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규에 배신감” 선 긋기, 국민의힘에 책임 돌려…검찰 안팎 ‘이재명 수사 제외론’ 솔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월 18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내세운 입장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이를 통해 이재명 후보가 어떻게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에 맞설지를 잘 보여줬다는 게 법조계의 국감 관전평이다. 이 후보는 기존에 고수했던 ‘국민의힘 게이트’를 강조하는 한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 도의적 책임만 인정했다. 측근이 아니라며 분명히 선도 그었다.
국감 전후로 검찰 안팎에서 ‘이재명 후보를 수사하더라도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검찰이 성남시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뒤늦게 실시하거나, 아직 시장실에 들어가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수사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르면 11월 초 늦어도 11월 중에 이재명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관계자들에 대한 기소 및 중간 수사결과 발표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국감에서 ‘도의적 책임’만 인정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질의에 일관되게 맞섰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에 대해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반발했던 기존 전략을 그대로 고수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좌 진상(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 우 동규(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라는 말이 경기도에 돌아다닌다”며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에 측근 연루설을 제기하자, 이 후보는 “유 전 본부장과 가까웠던 사이는 맞지만 측근은 아니다. 제가 일을 맡겼던 부하 직원의 하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배신감을 느낀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될 경우 유동규 전 본부장 사면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부패사범을 사면하느냐”고 밝히며 “김만배 씨는 인터뷰 때 한 번 봤다. 남욱 변호사는 알지 못한다.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성남시장 역할에 대해 ‘도의적’인 수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제가 인사를 잘못한 것, 제가 지휘한 직원 일부가 오염돼서 부패에 관여한 점에 대해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것은 입이 100개라도 할 말 없는 일이고 인사권자, 관리자로서 저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 “어쨌든 (개발이익) 100%를 환수하지 못하는 것은 제 부족함”이라며 “미배당한 게 있으면 성남의뜰에서 투자자에게 지급하지 않으면 되고, 이미 지급한 것은 가압류해야 한다”고 답했다.
녹취록 속 천화동인 1호의 절반 소유자인 ‘그분’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후보는 “돈 받은 자가 범인”이라며 곽상도 의원 등 국민의힘 쪽으로 대장동 개발 의혹의 책임을 돌렸다. 특히, 이 후보는 국감을 받는 기관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손팻말을 준비했다. ‘돈 받은 자=범인, 장물 나눈 자=도둑’이라는 문구였는데, 법조계에서는 이재명 후보 측의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구라는 해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지금까지 검찰 수사나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으로 보면 돈을 받은 자는 유동규 전 본부장과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그 외 몇 명의 법조인들 정도”라며 “천화동인 1호의 그분이라는 것도 돈을 받았다는 것도 드러나지 않은 이 후보가 범인과 도둑만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형사적인 책임에 대해 선을 긋는 문구”라고 분석했다.
실제 이 지사는 “부정부패의 주범은 돈을 받은 자”라고 강조했고, 국감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 받은 자가 범인이고, 장물 나눈 자가 도둑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글에서 “도둑질 못 하게 막으려고 했는데 국민의힘이 당시 당론으로 장물 회수하는 걸 방해해서 70%밖에 회수하지 못한 절반의 성공, 이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도 ‘당당’
시민단체가 검찰에 고발한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대해서도 이재명 후보는 맞불 전략을 펼쳤다. 이 후보는 “경찰 검찰 압수수색 영장 필요 없이 제가 계좌추적 조회에 동의한다”며 “변호사들에게 2억 5600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변호사가 50명이 넘는데, (무료 변론이) 1회에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이 넘으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상장기업 S 사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제기됐다”고 지적하자 이 후보는 “아무리 국감장이고, 면책특권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좀 자제해주길 부탁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변호사비 대납은 관계자들의 계좌나 현금을 찾은 기록 등을 보면 생각보다 쉽게 확인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현금으로 있던 비자금이 현금으로 건네지면 찾아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수사기관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설명했다.
#검찰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되나
법조계는 이재명 후보의 이 같은 발언들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 최근 검찰 내부에서는 ‘이재명 수사 제외론’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의 구속영장 기각 전후로 유동규 전 본부장 등 돈이 흘러간 정황이 있는 인물들에 한해서 수사 및 기소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신속하게 수사하라”는 메시지 역시 “최대한 빠르게 수사를 하되, 대선 등 정치적으로 검찰이 개입하는 것은 최소화하라”는 얘기라는 설명이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지휘부들이 ‘이재명 후보를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했다는 얘기가 돈다”며 “그러다 보니 수사팀 내부에서 지휘부와 평검사들 사이에 사건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갈등도 있다는 소문까지 나온다”고 귀띔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같은 날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대장동 의혹을) 성역 없이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강조했지만 △이재명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원지검으로 보내고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하며 시장실을 제외한 점 등은 검찰이 여권 대선 후보를 향한 수사 힘 조절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수원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수사팀 인력의 경험과 역량에 차이가 난다”며 “수원에 사건을 따로 떼서 보낸 것은 무혐의 처분을 했을 때 서울중앙지검이 받을 비난을 줄이기 위함이 아니겠느냐”고 의심했다. 게다가 현 신성식 수원지검장은 이재명 후보의 중앙대 법대 후배라는 점도 의심을 부채질한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지금 서울중앙지검 수사 라인을 놓고 ‘눈치보기로 승승장구한 사람들’이라는 평이 검찰 내부에서 나오는데, 이재명 후보가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을 놓고 ‘소환 조사 등이 이뤄질 경우 나올 답변’이라고 생각해 미리 수사에 참고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 후보가 혐의를 전면 부인한 상황에서 유의미한 증거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찾아내려고 할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