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는 못 볼 ‘저세상 설정’ 젊은 세대 입맛에 딱…해외 ‘빅3’ OTT에 맞설 ‘킬러콘텐츠’ 생산 주력
#지상파에선 못 볼 ‘저세상’ 설정
11월 12일 전편이 공개된 웨이브(wavve)의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상청)는 공개 2주 만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소셜미디어)의 입소문을 타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된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 이정은(김성령 분)이 남편인 정치평론가 김성남(백현진 분)의 납치사건을 맞닥뜨리며 동분서주하는 일주일 사이 대선 잠룡으로 올라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독특한 정신세계로 유명한 웹툰 작가 이말년의 작품 ‘이말년씨리즈’의 명대사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한 작품답게, 세부적인 설정 면에서 이제까지의 정치 풍자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문체부 장관 후보를 추리는 절차를 ‘손병호 게임’(한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OO하는 사람’을 제시하고,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게임)으로 정하는가 하면, 전임 문체부 장관이 동물학대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그가 출연한 동물 관련 콘텐츠의 삭제 지시가 내려지기도 한다. 조회수가 폭발적인 ‘범 내려온다’를 제외하고.
동시대 상황을 그대로 담아 유쾌하게 한 방 먹이는 블랙 유머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상청’은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소재를 사회 비판과 적절하게 버무리면서 ‘켕기지 않으면 불편할 일도 없는’ 설정을 구축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체육계 성폭력·갑질 폭로를 포함해 코로나19 백신을 반대하는 일부 종교계의 모습까지 사회 전반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논란을 불쾌하지 않게 풀어내며 서사를 완성하는 완급조절에도 눈길이 모인다.
이처럼 OTT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저세상 설정’이 특히 젊은 세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주로 이용하는 젊은 시청자들의 입소문은 웨이브 유료 가입으로 이어졌다. 11월 16일 제작진 측은 “(이상청 때문에)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자의 시청 점유율 7% 이상을 기록했으며 오픈 첫날 신규 유료 가입자 견인 1위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오픈 첫 주 ‘주간 웨이브 드라마 차트’ 11위에서 2주차에는 전체 드라마 가운데 5위로 올라서며 오픈 첫 주 대비 시청 시간이 2배 증가하는 등 유의미한 실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술, 여자, 우정’ 흔한 키워드가 이끌어낸 압도적 흥행
국내 OTT 가운데 ‘콘텐츠 맛집’으로 꼽히는 티빙(TVING)의 오리지널 콘텐츠 ‘술꾼도시여자들’(술도녀)은 역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주간 유료가입 기여 1위를 달성하며 급격한 인기 상승을 이어나갔다.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작가 미깡)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이선빈, 한선화, 정은지 세 여배우를 주축으로 한 이야기를 그리며 매화마다 드라마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하는 파급력을 보여왔다.
‘이상청’이 OTT에서만 볼 수 있는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면, ‘술도녀’는 낯익은 설정에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을 더한 공감대 형성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갑내기 세 여자가 술과 함께 쌓아가는 굳건한 우정과 흘려보내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쓰디 쓴 청춘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작품에 이입이 된다는 시청 평이 이어졌다. 키워드가 흔하다고 해서 이야기까지 평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술도녀’가 입증해 낸 셈이다.
‘술도녀’는 티빙의 ‘효녀작’ 노릇을 톡톡히 했다. 5, 6회가 공개된 시점에서는 유료 가입 기여 수치가 전주 대비 무려 178%가 상승했다. 이는 티빙의 최고 화제작이었던 ‘환승연애’의 동일주차 증가율 수치를 넘어선 성적이다. 시청자들의 이런 뜨거운 호응에 맞춰 티빙은 시즌2 제작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드라마 작품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만큼 시즌2에 거는 기대도 높다. 이미 출연진들 역시 시즌2 제안을 받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술도녀’의 시즌2 제작이 확정될 경우 이는 ‘유미의 세포들’을 이은 티빙의 두 번째 시즌제 드라마가 된다.
#해외 OTT 범람에 ‘킬러 콘텐츠’ 절실
국내외 OTT 시장의 아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넷플릭스에 더해 올해만 애플TV 플러스, 디즈니 플러스 등 신규 글로벌 OTT 서비스가 한국에 진출했다. 이르면 2022년 워너미디어의 자회사 HBO max(맥스)의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어 국내 OTT 서비스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11월 11일 국내 OTT 협의회가 정부에 ‘디지털미디어생태계발전방안’에 따른 국내 OTT 분야 지원 정책을 이행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 기인했다.
이제까지 국내 OTT 서비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특히 드라마는 흥하더라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끝나는 일이 잦았다. 일부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들의 유입이 사실상 눈여겨볼 만큼 유의미한 유료 가입자 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킬러 콘텐츠’가 아닌 이상 작품 하나만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출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만큼 국내 OTT 서비스는 올 하반기부터 2025년까지 이 같은 오리지널 ‘킬러 콘텐츠’의 제작에 주력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적게는 400억 원에서 최대 1조 원까지 어마어마한 투자를 통해 해외 OTT에 대항하는 한편, 역으로 해외 시장 진출까지 노리겠다는 포부다.
한 드라마 제작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 OTT에서도 한국 드라마, 영화에 투자 제안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국내 방송 시장은 ‘어떤 작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며 “킬러 콘텐츠는 다른 플랫폼에선 볼 수 없는 오리지널 콘텐츠여야 플랫폼에 유의미한 성적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에 이 독창성이 시장 수요의 지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분석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