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튜버, 기르던 아기돼지 통구이 영상 충격…‘픽션’ 해명 불구 “학대·잔인” 논란 여전
일본인 영상편집자 A 씨(35)는 5월 25일 유튜브 채널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를 개설했다. 이후 돼지를 직접 길러 100일 후 잡아먹겠다며 생후 75일 된 아기돼지 영상을 공개했다. 제목을 번역하면 “처음 집에 온 생후 75일의 미니 돼지가 너무 귀엽다. 100일 후 먹히는 돼지 1일차”였다. ‘돼지갈비’에서 따온 ‘갈비’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일본 현지에선 ‘카루비’ ‘칼사마’ 등으로 불렸다.
이후 영상은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갈비 앞에서 돈까스를 먹거나 삼겹살을 굽는 등 다소 불쾌한 영상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시간을 거듭할수록 A 씨와 갈비 모습은 여느 반려동물과 주인과 다르지 않게 변했다. 양육 54일째 되던 날 A 씨는 갈비의 몸통에 하네스를 채우고 함께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다녀오면 깨끗하게 목욕도 시켜줬다. 때로는 푸딩을 직접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거나 복숭아를 먹이기도 했다. 59일째 되는 날에는 간식을 이용해 ‘손’을 주는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반려견의 훈육과 다르지 않았다.
갈비와 A 씨의 일상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불편해졌다. 96일째 되는 날에는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목욕하는 돼지’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고, 97일째에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요리를 알려달라’는 내용이 공유됐다. 98일째에는 ‘헤어지는 돼지에게 원하는 만큼의 음식을 줬다’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A 씨는 갈비가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준비해 배불리 먹인 뒤 낮잠을 재우고 잠든 갈비의 등을 쓰다듬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구독자들은 “갈비를 먹지 않고 계속 키웠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A 씨가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에는 “주인이 아프니 도축 시점이 미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진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와 달리 A 씨는 100일째가 되던 날 갈비를 도축했다. 그가 사전에 공개한 사진에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릴 위에 통구이가 된 채 누워있는 새끼돼지가 있었다. 돼지의 등쪽에는 양념이 잘 배어 들어가도록 6~7개의 칼집이 나 있었다. 이날 영상에서 A 씨는 갈비가 생전 머무른 돈사에 가서 명복을 비는 행동까지 했다. 다만 영상 말미에 작은 글씨로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와, 실제로 도축된 돼지가 진짜 갈비인지를 두고 논쟁이 일기도 했다.
이 불편한 영상의 제작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A 씨는 일본 주간지 ‘AERA’ 인터뷰에서 푸드로스(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여 생명을 보호하자)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변화를 염두에 두고 영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만 채식주의나 동물권 캠페인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A 씨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비건과 똑같은 생각이었다면 ‘먹지 맙시다. 100일 후에는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발표했을 것이다. 평상시에 우리가 먹고 있고, 먹을 때마다 감사하게 다른 생명을 받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SDGs(지속가능한 발전목표)와 관련해서는 세계적으로 인식이 동일하기 때문에 거기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제작자의 의도가 밝혀졌음에도 행위 자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거세다. A 씨의 행동이 동물학대라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온 까닭이다. 많은 이들이 애정을 가지고 키운 갈비는 반려동물에 해당하며 이를 죽인 것은 동물학대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일각에서는 “시골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돼지의 일상을 보여주었다고 연민을 품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A 씨 역시 101째 되는 날 ‘당신이 먹고 있는 돼지고기와 갈비는 똑같은 생명입니다’라는 문구를 올렸다.
동물보호단체들은 A 씨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비판했다. 새끼돼지가 인간과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과 동물보호법의 허점 양쪽을 모두 악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A 씨는 교묘히 일본 법망을 피해갔다. 일본 ‘동물의 애호 및 관리에 관한 법’ 44조에 따르면 애호동물을 함부로 죽인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A 씨는 “‘함부로’가 아닐 수 있도록 했다”며 “영상과 도축에 관련해서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했다”고 해명했다. 국내 동물보호법에 비추어 봐도 A 씨가 갈비에게 직접 학대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다. 다만, 국내의 경우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식용으로 키우는 돼지는 사전에 사육 등록을 하고 반드시 등록된 농장에 도축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절차 없이 개인이 식용 목적의 돼지를 키워 도축하는 것은 불법이다.
한편 A 씨가 유튜브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반복적으로 게시한 것은 시청자를 향한 정서적 폭력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A 씨는 9월 10일과 14일 죽지 않은 갈비의 영상을 올렸다. ‘소란을 피웠다. 나는 잘 지내요’라는 영상에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갈비의 일상이 담겨있었다. 이 영상 밑에는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A 씨를 잘 따르는 것을 보니 갈비가 맞다”는 안도의 댓글 외에도 “역시 이렇게 정이 들면 먹을 수 없다. 갈비는 반려동물이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식용동물과 반려동물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로 옮겨갔다. 새끼돼지부터 닭, 토끼, 오리 등 반려동물의 범위가 다양해진 요즘, 단순히 유대감만으로 식용동물과 반려동물을 나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8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집회 도중 살아있는 방어와 참돔을 길바닥에 내던진 경남어류양식협회 대표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 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정의하며 여기에는 어류도 포함된다. 정을 주면 반려돼지이고, 기르는 과정을 보지 않았으면 돼지고기일까.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