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출·부당인출 넘어…‘검은 커넥션’ 있다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최근 금융부실로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하는 모습. 수사과정에서 일부 정치권 거물과 재벌기업들이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연합뉴스 |
<일요신문> 취재결과 대검 중수부는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전 방위적인 수사과정에서 일부 정치권 거물급과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들이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불법대출, 부당인출 사태를 넘어 정관계 및 재계가 개입된 ‘검은 커넥션’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사태 속으로 들어가봤다.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및 부당인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고 있다. 검찰은 한 달여 전부터 대검 중수부를 전면에 내세워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전개해 왔다. 검찰은 전 방위적인 수사 과정에서 일부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여야 실세 및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로비 자금으로 사용한 정황을 잡고 은밀히 수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다른 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여야 실세 및 금융 당국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일부 여야 거물급과 전현직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들이 ‘부산저축은행 로비 리스트’ 명단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검찰은 수조 원대의 불법대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을 비롯해 김양 부산저축은행장, 김민영 부산2저축은행장 등 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와 주요 임원 10명을 2월 14일 구속하면서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의외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이에 대해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갖가지 해석이 나돌았다. 무엇보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에 일부 거물급 정치인들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된 만큼 검찰 수사가 4·27 재보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하에 검찰 수뇌부가 시기를 조율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다. 일각에선 여권 거물급과 금융권 등 현 정부 인사들이 이번 사건에 개입된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여권 핵심부가 검찰 수뇌부와 수사 대상 및 방향을 조율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던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재보선 이틀 전인 4월 25일 부산저축은행 임직원 등이 영업정지 하루 전날 예금을 부당 인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예금자들은 대로했고, 민심은 크게 동요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2조~3조 원대에 이르는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을 이용한 무리한 사업 확장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및 금융계 거물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친 정황을 잡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금감원이나 산업은행 출신 금융관료 8명, 전직 국회의원, 교수 등이 부산저축은행 사외이사나 감사로 영입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부산저축은행 임원 등을 상대로 이들이 정관계 로비 창구 역할을 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정치권 거물 및 재계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삼성꿈장학재단(삼성재단)과 학교법인인 포스텍(포항공과대학)이 부산저축은행에 각각 500억 원을 투자한 배경에 강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삼성재단과 포스텍은 지난해 6월 KTB자산운용을 통해 1000억 원을 조성해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바 있다.
삼성재단은 지난 2006년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헌납한 8000억 원의 자금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으로 현재 7670억 원대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포스텍도 약 7000억 원대의 기금을 운영 중이다. 삼성재단과 포스텍은 그동안 기금의 70~80% 이상은 예금 및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최우선 투자 포트폴리오로 ‘안전성’ 원칙을 고수해 온 두 재단이 5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약속이나 한 듯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들 재단이 투자를 결정한 지난해 6월은 저축은행들의 부실화 우려가 제기됐던 시점이라는 점에서 은행들이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포스텍의 경우 500억 투자 과정에서 실무자들이 ‘투자 불가’를 건의했지만 포스텍의 고위 임원이 영향력을 행사해 투자를 성사시켰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또한 500억 투자건은 사립학교법 제16조 및 포스텍 정관 26조에 따라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함에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투자 결정 후 개최된 3번의 이사회(2010.9.6, 10.28, 12.9)에서 보고를 은폐했고, 2011년 1월 19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P 저축은행 투자’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사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후 포스텍은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자 지난 2월 23일에서야 정식 이사회가 아닌 긴급 이사진 조찬간담회를 통해 사건 전모를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삼성재단과 포스텍의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 정관계 유력인사가 개입했고,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는 삼성재단과 포스텍-KTB자산운용-거물 정치인-부산저축은행으로 이어지는 투자 연결고리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삼성재단 기금관리위원인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과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김민영 행장이 호남 명문고인 K 고 동문이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부산저축은행 고위 임원들이 지연과 학맥을 바탕으로 야권 거물급 정치인 A 씨를 비롯해 호남권 일부 현역 의원들에게 정치적 후원을 지속해 왔다는 정황을 잡고 이번 사태에 야권 정치인들이 개입됐는지 여부를 은밀히 파헤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형국이다.
여권 거물급도 투자건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포스텍의 500억 투자건에 깊숙이 개입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포스텍 고위임원 K 씨는 이구택 전 포스텍 이사장과 경기고 동문이고, 장 사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K 씨는 여권 핵심실세인 B 씨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B 씨가 500억 투자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여기에 여권 일부 인사들이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임직원 등의 대규모 예금 부정인출 사태는 부산지역의 아무개 국회의원이 영업정지 관련 정보를 은행 측과 지역 유지들에게 알려줬기 때문이라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과연 재보선 정국 등을 감안해 한동안 숨고르기에 돌입했던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검찰의 사정칼날이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정관계 및 금융권을 겨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