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뒷바라지, 선수 출신이 해야죠”
▲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 왜 도전했을까?
‘한국 여자골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구옥희는 아쉬울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가 올린 통산 44승에는 한국 역대 최다승(20승), 일본 투어 개척(23승), 최초의 미LPGA 우승(1승, 사상 최초의 3개국 프로투어 우승자) 등의 온갖 금자탑이 포함돼 있다. 2006년 KLPGA가 ‘명예의 전당’을 만들 때 ‘당연히’ 1호로 헌액됐다(2호는 박세리).
33년간 프로생활을 하면서 돈도 제법 벌었다. 비록 지인에게 속아 물거품이 됐지만 ‘구옥희 골프장’을 건설하려고 했을 정도다. 지금도 자기 이름을 건 그럴싸한 골프연습장을 하나 열려고 준비 중이다(구 회장은 이 대목에서 웃으며 “골프장은 아니고, 괜찮은 연습장 정도”라고 답했다).
“저 몸 보세요. 얼마나 좋아졌어요? 2008년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지난해 여름부터 사상체질을 접하면서 살이 좀 붙고 몸이 만들어졌죠. 그래서 동계훈련도 열심히 하고, 올해 좀 잘 해보려고 했어요.”
일단 이 말은 당초 이 타이밍에 회장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최고령 우승기록(45세)을 갖고 있고, 2005년 일본에서 만 48세 10개월의 나이로 우승해 화제를 모았을 만큼 구옥희는 필드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하지만 저한테는 협회가 참 중요해요. 협회 태동을 함께했고, KLPGA 이름을 걸고 일본과 미국에도 진출한 거예요. 갑작스레 일이 돌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협회가 저를 필요로 한다고 했고, 제가 이를 마다할 명분이 없었죠.”
구옥희의 골프인생을 되돌아보니 그에게는 KLPGA가 곧 자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5년 19세의 나이로 골프장(123골프장) 캐디가 됐고, 1978년 강춘자, 한명현 등과 함께 한국 여자프로골퍼 1호가 됐다. 한국에서 구옥희가 가장 친숙한 곳이 바로 KLPGA인 것이다.
구옥희 회장은 “앞선 기업인 출신 회장님들이 KLPGA 발전에 큰 도움을 주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죠. 하지만 일본은 오래 전부터 선수 출신이 회장을 맡고 있고, 잘 굴러가고 있어요. 지금 회장도 저랑 선수생활을 같이 한 고바야시 히로미죠. 협회는 소속 회원이 회장을 맡는 게 당연한 겁니다. 절차가 매끄럽지 못해 죄송하지만 제가 회장이 된 과정은 장기적으로 발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후임도 선수 출신이 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 잘할 수 있을까?
대답한 사람도, 질문자도 웃음이 나왔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요즘 결제 많이 하시죠?”라고 물었는데 이 점잖은 50대 중반의 독신 여성 회장이 농으로 “제가 원래 사인은 많이 하잖아요”라는 썰렁 유머를 노타임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질문의 요지로 돌아가 이렇게 비난도 많고, 반대여론도 잠잠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장직을 잘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골프인생 대부분을 선수로 필드에 있었던 까닭에 행정 경험이 없지 않느냐고 말이다.
구옥희 회장은 이런 지적에 평생을 골프와 함께 살았고 이 과정에서 골프행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또 KLPGA 부회장을 이미 맡은 경험이 있기에 실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전임 집행부의 일부 인사가 총회소집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고, 1부투어 선수들도 선수협의회(회장 지유)를 구성하는 등 녹록지 않은 주변 상황으로 화제를 돌렸다.
구 회장은 “총회를 몇 번이나 하면서 많은 대의원들이 저에 대해 변함없이 지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선수협의회도 그럴 수 있고, 시간을 갖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 오해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중계권 문제에 대해서도 물었더니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조만간 해결될 겁니다”라고 자신있게 답했다. 회장 구옥희는 선수 구옥희 못지않게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풍겼다.
# 인간 구옥희
‘선수 구옥희를 다시 볼 수 있을까’도 관심사다. 구옥희 회장이 필드에서 컷 통과 이상의 성적을 충분히 거둘 수 있다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글쎄요, 주변의 의견이 갈라집니다. 아름다운 모습이라고도 하고, 뭐 회장이 그런 것까지 하느냐고도 하고 말이에요. 어쨌든 개인적으로도 더 도전하고 싶기는 한데, 일단 협회가 안정되면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구옥희 회장은 정·재계 및 연예계까지 지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한 유명인사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괜히 그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싶다”며 극구 사양했다. 단 고승덕 국회의원과 최상호 프로와는 가까운 사이라고 두 명만 밝혔다. 최상호 프로는 KPGA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어쩌면 올해 내에 각각 남녀 골프의 상징적인 존재인 최상호-구옥희 체제로 운영될지도 모르겠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