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일보 1면에서 시진핑 뉴스 점점 사라졌다가 회복…논객 “8월초 비밀회의가 기점, 경제통 왕양이 뒤 이을 것”
8월 23일 중국에서 정치 관련 논평으로 유명한 한 논객이 온라인 포스팅을 했다. 그의 필명은 아포뤄(阿波羅)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아폴로의 중국식 표현이다. 아포뤄는 “지난 5일 동안 인민일보 1면 헤드라인에서 변화가 감지됐다”면서 “시진핑 뉴스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 관영 매체 인민일보 1면 헤드라인은 중국 고위급 정치 내분의 방향지시판”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아포뤄는 “2021년 베이다이허(北戴河) 비밀회의 이후 시진핑이 은퇴하고 왕양(汪洋)이 뒤를 이을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8월 19일부터 시진핑 관련 보도가 더 이상 1면(메인)을 차지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시진핑 소식은 인민일보 1면 작은 구석에만 실렸다”고 덧붙였다.
베이다이허 비밀회의는 8월 초·중순 진행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밀실 회의를 일컫는다. 중국 지도부는 정기적으로 하계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서 비밀회의를 갖는다.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베이다허 비밀회의는 중국의 주요 대외 메시지와 향후 정책 방향성을 결정하는 암묵적인 최고 의사결정 회의로 알려져 있다. 중국 소식통은 “베이다이허 비밀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은 이후 공식적인 중국 국가 전체의 방향성으로 나타난다”고 귀띔했다.
베이다이허 비밀회의를 기점으로 인민일보가 1면 헤드라인에 시진핑 관련 소식을 전하는 빈도가 낮아졌다는 것이 중국 논객 아포뤄의 주장이다. 아포뤄는 “베이다이허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 회의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양이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 남을 것이란 추측이 들불처럼 번졌다”면서 “왕양이 시진핑을 대신할 것이란 소문도 돈다”고 했다.
아포뤄는 한 영상 프로그램 인터뷰도 인용했다. 중국 정치평론가 천포콩(陈破空)의 발언이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천포콩은 “시진핑이 베이다이허에서 패했고, 총서기 자리를 양보해야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리커창(李克强) 총리보다는 왕양이 시진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력 이양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운데 시진핑 권력을 이어받을 후보로는 왕양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꼽혔다. 왕양은 경제통으로 꼽히는 인물로 민생경제와 대외무역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왕양은 2012년 중국 정치국에서 축출된 보시라이의 정치적 경쟁자이기도 했다. 중국 정치권 내에선 비교적 자유주의적이며 개혁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공산당 내에선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계파에 뿌리를 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소식통은 8월 24일 저녁 “인민일보 1면은 무조건 공산당 총서기 활동을 올려놓는 곳으로 시진핑 관련 소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통상적으로 인민일보 1면이 시진핑 소식으로 도배됐던 상황을 생각하면 확실히 언론 보도 비중이 낮아진 감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이 내부적으로 권력 다툼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중국 여론을 살펴보는 일환으로 인민일보를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중국은 미·중 갈등으로 경제 성장률이 급강하하고 있으며, 홍콩 문제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둘러싼 인권 문제에도 직면했다. 여기다 코로나19 발원지 논란까지 겹치며 정치적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다. 첩첩산중에서 타이완을 건드리며 정국 돌파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적극적 대응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여론을 살피며 계속 시진핑 식 ‘직진 외교’를 밀어붙여야 하는지 간을 보는 양상으로 보인다”면서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권력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가설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른 중국 소식통은 “시진핑 관련 기사가 인민일보 1면에서 단편으로 구석에 배치되거나 누락된 날이 최근 들어 몇 차례 발견되긴 한다”면서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왕양에게 바통이 넘어가기로 한 뒤부터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설이 베이징 현지 정치 전문가들의 논평을 통해 모락모락 피어나며 화제 중심에 서고 있는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이 소식통은 “특히 많은 관심을 모은 논객 아포뤄의 경우엔 중국 정치 관련 포스팅을 통해 온라인 상에선 잘 알려진 인물”이라면서 “그가 올린 이번 포스팅 조회수는 16만 회 정도가 되는데 8월 24일 저녁을 기점으로 중국 내에선 해당 포스팅을 열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엔 언론 자유도가 낮다 보니 일부 언론인이 ‘논객’을 가장해 생동감 있는 정치권 내부 사정을 전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덧붙였다.
시진핑은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중국 국가주석으로 취임했다. 2018년 3월엔 중국 헌법상 국가주석의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을 통해 종신 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2021년엔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시진핑 임기를 최대 2032년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파벌 중 태자당 출신으로 장쩌민을 필두로 한 상하이방, 후진타오를 배출한 공청단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출신 성분을 가지고 있다.
한편, 8월 23일 이후 인민일보는 다시금 시진핑을 1면 헤드라인에 배치하고 있다. 인민일보는 8월 24일 1면에 시진핑의 '상하이 디지털 경제산업 포럼 및 중국 국제 지능 산업 박람회 축전' 제목의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내세웠다. 8월 25일엔 1면 헤드라인으로 '민족 부흥의 위대한 영광을 나눈다'라는 제목의 시진핑의 국가 단결과 발전에 관한 중요 성명에 대한 요약 관련 기사를 배치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