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과 불법 사이 빠져나갈 구멍 ‘숭숭’
경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경찰은 사용처 분석을 통해 기프트카드가 거제와 통영 등 경남지역 8군데 일반병원 의사들에게 제공된 것을 확인했으며, 이를 건넨 제약업체 직원 6명을 추가로 입건했다. 계속되는 경찰 수사에 그동안 제약회사와 병원 측 입·출금계좌가 연이어 발각됐고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듯 보였다. 담당 경찰 역시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수사 의견을 신청하고 1월 말경엔 수사를 마무리 지을 거라 장담했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수사는 답보상태다. 되레 의료기관과 수사 관계자들 사이의 치열한 법리싸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건 담당 경찰은 그 이유에 대해 기프트카드가 건네진 정황은 밝힐 수 있었으나 대가성에 대한 혐의를 확정짓진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거제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거액이 건네졌을지라도 기프트카드를 주고받은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대가성을 밝히는 게 관건인데 혐의자들이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주고 받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거액의 돈이 오고 간 정황만으로 법적 처분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고 덧붙였다.
십 수억 원의 돈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건네질 수 있었을까.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리베이트 비용을 건넬 다양한 통로가 존재한다고 귀띔했다. 한 대형 제약회사 관계자는 “의료법을 살펴보면 의사들은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실험 지원 등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일정 범위 안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보호 받고 있다”며 “대부분 제약회사들은 리베이트 비용을 해당 단서조항에 적시된 명목으로 탈바꿈시켜 건네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가장 손쉽게 악용할 수 있는 것이 PMS(Post-Marketing Surveillance) 비용이었다. PMS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약을 시판한 후 환자에 끼친 영향에 대해 파악하는 사후조사’다. 그렇지만 병원과 제약회사라는 갑을관계에선 암묵적 합의에 따라 그 예상 비용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뒷구멍’으로 통했다.
이번 리베이트 수사가 진행되면서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바로 이 PMS 용역비용이지만 심증이 있어도 물증을 밝혀내기 힘들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거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했던 인천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회계장부를 꼼꼼히 확인해 영수증 처리 내용과 연구 과정 등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리베이트 사건은 상당수 불구속 수사로 진행되다 보니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경우 시간 끌기를 하거나 과거 자료라 폐기처분했다고 할 땐 속수무책”이라고 설명했다. 법정까지 가더라도 피고가 계속 항소하는 탓에 리베이트 사건이 처벌까지 이어지려면 한 건당 1~2년은 걸린다는 게 통념으로 굳어져 있기도 했다.
최근 주목을 받는 ‘울산 발 리베이트 사태’ 역시 같은 이유로 수사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평가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지난 4월 12일 리베이트 비용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공중보건의 3명을 불구속 입건했고 이들에게 돈을 건넨 15개 제약업체 관계자들을 소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제약회사 영업 장부를 입수했고 리베이트 비용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의사 1000여 명의 명단을 입수했다. 이후 수사는 의사들이 근무하는 소재지 별로 확대됐다. 이번에야말로 강화된 쌍벌제의 효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닐까 의료계 내 긴장도 고조됐다.
그러나 이번엔 리베이트 비용 수수 시점이 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경찰에 소환된 의사들은 쌍벌제 시행 시점 이전에 발생한 리베이트 수수 혐의에 대해선 수사에 협조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 초기 울산경찰청은 관련자들을 전부 소환해 치밀하게 조사할 예정이라 밝혔지만 취재결과 진료와 학술회 참석 이유로 경찰 소환을 차일피일 미루는 이들이 다수였다. 심지어 혐의를 받고 있는 의사들 중엔 이메일 조사나 변호사를 통한 서면답변을 요청하고 있는 이들도 다수였다.
결국 울산경찰청은 지난 4월 20일 의사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소급적용(법을 만들기 이전 일에 대해서 들춰내 처벌하는 일)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힌 것. 울산경찰청 수사2계 관계자는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인 것은 맞다”고 전제한 뒤 “신분이 공무원에 준하는 공중보건의에 대해선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다”며 수사가 이대로 종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국 의료계를 뒤흔들며 떠들썩하게 시작된 울산 발 리베이트 수사는 결국 강화된 리베이트 쌍벌제가 아닌 공무원 윤리강령에 기대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란 지적은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애초부터 어디까지를 리베이트로 볼 것인지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애매했다”며 “의료법이 존재하고 보건복지부라는 감시감독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나서 불법이라 단정하고 쌍벌제 이전 행위까지 처벌하려 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