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하면 몸값 상한선에 ‘발목’
▲ 2009년 7월 2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비숍 골먼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KBL 외국선수 트라이아웃 둘째날. 드래프트를 하루 앞둔 참가선수들이 한국무대 진출을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한국농구연맹(KBL)은 외국선수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토종선수들의 기회를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외국선수제도에 변화를 줬다. 그 첫째 변화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외국선수를 1명만 보유하게 한 것이다. 선발 방식도 달라졌다. 트라이아웃을 통한 드래프트제도에서 자유계약 방식으로 변경했다. 게다가 외국선수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리그 제한 규정도 완화했다. 금지된 리그였던 스페인, 터키, 이탈리아, 이스라엘, 러시아, 그리스, 중국 리그에서 뛴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줬다. 단, 최근 3년간 미국프로농구(NBA) 경력 선수와 최근 2년간 유로 리그 및 컵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는 영입이 불가능하다. 어찌됐든 외국선수의 선발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감독들의 주름이 깊어지는 것일까? 프로농구에서 외국선수 선발은 1년 농사에 비유된다. 외국선수만 잘 뽑아도 플레이오프는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칫 실패하면 한 시즌을 완전히 망칠 수도 있고, 다음 시즌은 외국선수 보유 자체가 1명밖에 없기 때문에 토종선수로만 경기를 치러야 하는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다음 시즌 외국선수 재계약이 확실시 되는 구단은 인천 전자랜드와 원주 동부다. 전자랜드는 KBL에서 두 시즌을 뛰며 구단 역대 최고의 성적(정규리그 2위)을 일궈낸 허버트 힐과, 동부는 지난 시즌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끈 돌풍의 주역 로드 벤슨과 재계약을 맺기로 결정한 상태다. 안양 한국인삼공사도 지난 시즌 활약하다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데이비드 사이먼과 재계약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고민 중이다.
반면에 나머지 7개 구단은 새로운 인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자유계약’이라는 포장과 달리 실상은 그리 밝지 않다. 수준이 높은 외국선수들은 KBL 보수 상한선인 4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80만~100만 달러까지 올라간 상태. 또 다시 뒷돈 얘기가 오가고 있어 KBL의 보수 상한선 무용론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감독들은 “외국선수에게 투자를 해서 실패할 경우 책임이 더 커지기 때문에 차라리 트라이아웃 제도가 마음이 더 편하다”고 하소연한다. 감독들의 주름살이 깊어지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감독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외국선수 찾아 삼만리’를 방불케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나라 다양한 지방 대회를 찾아다니다보면 허재(KCC) 감독의 말을 빌려 ‘거지꼴’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점 찍어둔 한 명의 선수를 보기 위해 비싼 출장비 들여가며 장거리 비행 끝에 도착했는데 그 선수가 뛰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혹은 그 사이 다른 팀으로 옮기는 일도 있다. 환장할 노릇이다. 유럽을 다니다보면 다른 감독들과 마주칠 때가 많은데 다들 덥수룩한 수염에다 거지 행색들을 하고 있어 서로 쳐다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
주로 미국에서 외국선수를 물색하는 유재학(모비스) 감독도 상황은 비슷했다. 프로농구 초창기 시절 미국 하부리그 외국선수를 보러 다닐 때의 일이다. 유 감독이 찾은 곳은 시골의 작은 마을. 버스도 없어서 차를 렌트해 길을 물어가며 7시간을 찾아 갔는데, 공지도 없이 대회가 연기된 것이다. “갖은 고생 다해서 어렵게 찾아간 곳에 차를 주차하려다보니 주차장에 차가 한 대도 안 보이더라. 얼마나 황당하던지….”
유 감독은 유럽에서도 내비게이션이 없는 차가 많아 택시를 탔다가 낭패를 본 경험도 있다. 체육관과 공항 중간에 숙소를 잡고 택시를 타고 들어갔는데, 경기를 마친 뒤 나올 때 택시가 없었던 것. “비는 내리고, 차는 없고, 결국 주차장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는 차를 붙잡고 통사정 끝에 겨우 얻어 타고 나온 적도 있다.” 이렇게 힘들 게 찾아간 곳에서 좋은 선수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 허탈감은 배가 된다. 이번에도 미국에서 6~7명의 외국선수를 본 유 감독은 “실제로 확인해보니 내 스타일도 아니고 생각했던 것만큼 실력도 별로라서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외국선수 길들이기’에 정통한 전창진 감독의 아련한 추억은 현재 문태종(전자랜드)으로 더 익숙해진 제로드 스티븐슨이다. 자유계약 시절 당시 유럽에서 뛰고 있던 문태종을 낙점한 전 감독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문태종과 만나 계약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낮 12시에 만나기로 한 터라 일찌감치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태종은 그 자리에 나타나질 않았다. 전 감독은 “문태종 측에서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한 러시아로 방향을 틀었다고 알려와 결국 계약이 불발된 적이 있었다. 외국선수 선발 과정에서 가장 아쉽고 힘들었던 기억”이라고 떠올렸다.
강동희(동부) 감독은 후회보다 성공을 거둔 경우다. 기회가 있을 때 마퀸 챈들러와 애런 헤인즈를 뽑지 못한 것에 대해선 후회스럽다고 밝혔지만, 재계약을 확정지은 로드 벤슨에 대해선 행복하기만한 기억이다. 지난해 드래프트 당시 강 감독이 벤슨을 호명했을 때 다른 감독들이나 구단 관계자들조차 당황스러워했다. 허 감독은 강 감독을 보고 “선수도 아닌 애를 뽑고 네가 미쳤구나. 옷차림도 정상이 아닌 놈을…”이라고 말했을 정도. 영입 후 강 감독도 시범경기를 할 때까지 믿음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개막 후 로드 벤슨은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강 감독은 “시즌이 들어가서 이렇게 확 달라질 줄 몰랐다. 외국선수는 정말 한두 달 봐서는 모르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트라이아웃 현장에 나타난 벤슨의 복장과 함께 사람들의 비웃음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회상한다.
서민교 월간 점프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