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발표에 주가 27% 폭락 소액주주 반발…오너일가 6월 블록딜 처분 360억 자금 마련 논란
#임상 왜 멈췄나
부광약품은 지난 9월 30일 ‘레보비르(성분명 클레부딘)’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2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 코로나19 치료제를 추가 개발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레보비르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시작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앞서 국내 제약사 중에는 일양약품과 GC녹십자 역시 치료제 개발을 포기한 바 있다.
부광약품은 지난해 4월 국내 제약사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코로나19 치료제의 허가용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항바이러스제인 레보비르가 당시 코로나19 치료에 사용했던 ‘칼레트라’와 유사한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레보비르는 국산 11호 신약으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B형 간염 치료제다. 즉 부광약품은 약물재창출 방식을 통해 약품의 안전성 확인 과정인 임상 1상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 2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 2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기도 했다.
부광약품은 첫 번째 임상(CLV-201)에서 중등증 환자 61명을 대상으로 41명의 레보비르 투약군과 20명의 위약군을 비교했다. 1차 유효성 평가변수는 음성전환율(음전율)이었다. 임상 결과 음전율은 충족하지 못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소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서브그룹인 고혈압환자군 22명에 대해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p<0.05) 값이 나타났다.
이어 부광약품은 1차 평가변수를 FDA와 유럽의약청(EMA) 등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 활성 바이러스 감소량으로 변경해 두 번째 임상(CLV-203)을 시행했다. 후속 임상시험에서는 중등증 환자뿐 아니라 경증 환자를 대거 포함해 총 104명이 모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통계적 유효성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임상시험을 중단한 것이다.
부광약품은 “두 건의 2상 임상시험에서 모두 중대한 이상 사례는 없었고, 앞선 임상시험을 통해 레보비르 캡슐은 중등증의 코로나 고혈압 환자군에서 바이러스의 감소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의미 있었다”면서도 “향후 레보비르의 코로나19 치료제로서의 추가적인 개발은 계획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뿔난 소액주주들
치료제 개발 중단 소식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했다. 부광약품은 지난해 6월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2조 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지난 9월 30일 치료제 개발 중단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는 당일 종가 기준 1만 5000원으로 전일 대비 약 27% 폭락했다. 이후 주가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13거래일 연속 1만 3000원대에서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21일 현재 시가총액은 약 9665억 원 규모다.
부광약품 소액주주 사이에서는 치료제 개발 중단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사측이 주주들의 기대심리만 키운 채 느닷없이 장중에 개발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특히 개발 중단 발표 전날까지도 임상시험 대상자 수가 적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는데, 하루 만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소액주주는 치료제 개발 중단에 대한 의혹 등을 제기하며 사측에 대한 형사고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 소송단 핵심 관계자는 “당일 오후 1시 15분쯤 한 언론 기사를 통해 임상 데이터 등에 대한 정보도 없이 갑작스럽게 개발 중단을 발표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면서 “여태껏 지난 임상(CLV-201)에 대한 논문 준비와 150개국에 대한 치료제 관련 특허 출원, FDA로부터의 임상 2상 승인 등의 소식으로 주가를 올려놓고 결국 경영진만 배를 불렸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치료제 개발에 대한 노력보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는 김동연 회장 일가의 상속세 등 재원 마련에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19 수혜주’로 주가를 부양해 사익을 노렸다는 것이다.
부광약품은 지난해 최대주주였던 정총수 부회장이 지분을 대거 매도하면서 김 회장의 아들인 김상훈 사장의 비중을 키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김 사장 등 친인척 4명은 지난 6월 블록딜(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총 193만 8000주를 주당 1만 8650원에 처분해 361억 4370만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부광약품은 “연부연납 중인 증여세 납부 및 부채 상환이 임박해 보유주식 일부를 불가피하게 매도한 것”이라며 “임상 이슈 등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중단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치료제 개발 중단만 놓고 보면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상용성이 없는데 돈과 시간을 들여 무리하는 것보다 과감히 접는 것이 낫다”며 “해외의 경우 임상 데이터가 잘 나와도 상용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시장 밸류에이션(가치 판단)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의 임상 조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우리나라는 임상 환자 수가 적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값을 낼 수 있을 만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레보비르의 경우 신약 개발을 위해 혁신적인 물질을 발굴한 것이 아니므로 추가적인 개발이 보건경제적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갑작스러운 중단 발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주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회사가 발표하지도 않은 논문의 가타부타를 직접 따지고 관련 이슈를 팔로업하는 등 매우 예민하고 적극적”이라며 “남양유업 사례에서 보듯 불확실한 정보 또는 불필요한 기대를 불어넣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임상시험은 통계적 유의성 등 과학적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종 순간까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에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만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아 중단한 것”이라며 “당사는 코로나19만 다루는 제약사가 아니고, 파킨슨병 치료제·항암제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R&D(연구개발)에 진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러운 중단 발표에 손실을 본 주주들에 대해서는 "투자는 주주들의 판단 몫"이라고 답했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