다.
수업은 1, 2교시가 있다. 제1교시는 사회 각계각층 저명인사나 경제-경영 쪽은 물론이고, 각 인문 분야, 과학, 건강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듣는다. 이때 식사도 곁들인다. 제2교시는 바둑 관련 수업과 수강생들끼리의 대국, 프로기사와 수강생 간의 지도기가 벌어진다. 바둑을 즐기는 시간이다.
바둑 최고위 과정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약 3년 전이다. 한국외대와 (주)킹스바둑 사이에 논의가 있었다. 킹스바둑은 2년 전쯤 이세돌 9단과 프로모션 계약을 하고 이세돌 바둑교실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였던 회사. 킹스바둑이 어려워지면서 얘기가 답보하자 그걸 명지대 바둑학과 정수현 교수가 끌고 와 개설한 것. 처음에는 과연 몇 명이나 올까 했는데, 제1기에 35명이 등록했고, 2기에는 지금 32명이 동참하고 있다. 절반의 성공 이상인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기업체 대표, 판사 검사 변호사 법무사 등의 법조계, 교수, 의사, 국회의원, 전직 장관, 서예가, 고위공무원, 방송인, 개그맨, 회계사, 세무사 등 아닌 게 아니라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 보인다. 아직은, 일단은 바둑계 주변에서 자주 마주쳤던 낯익은 얼굴이 많지만, 더러 아~ 이 양반도 바둑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사람도 있다.
바둑계를 깊이 이해하는 국회의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민주당의 이미경 의원,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 현재 한국기원 부이사장인 유충식 전 동아제약 부회장,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영선 4단을 후원하면서 재작년부터는 독일에서 현지인들을 위한 바둑대회도 개최해 주고 있는 기도산업의 박장희 회장, 김종민 전 문화부 장관, 대한바둑협회의 전신인 한국아마바둑협회장을 역임한 황광웅 건화그룹 회장, 조건호 대한바둑협회장, 한림의대 김형직 교수, 1990년대 유럽-러시아 지역 무적의 바둑챔피언이었던 이혁 7단의 친동생 이강운 꽃마을치과원장(바둑 실력도 형보다 조금 못한 정도이니 강자다), 법무법인 신문고 대표 김현석 변호사, 지지옥션배를 주최하면서 투자대비 홍보효과를 제일 크게 보는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강명주 회장, 바둑TV 사장을 역임한 심용섭 동양오리온스 농구단장, 사이버오로 박원표 대표, 목진석 9단의 아버지인 웅진루카스 투자자문의 목이균 대표, 예전에 한동안 프로기사들에게 글씨를 지도했던 서예가 김창동 선생, 바둑전문 출판사인 ‘양지’의 김태흥 대표, 국내 바둑판 제작의 양대산맥의 한 축인 ‘육형제 바둑’의 신완식-신추식 대표 형제,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한국팀 주치의로 이슬아의 그 예쁜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보일 만큼 침을 꽂아 주었던 인동한의원 정병훈 원장, 한국여성바둑연맹 승순선 회장과 이광순 사무국장, 대학바둑연맹의 박애영 부회장, 개그맨 엄용수 씨, 바둑TV 인기진행자 이승현 씨 등은 바둑팬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얼굴이다. 양상국 9단, 조영숙 4단, 김영삼 8단 같은 프로기사들도 동참하고 있다.
아~ 이런 사람도~ 하는 수강생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한국브리지협회의 황인령 이사. 브리지 게임은 덩샤오핑과 녜웨이핑, 핑자 돌림의 두 중국 거물이 무지하게 좋아하고 실력도 고수였다는 소문 덕분에 알게 된 카드 게임의 일종인데, 바둑만큼 재미있고, 바둑만큼 어렵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바둑보다 더 재미있고 더 어렵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바둑계에선 서능욱 9단이 고수로 알려져 있다. 대학바둑연맹 박애영 부회장도 브리지 애호가.
출발은 절반의 성공 정도였지만, 일단 돛을 올리자 쾌속항진이었다. 수강생들은 급속히 친해졌다. 대학원 동문모임과 비슷한 ‘원우회’가 생기고 바둑, 브리지, 골프의 동호회 클럽이 따로 만들어졌다. 가끔 국내외로 단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바둑 최고위 과정 안에 바둑동호회가 또 생긴 것이 재미있다.
제3교시도 생겼다. 정식 수업인 2교시 후의 뒤풀이시간이 3교시다. 수업료는 6개월 과정에 500만 원이니 녹록지 않은 편인데, 수업을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같은 곳에서 하다 보니 그 비용이 많이 들어,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른 적정 장소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장학금 제도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특급 호텔에서 식사하며 좋은 강의 듣고, 점잖은 신사숙녀와 수담을 즐기는 것, 괜찮은 그림이다. 서민들에겐 벅찬 일이고 우리들의 시중 기원은 여전히 대부분 영세하지만, 어쩌겠는가.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서 자장면 소주 옆에 놓고 바둑판 두들기며 시름을 잊는 그림도 있는 것이고, 쾌적한 공기 속에서 우아하게 바둑돌을 나르는 그림도 있는 것. 그림의 영역, 그림의 분위기가 서로 다를 뿐이다. 자장면과 스테이크가 서로 흘겨보지 않고, 각자의 분량대로 각자의 길을 가며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또한 바둑이니까.
이광구 객원기자 mhwindy@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