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대단지 2곳 ‘조직’ 경찰 무혐의 검찰 9명 기소…수사기밀 유출 혐의 경찰관 기소도
#송파구 아파트 단지 하나 놓고 만들어진 담합 모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5000세대가 넘는 H 아파트단지.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해온 A 씨는 중개업자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끼리 수수료를 담합해, 매도자나 매수자들이 더 저렴한 비용으로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70명으로 구성된 단체를 만들었다.
A 씨는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거래에 끼어드는 것도 막기 위해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비회원의 공동중개 요청은 거절하도록 회칙도 정했다. 단체는 회칙을 위반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는 자체적으로 벌금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A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당 아파트 소유자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 약 7000개가 기재된 파일을 확보해 영업에 활용하기도 했다.
역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2500세대가 넘는 L 아파트단지. 2020년 하반기, 근처에서 오래 거래를 해 온 부동산 중개업자 B 씨는 중개업자 10여 명을 모아 단체를 만들고 허위 매물을 올리자고 종용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허위 매물을 올려 고객들을 유치했다. B 씨 역시 회원들 간 거래만 종용했고, 공동중개망에 비회원이 접근하는 것을 아예 차단하기도 했다.
#경찰 무혐의 의견에도 검찰 적극 수사
비회원이었던 중개업자가 진정을 넣고, 회원이었던 부동산 중개업자가 허위 매물 유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고발장을 넣으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경찰은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 서울시특사경과 경찰은 A 씨, B 씨 사건을 지난 7월과 6월에 각각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통상 내부 고발자의 확실한 증거 제출이 없으면 입증하기 힘든 부동산 중개업자들 간 담합 사건의 전형적인 사건 처리 패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부동산 거래 담합 및 허위 매물은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특히 비슷한 시점에, 두 사건이 모두 무혐의 의견으로 넘어온 것이 오히려 검찰의 수사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먼저 넘어온 사건은 L 아파트 단지 내 담합 건으로 내부 고발자가 확실한 사건이기도 했다. B 씨를 고발한 것은 함께 단체 회원으로 활동했던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그는 허위 매물을 올릴 것을 종용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 단체를 나온 뒤 증거들을 모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그는 ‘본인이 경찰과 나눈 수사정보가 B 씨에게 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찰 수사를 받고 나오면 B 씨 측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수사를 받고 왔다는 것을 안다”는 취지의 협박을 받은 것.
지난 6월 8일, 경찰은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로 수사 주체가 바뀌자 고발자는 이런 사실들을 검찰에 털어놨다. 검찰은 다각도로 수사를 시작했다. 증거자료를 토대로 B 씨 관련 압수수색 및 계좌추적 등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B 씨 측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던 경찰서 소속 경찰관에게 청탁해 수사 상황을 전달받은 사실도 포착했다. 수사팀 소속은 아니었지만 같은 경찰서 소속이었던 C 씨는 실시간에 가깝게 수사 진행 상황을 문자를 보내주거나 전화로 알려줬다.
검찰이 한창 L 아파트 사건을 수사하던 중, H 아파트 사건 역시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이 검찰에 넘어왔다. 한 달 뒤인 7월 19일, 서울시특사경이 H 아파트 사건 관련 A 씨 등을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한 것. 단체 소속이 아니었던 비회원의 진정으로 시작한 탓에 증거가 부족했던 사건이었지만, 검찰은 L 아파트와 H 아파트 담합 사건 내용이 유사하다는 점을 주목했다.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경찰과 달리 전격적인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증거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압수수색 및 관계자 소환 조사를 진행한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지 4달여 만인 지난 10월 21일,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두 사건을 모두 기소했다. 서울동부지검 공정거래·경제범죄전담부(민경호 부장검사)는 조직을 만들어 부동산 수수료를 담합한 A 씨를 공인중개사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허위 매물을 종용한 B 씨를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아울러 A 씨와 B 씨가 만든 단체에 적극적으로 담합한 부동산 중개업자 7명도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수사 기밀을 유출한 경찰관 C 씨 역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2020년 공인중개사법상 부동산중개 담합 처벌조항이 신설된 이후 최초의 기소 사례이자,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암암리에 운영해 온 담합조직이 수사기관에 의해 드러난 첫 사건이기도 하다. 2020년 2월 21일 공인중개사법에 ‘부동산 중개 담합 처벌조항’이 신설됐지만, 그동안에는 기소된 적이 없었다. 한 지역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영업해온 부동산 중개업자들끼리 폐쇄·배타적으로 운영하는 단체 성격상, 내부자의 진술이나 제보가 없을 경우 증거 확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동부지검은 “시장에 신규 진입하거나 고액의 단체 가입비를 납입하지 못하는 비회원 부동산 중개업자들을 경쟁에서 부당하게 배제해 공정거래질서를 저해했고, 소비자에게 중개수수료를 부담시켜 부동산 거래비용 상승을 초래하는 등 조직적 범죄로 중대범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L 아파트 사건을 잘 아는 법조인은 “L 아파트 허위 매물 논란을 놓고 원래 해당 단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적폐’라고 말할 정도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검찰 수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단체 내부 정보를 아는 고발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비슷한 시기에 L 아파트 사건과 H 아파트 사건이 모두 검찰에 넘어온 탓에,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