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는 박종규 총에 죽었다”
▲ 오상운 작가가 지난 4월 19일 <퍼스트레이디 피격사건> 출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육영수 여사를 쏜 저격범으로 박종규 실장을 지목하며 당시 사건 영상을 공개했다. |
하지만 당시 수사과정의 미흡성과 현장에 있던 증인들의 증언, 그리고 훗날 밝혀진 여러 정황 속에서 사건에 대한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문세광이 박 대통령에 대한 저격 의도는 분명했지만, 그의 총에 직접적으로 육 여사가 당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시 경호원들의 엄호사격의 오발 가능성도 충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 무명작가가 당시 현장에 있던 박종규 경호실장을 육 여사를 피격한 범인으로 지목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박 실장은 당시 2인자로 통하던 권력자였다. 훗날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도 몸을 담았던 실력자기도 했다.
오 작가는 당시 사건을 소재로 한 <퍼스트레이디 피격사건>이라는 역사추리소설을 출간하면서 지난 4월 19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책 형식은 소설이지만 분명한 팩트를 가지고 집필했으며 박종규 실장을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물론 이전에도 육 여사 피격사건에 대해 각종 의혹과 미스터리를 제기한 신문과 방송은 많았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공식석상에서 범인을 지목하기는 처음이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당시 사건이 벌어진 현장 영상을 들고 나왔다. 영상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당시 사건을 촬영한 일반영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0.1초 단위로 쪼개어 놓은 ‘스냅 샷’이었다. 마지막 영상은 박 실장이 연단 옆으로 튀어 나오는 순간을 잡은 ‘반복 영상’이었다.
오 작가는 스냅 샷을 공개하며 최초 총성 이후 4.2초대를 가리켰다. 스냅 샷 안에서는 박 실장이 오른손에 일정표를 쥐고 왼손으로 좌측 옆구리에 찬 권총을 끄집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6.0초대에서 박 실장의 옆구리서 총이 발사된 듯 섬광이 비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오 작가는 “분명히 봐라. 6.0초대에서 박 실장의 첫 번째 오발탄이 나가는 장면이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7.0초대 장면에서 박 실장은 엉거주춤하게 총을 떨어뜨리다 또 한 차례의 오발탄이 발사된다. 오 작가는 이 장면을 가리키며 “두 번째 오발탄의 섬광이 보이지 않나. 박 실장은 당시 오른손으로 꺼내야 할 총을 왼손으로 꺼냈다. 오른손에는 일정표를 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총을 꺼내면 총구는 엉뚱하게도 뒤쪽 대각선으로 향하게 된다. 급하게 꺼냈기 때문에 문세광에게 조준도 할 수 없었고, 실수로 총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다. 그 순간 7.0초 때 두 번째 오발이 나간 거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그 순간 육 여사를 가리켰다. 육 여사는 영상에서 총에 맞은 듯, 좌측으로 쓰러졌다. 그러면서 그는 “박 실장의 두 번째 오발탄이 발사되는 순간, 섬광과 함께 육 여사가 좌측으로 쓰러진다. 이는 총성이 들리는 시점이기도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흑백의 흐릿한 영상 속에서는 박 실장 총구의 섬광으로 보이는 물체와 함께 육 여사가 좌측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오 작가는 당시 문제의 장면을 ‘반복 영상’으로 재차 보여줬다.
스냅 샷과 반복영상으로 추론한 그의 주장은 나름 설득력이 있어보였다. 문세광의 최초 총격 이후 박 대통령이 위치한 연단과 육 여사를 비롯한 VIP들이 착석한 무대중앙 좌석을 사이로 급하게 저격에 나서다 실수로 육 여사를 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좌측 옆구리에 위치한 권총은 원래 오른손으로 꺼내야 정상이지만 급하게 왼손으로 뽑다보면 오발의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다른 의문점은 연속 발사 시간이다. 기존 기록을 보면 문세광이 6초와 7.2초 사이 4발을 연달아 발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실제 리볼버 권총으로 1.2초라는 짧은 시간에 4발을 연속 발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의혹은 이미 지난 2005년 여러 언론사를 통해 제기된 바 있으며 모 방송사는 직접 실험을 해가며 증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개연성을 놓고 볼 때 오 작가의 주장이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확실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보였다. 무엇보다 오 작가는 오로지 개인에 의한 영상분석을 중심으로 박 실장의 오발을 주장했다. 또한 국과수와 같은 전문적인 기관에 의해 분석되고 검증된 자료가 아닐뿐더러 현장에서 시연한 영상의 상태 또한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오 작가는 순간 발생하는 흰 점을 섬광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확언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의 일방적인 설명만 듣고 영상을 본다면 누구나 그의 의도대로 보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사건이 벌어진 현장 검증 여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현장 검증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보다 전문적인 검증이 필요해 보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기자와 통화한 오 작가는 “나는 2005년 당시 피격사건과 관련한 외교문서가 공개된 뒤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난 ‘육여사피격사건진실규명연구회’라는 사모임을 조직하고 사건을 연구해왔다. 이번에 낸 책은 이러한 연구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나의 주장은 분명한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박종규는 누구
박정희의 실세 경호실장
오상운 작가가 범인으로 지목한 박종규 전 경호실장은 1930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1947년 군에 입대한 그는 육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처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과 인연을 맺게 된다. 5·16 쿠데타 당시 박 전 실장은 핵심요원으로 활약하며 장면 전 총리 체포 등에 수훈을 세운 바 있다. 그는 그 당시 박정희 전담 엄호대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친분이 있던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은 박 전 실장을 충성심과 강한 행동력은 물론 다른 역대 경호실장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감각과 국제적 감각까지 갖춘 뛰어난 인물로 회고하고 있다.
1961년부터 74년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는 14년간 경호실장직에 재직하며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당시에도 그는 워낙 사격술이 뛰어나 ‘피스톨 박’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실제로 육 여사 피격사건 발생 당시 그는 결과가 어찌되었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일하게 단상에 뛰어나가 엄호를 시도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 작가 역시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로 해석하고 있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경호실장직을 내놓은 박 전 실장은 훗날 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체육계의 실력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1985년 오랜 지병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의 실세 경호실장
오상운 작가가 범인으로 지목한 박종규 전 경호실장은 1930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1947년 군에 입대한 그는 육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처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과 인연을 맺게 된다. 5·16 쿠데타 당시 박 전 실장은 핵심요원으로 활약하며 장면 전 총리 체포 등에 수훈을 세운 바 있다. 그는 그 당시 박정희 전담 엄호대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친분이 있던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은 박 전 실장을 충성심과 강한 행동력은 물론 다른 역대 경호실장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감각과 국제적 감각까지 갖춘 뛰어난 인물로 회고하고 있다.
1961년부터 74년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는 14년간 경호실장직에 재직하며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당시에도 그는 워낙 사격술이 뛰어나 ‘피스톨 박’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실제로 육 여사 피격사건 발생 당시 그는 결과가 어찌되었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일하게 단상에 뛰어나가 엄호를 시도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 작가 역시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로 해석하고 있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경호실장직을 내놓은 박 전 실장은 훗날 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체육계의 실력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1985년 오랜 지병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피격 당시 총성 순서
‘문제의 총성’ 해석 분분
1974년 8.15 피격 당시 총성순서를 비교해보면 각 입장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식 재판기록을 보면 문세광은 최초 발포 이후 7.2초까지 장전된 탄알 5발을 발포한 것으로 되어있다. 특히 6초와 7.2초 사이 무려 4발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외교문서가 공개된 2005년 당시 SBS 등 주요 언론들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연속발사 시간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한 후 해석이 분분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SBS는 7.0초 당시 총성을 기존의 문세광이 아닌 제3자(경호원 추정)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번에 제기된 오 작가의 분석은 또 다르다. 박종규 실장의 총에서 비롯된 섬광 추정 물질을 증거로 6.0초대와 7.0초대 총성을 박 실장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7.0초대 박 실장의 오발탄이 육 여사의 머리로 향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총성’ 해석 분분
1974년 8.15 피격 당시 총성순서를 비교해보면 각 입장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식 재판기록을 보면 문세광은 최초 발포 이후 7.2초까지 장전된 탄알 5발을 발포한 것으로 되어있다. 특히 6초와 7.2초 사이 무려 4발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외교문서가 공개된 2005년 당시 SBS 등 주요 언론들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연속발사 시간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한 후 해석이 분분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SBS는 7.0초 당시 총성을 기존의 문세광이 아닌 제3자(경호원 추정)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번에 제기된 오 작가의 분석은 또 다르다. 박종규 실장의 총에서 비롯된 섬광 추정 물질을 증거로 6.0초대와 7.0초대 총성을 박 실장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7.0초대 박 실장의 오발탄이 육 여사의 머리로 향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