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2주 영업제한 고스란히 빚으로, 결국 비극으로”…“잊지 못할 옛날 통닭” 소주 올리고 간 단골도
서울 마포구에서 23년 동안 맥줏집을 운영하던 자영업자 A 씨(여·57)가 9월 7일 자신의 가게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A 씨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한 생활고와 영업난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의 휴대전화에는 채권을 요구하거나 집을 비워 달라는 내용의 문자가 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거주하던 원룸을 비우고 식당 지하 1층에서 생활하면서까지 직원들 월급을 챙겨줬다. 지인들에게 모자란 돈을 빌리며 버티던 A 씨였으나 1000만 원에 달하는 월세와 직원들의 월급은 A 씨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찼다.
A 씨는 1999년 서울 마포구에 맥줏집을 열었다. 마포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입소문을 탔던 이곳은 한때 4곳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점심에는 뷔페를 했다. 뷔페를 할 때는 음식을 복지재단에 보내기도 했다. 그런 A 씨에게도 코로나19는 냉정하기만 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모임 인원이 제한되자 당장 회식이 중단되면서 회사 근처 호프집이 가장 먼저 큰 타격을 입었다. 영업시간마저 제한되자 한때 잘나갔던 식당의 매출은 절반, 그 절반의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2020년 여름에는 점심 장사마저 접어야 했다.
지속된 경영난으로 6월부터는 도시가스 공급이 중지된다는 독촉장도 받아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도시가스 검침원도 여러 차례 가게를 방문했지만 A 씨를 만나지는 못 했다. 식당을 찾았다 발길을 돌린 검침원은 “금월 6일까지 가스계량기의 지침을 전화나 문자로 통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인 뒤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8월 31일 지인과의 연락이 A 씨와 세상의 마지막 소통이었다. 그의 시신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9월 7일에서야 발견됐다. 경찰 역시 사망 시점을 시신 발견 며칠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9월 17일 오후 2시. 일요신문이 다시 찾은 A 씨의 식당엔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국화 꽃다발이 가득했다. 식당 출입문에는 A 씨에게 보내는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문 바로 아래 원목 계단에는 막걸리와 소주병도 줄지어 놓여있었다. 식당 앞을 쉽게 지나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추모를 위해 수원과 용인 등에서 찾아온 자영업자도 있었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포스트잇의 내용을 읽고 “뉴스에 나왔던 그곳이다”라며 짧은 묵념을 하기도 했다.
A 씨를 잊지 못 한 손님들은 식당을 다시 찾았다. 이날 가족과 함께 다시 식당을 찾은 직장인 김 아무개 씨(48)는 “2018년부터 알던 곳이다. 마포 인근 직장인들이면 회식으로라도 한번은 와봤을 곳이다. 퇴근 후 이곳의 참나무 장작구이 통닭과 맥주 한잔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잊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을 주기 위해 포장해가기도 했는데 그때 그 통닭 맛이 생각나 이렇게 가족들과 왔다”며 “평생 남을 위로하는 음식만 하시고 정작 본인은 위로받지 못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 씨는 가방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문 앞에 올려두었다.
또 다른 출입구인 통유리 문틈에는 손님들이 A 씨에게 보내는 편지도 놓여있었다. 매일 점심을 이곳에서 먹었다는 한 직장인은 A4 용지 한 장 가득 그리움의 편지를 써 내려갔다. 당시 A 씨는 6000원에 부대찌개를 포함한 뷔페를 제공했다고 했다.
“근처 회사에 다니며 이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던 직장인이다. 기사로 비보를 접하고 많이 놀랐다. 첫 직장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매일에 이곳은 따뜻한 점심을 제공해준 고마운 곳이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일하던 때였기에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던 그때, 고민 없이 갈 수 있었던 곳이 이곳이었다. 힘들었지만 점심시간만을 기다리고 배부르게 나왔던 그 소중했던 시간들을 잊지 못 한다.”
그는 이어 “지나가다 들러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 슬픈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이런 감사함을 느끼게 되어 죄송하다. 사장님께서 생전 나누신 사랑을 그곳에서는 배로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을 줄였다.
같은 자영업자의 시선에서 보낸 공감 어린 추모의 편지도 있었다. 이태원의 한 호프집 점주는 무려 A4 용지 네 장 분량의 글을 가게 한 쪽에 붙여 놓았다. 그는 “한 분씩 세상을 떠나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며 “직장처럼 퇴사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대부분의 가게는 시작하면 물러날 곳이 없어 그 끝을 봐야 한다. 빚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사가 힘들면 온 가족이 동원되기도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가게) 모든 곳에 업주와 직원들의 땀이 스며든다. 그것도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몇 년에 걸쳐 완성되어 간다. 살던 집에 정이 드는 것처럼 (가게에) 애증이 붙는다. 그래서 가게는 생명체와 같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2주 영업제한 연장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서도 말을 얹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을 인격체로 본다면 사람을 장기말처럼 배치했다가 뺏다가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계속된 2주 영업제한 연장의 반복은 사람을 고용했다, 해고했다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가게) 안에는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장님은 일하는 친구들을 많이 아끼셨나 보다. 가시는 그날까지 직원들을 챙기신 것을 보니 말이다. 직원들을 빨리 다 버리셨으면 사장님은 사셨을 텐데….”
마포구 인근에 작은 카페를 열었다는 자영업자 이 아무개 씨(30)도 이에 대해 동의했다.
“단순히 장사가 안 되어서의 문제가 아니다.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있다. 가게에서 사장은 가장이고 직원들은 내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다. 나는 가난한 사장이지만 잘린 직원들은 실직자가 된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2주 뒤엔 정상 영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잠깐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당분간 나오지 말라’는 말을 못 하는 것이다. 장사를 오래 하신 분들이면 더 그렇다. 그렇게 2주 영업제한 연장의 반복은 고스란히 빚이 되고 결국 이런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올 초 카페를 개업했다는 이 씨 역시 폐업을 고려중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이었지만 임대계약, 기기대여 등의 문제로 가게 오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경영난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1년 가까이 적자를 보고 있다. 재난지원금은 자격 요건이 맞지 않아 신청하지 못 했다. 결국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동산에 가게를 내놨다. 내년 초까지만 운영을 하고 접을 생각”이라며 “하나 둘 쓰러져가는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의 비극은 연휴를 가리지 않았다. 연휴 둘째 날인 9월 19일 순천의 한 야산에서는 사업 실패로 파산 신고를 하고 사라진 40대 남성이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망 시점을 9월 초 전후로 예상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A 씨 사망 이후 생활고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 실태조사에 나섰다. 비대위는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간 몰려든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제보만 25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편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자영업자들이 떠안은 빚은 약 66조 원, 폐업한 매장은 약 45만 3000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