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니까 오십 먹은 변호사가 백살 김형석 교수를 보고 오래 사는 게 위험한 거라고 했더라고. 인간의 적정수명은 80세라고 말이야. 나는 죽으라는 거네.”
옆에 있던 70대 말의 선배가 거들었다.
“내가 청와대 앞에서 하는 집회에 간 적이 있어. 길가에서 데이트를 하는 젊은 남녀와 마주쳤는데 나를 보는 눈길이 증오와 저주에 가깝더라고. 어떻게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가 이렇게 적대적이 됐는지 납득을 할 수가 없더라고.”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지하철을 타면 노인들의 무임승차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광고판에 써 있어. 그걸 보는 젊은 세대한테 눈총을 받는 느낌이 들어. 우리 늙은이가 젊은 사람들 덕을 보면서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게 아니잖아? 산업화시대에 우리가 돈 벌어 낸 세금으로 지하철이 만들어졌고 오히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우리 신세를 지는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우리가 눈치를 봐야 해?”
사회는 그와 그의 집안에 감사해야 했다. 그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한 역사에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도 한국전쟁의 영웅이었다. 그 역시 바른 세상을 위한 투쟁을 해 왔다. 늙은이는 추하고 둔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보는 ‘에이지즘’이 한 변호사의 발언을 통해 세상에 꼬리를 드러냈다.
노인 혐오는 인류의 오래된 정서다. 나도 젊은 시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강의실에서 늙은 교수를 보면 짜증이 났다. 돋보기를 수시로 벗었다 썼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굼뜬 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노인을 보면 그들이 왜 사는지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의 젊음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노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던 젊음이 어느 날 소리 없이 잦아들고 어느새 나도 머리에 하얗게 눈이 덮였다. 젊은이가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되는 걸 그땐 몰랐었다. 늙으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인다. 모르던 게 깨달아진다. 철없던 젊은 나를 말없이 지켜봐 주던 늙은 부모의 사랑을 뒤늦게 알았다.
잔잔한 감동을 느꼈던 작은 얘기들이 있다. 변호사로 성공한 아들을 둔 늙은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의 눈에 아버지는 앞뒤가 꽉 막힌 심통 맞은 늙은이였다.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볼 때마다 부딪쳤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의 집을 찾았다. 만나서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부딪쳤다. 화가 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갔다. 아들도 아버지를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서랍에서 스크랩북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아들에 대한 신문기사들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숨은 사랑이었다. 그걸 보는 아들의 눈가에 회한과 함께 물기가 맺혔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사이가 나쁜 모녀였다. 만나면 다투었다. 늙고 고집 센 엄마가 싫어 딸은 엄마를 찾지 않았다. 그러던 엄마가 죽었다. 유품을 정리하러 간 딸은 엄마가 쓰던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그 안의 과일청이 담긴 병엔 ‘우리 딸’이라고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 그걸 보면서 딸은 울었다. 그게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의 관계이기도 하다.
흙집에서 20명의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던 100세 넘은 교수가 젊은 시절 져야 했던 가난과 멍에를 그 50의 변호사는 생각해 봤을까. 지금의 탈북민보다 더 비참한 삼팔따라지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을까. 정권에 조금만 반대하는 강연을 해도 연행되던 그 시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통합해서 어울려 사는 전에 없던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젊음이 특권은 아니다. 얕은 생각에서 즉흥적으로 막말을 내뱉는 게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다 나쁜 놈이라고 하는 것도 유아적인 발상이다. 늙은이의 지혜와 젊은이의 에너지가 서로 스미고 우러나면서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