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낙연 vs 최재형·윤석열 등 여야 ‘집토끼 몰이’ 가세하며 대선판 변수 부상
정치권 근현대사 역사관 논쟁을 이해하기에 앞서 꼭 알아야 할 인물이 있다. 2020년을 기점으로 ‘광복절 이슈메이커’로 부상한 김원웅 광복회장이다. 2020년 광복절 김원웅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이승만이 친일파와 결탁해 대한민국은 민족 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고 했다.
2021년 광복절 기념사에선 “4·19 혁명으로 이승만 친일정권을 무너뜨렸고 박정희 반민족 군사정권은 자체 붕괴했다”면서 근현대사 역사관 논쟁에 불을 지폈다. 김원웅 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 청산에 실패한 ‘친일 인사’로 줄곧 분류하며 정치적 논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875년 황해도에서 출생해 배재학당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했다. 석사는 하버드에서, 박사는 프린스턴에서 마쳤다. 미국 엘리트들과 함께 국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로 청원 외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1·2대 대통령을 지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엔 1~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비롯해 대한민국 국제적 승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농지개혁, 초등학교 의무교육 등이 이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 대표적인 공으로 꼽힌다. 그 이면엔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등 정치적인 과도 존재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대적인 친일 인사 청산에 나서지 못한 대목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인물인 셈이다.
그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은 2021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은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과오에 초점을 맞추는 가운데,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건국 대통령’으로서 이 전 대통령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주로 견지하고 있다. 한 역사학자는 “현재 거대 양당은 대한민국 태동의 정통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약간 다르다”면서 “여권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국가 정통성이 있다는 입장을 주로 표시하고 있고, 야권은 1948년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을 향한 염원을 바탕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의 경우 ‘반공’을 토대로 한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했다. 각자 다른 경계선을 지닌 두 가지 사건에서 튀어 나오는 논란의 인물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독립운동가 김원봉 의열단장이다.
약산 김원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창기 김구 주석과 더불어 독립운동 양대 축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러나 독립 이후인 1948년 ‘남로당 사건’ 이후 월북을 했다. 그리곤 북한 초대 내각 국가검열상을 거쳐 노동상,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맡았다. 그러던 1958년 ‘연안파 숙청사건’ 당시 김원봉은 김일성으로부터 숙청당했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김원봉을 정부 수립 유공자나 공산주의자로 보는 프레임이 나뉠 수 있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에 따라서도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친일 인사들을 국가 고위직에 등용한 사실과 반공에 입각해 자유주의를 수호한 인물로 프레임이 나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논란의 틈을 정치권이 비집고 들어온 셈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포석이다.
2021년 한 여름의 ‘이승만 대전’ 포문은 7월에 열렸다. 미군이 점령군이냐 아니냐는 역사적 시각을 두고 여야 유력 대선주자 의견이 엇갈린 까닭이었다. 화두를 제시하는 역할은 김원웅 광복회장의 몫이었다. 6월 30일 중앙일보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달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해방 이후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이었고,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7월 1일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했다”면서 “승전국인 미국은 일제를 무장해제하고 그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다”고 했다. 이승만 정부의 과를 지적하며 김 회장 발언에 힘을 싣는 듯한 뉘앙스였다.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반발했다. 7월 4일 윤 전 총장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단편만을 부각해 맥락을 무시하는 세력은 국민들의 성취에 기생하는 세력에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6·25 전쟁 당시 희생된 수만 명의 국군장병과 미군·유엔군은 점령지를 지키기 위한 불의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이냐”고 반문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반 이승만 정부 당시 이야기를 둘러싼 역사 관점 논쟁이 불거진 셈이었다.
8월 6일엔 역시 야권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참전했다. 최 전 원장은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이를 두고 여권 반발이 일자 최 전 원장은 “헌법의 기초를 자유민주주의에 둘 수 있도록 한 점을 강조한 것”이라면서 “그분의 과를 눈감아 주거나 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과를 인정하면서 헌법의 기초를 다진 업적에 집중하겠다는 의도 발언이었다.
8월 15일 김원웅 광복회장이 다시 한번 이승만 정부를 ‘친일 정권’으로 분류하자 논란에 불이 붙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이 김 회장 기념사에 반발하자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월 17일 CBS라디오와 인터뷰를 통해 “김 회장이 광복회장으로서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친일 잔재 청산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은 광복회장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잇따라 가세했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김원웅 같은 사람이 저주하고 조롱할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면서 “문재인 정부의 이념 망상이 뜻 깊은 광복절을 욕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은 “(이승만 정부가 ‘친일 정권’이란 표현에 대해) 사실관계가 틀렸다”면서 “이승만 초대 내각은 대부분 독립투사들로 구성됐고, 북한 초대 내각은 상당수가 친일파였다”고 했다. 이어 “이승만 내각은 억지로 폄훼하면서 북한의 친일내각에는 입을 다무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야권 대선주자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집권 민주당과 친문의 사고는 100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서 “시대착오적 반일 몰이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세력이야말로 청산돼야 할 구시대적 적폐”라고 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둘러싼 역사 논쟁은 40~50대 운동권 세대와 60대 이상 반공 세대 사이 지지층을 결집을 위한 프레임 전쟁”이라고 분석했다. 채 연구위원은 “다만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은 20~30대 MZ세대에겐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채 연구위원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민족주의와 공화·자유주의, 반일과 반공의 정치적 충돌이라 볼 수 있다”면서 “많은 국민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은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프레임 전쟁이 2021년에도 유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기본질서라는 헌법적 관점으로 역사 논쟁을 살펴보면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소극적 자유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독립운동가로 민족을 위해 활동했지만,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가치를 부각한 김일성, 김원봉, 홍범도 등이 인물들이 대표적인 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남북이 분단돼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역사적 인물들을 어떻게 평가할지에도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