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금감원 중징계 취소 판결 불구 CEO 징계 권한 인정…향후 함영주 재판 결과도 예측 힘들어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손태승 회장이 제기한 파생결합증권(DLF) 불완전판매 관련 금감원 제재 불복 소송에서 원고에 대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내부통제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초래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당시 은행장이던 손 회장에 물어 문책경고 제재를 결정했다. 손 회장 측은 금감원장에 대해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 권한이 없고, 내부통제 위반에 따른 CEO 징계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금감원장의 은행장 중징계 권한이 인정되고, 내부통제 책임도 CEO에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금감원이 제재 사유로 든 5가지 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 사유를 따져볼 때 4가지는 법적 운영상의 잘못이어서 위법으로 볼 수 없고, 1가지만 법을 어긴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 임원자격이 제한되는 문책경고의 중징계는 지나쳐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결이다.
특히 재판부는 관치금융으로 상징되는 과도한 금융관련 규제와 함께, 금융 고위관료들의 이른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에 의해 포획되는 현상) 문제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금융 고위관료들이 퇴임 후 금융회사에서 일하거나 관련 단체들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규제포획으로 예방적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내부통제 의무의 적극적 해석을 옹호했다.
재판부는 또 금융회사의 탐욕에 제동을 걸 내부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원인으로 규제포획을 적시했다. 이는 일종의 전관 예우로 ‘모피아(Mofia)’와 연결된다. 모피아는 재정경제부의 영문약자인 MOFE(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재경부 인사들이 퇴임 후에 정계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해 산하 기관들을 장악하며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이다.
금감원은 추후 항소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1심 재판부가 징계 취소 결정을 내렸지만, 손태승 회장의 잘못을 인정했고 제재 대상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1심에서 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된 부분을 항소심에서 위반으로 인정받는다면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유지할 수도 있어서다. 행정소송에서 금감원이 1심에 승복할 경우 위상에 심각한 타격도 예상된다.
손태승 회장에 이어 금감원 중징계에 대해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DLF 관련 문책경고)의 재판 결과도 예측이 어렵게 됐다. 내부통제 의무 위반으로 금감원이 중징계를 내릴 수도 있다는 행정법원의 판단이 나옴에 따라 위반의 경중에 따라 처분 취소 또는 기각 결정이 모두 가능하다. 함 부회장의 징계가 확정되면 향후 3년간 금융사 재취업을 할 수 없다.
은행이 아닌 금융회사 CEO 중징계의 경우 건의는 금감원이, 최종결정은 금융위원회가 한다. 현직 CEO 가운데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라임펀드 관련),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옵티머스펀드 관련) 등이 금융위 결정은 앞두고 있다. 1심 법원이 내부통제 의무 위반 책임을 CEO에 물을 수 있다고 인정한 만큼 금융위는 징계의 '가부(可否)'가 아닌 위반의 '경중(輕重)'을 따지게 됐다.
한편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의 내부 인사쇄신은 명분이 약해지게 됐다. 전임 윤석헌 원장 때 이뤄진 DLF 관련 은행장 중징계가 어느 정도 법적 정당성을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임원(부원장보) 이상 일괄사표 제출을 요구했지만 이를 수리할 명분이 약해졌다. 기관장 취임 후 관례처럼 이뤄지던 임원·간부에 대한 일괄사표 제출요구는 이미 법원에서 불법 판단이 내려진 사안이다. 내년 차기 정부 출범 후 원장 교체가 불가피하다. 무리하게 일괄사표 수리를 감행한다면 소송 등이 제기되며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