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 국가 조세정책 총괄, 최근 당청에 힘 싣기 눈길…승진코스 ‘특1급’ 예산실에 밀려 예전만 못해
#세제실장, 정국에 전면 등장한 까닭
최근 2021년분 종부세 고지서가 발급되면서 ‘세금 폭탄론’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실제 11월 23일 국세청이 발표한 ‘2021년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시도별 고지 현황’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고지 인원은 94만 7000명, 고지세액은 5조 6789억 원이다. 올해 종부세 고지 인원은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부산, 세종 등 전국 곳곳으로 확산됐다. 비수도권 종부세 대상자 수는 전년 대비 평균 2배, 세액은 평균 5배 증가했다. 특히 세종은 납세자 수가 약 3배 늘었고, 충청북도는 세액이 무려 8.8배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종부세 세수 전망이 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월 24일 국세청은 올해 종부세 8조 5861억 원을 납세 의무자 102만 7000명에게 고지했다고 밝혔다. 주택분 종부세 고지액 5조 6789억 원에 토지분 2조 8892억 원을 더했다. 정부는 올해 종부세수를 5조 1138억 원으로 추산했지만, 실제 고지액과 3조 4543억 원이나 차이를 보인 셈이다. 아직 납부하는 세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수조 원대의 오차가 발생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가을 본예산 편성 시점을 기준으로 올해 초과 세수는 50조 원에 달한다. 지난 7월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초과 세수로 잡은 31조 5000억 원과 현재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19조 원을 더한 것이다. 당초 홍남기 기재부 장관은 초과 세수 전망치를 10조 원 수준이라고 주장하면서 19조 원을 주장하는 여당과 기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여당이 국정조사로 압박하자 초과 세수 전망치를 19조 원으로 수정했다.
이와 관련, 기재부는 “여당의 압박으로 세입전망을 수정한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11월 15일 여당에 초과세수 19조 원 이라고 설명했고, 다음날 16일 초과세수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기재부가 이례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는 평가다. 청와대, 여당과 수차례 갈등을 겪으면서도 주장을 꺾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장하성 전 실장과 김동연 전 부총리가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정면충돌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론에 힘입은 김 전 부총리 뜻에 따라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은 무산됐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공식 사과했다.
조세개혁의 임무를 맡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도 기재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18년 재정개혁특위가 ‘상반기 재정개혁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한 지 하루 만에 기재부가 이를 세제개편안에 넣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당시 특위 당연직 위원으로 명단에 올랐던 기재부 세제실장과 재정관리관은 2018년 하반기 이후에는 회의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종부세 개정안에선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기재부는 종부세 개정안(1세대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 공시가격 9억 원에서 상위 2%로)을 두고 내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여당은 당론으로 확정해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주도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세제 개편을 통한 부동산 정책대응을 주문할 때도 세제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간 불협화음을 내던 기재부가 청와대, 여당에 힘을 싣는 태세로 전환했다. 11월 23일 김태주 기재부 세제실장은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종부세 폭탄론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며 전면에 나섰다. 다음날인 24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충분한 기간을 두고 예고했고 피하려면 얼마든 피할 수 있었다”며 종부세 논란에 정면 반박했다.
청와대가 경제라인을 재정비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3월 이호승 경제수석비서관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지난해 5월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으로 발탁된 이억원 차관은 10개월 만에 기재부 1차관으로 돌아오게 됐다. 안도걸 예산실장은 2차관으로 승진했다. 안일환 2차관을 신임 경제수석으로 임명하며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세제실은 1차관, 예산실은 2차관 소관이다.
주목할 점은 동시에 이뤄진 세제실의 연쇄 인사다. 지난 3월 26일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을 신임 관세청장에 임명했다. 세제실장 출신이 관세청장 자리로 간 것은 김낙회 전 청장 이후 5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는 1차관에 청와대 출신을 앉히고, 세제실장 승진까지 챙겨준 셈이다. 지난 4월에는 김태주 조세총괄정책관(행정고시 35회)을 신임 세제실장으로 임명했다. 전임 김병규 전 세제실장(행정고시 34회)이 4기수를 뛰어넘은 파격 인사란 점을 고려하면 이번엔 안정에 무게를 둔 셈이다.
반면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한 예산실은 청와대, 여당과 여전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권 말기로 갈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11월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뉴스1' 인터뷰에서 “기재부 예산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기재부가 예산권을 틀어쥐고 다른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까지 쥐락펴락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김태주 세제실장이 이호승 정책실장과 함께 종부세 논란 진화에 나선 것은 예산실과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왕년엔 세제실, 요즘엔 예산실
지난 2008년 이명부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정경제부 세제실과 기획예산처 예산실이 전권을 갖던 재정관리 체계가 기재부로 통합됐다. 현재 기재부 조직은 1장관, 2차관, 1차관보, 3실(기조실·세제실·예산실), 1대변인, 11개국, 103개과로 구성됐다. 세제실과 예산실은 기재부 내 핵심으로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예산실은 과거 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라는 독립된 장관급 부처로 운영됐고, 세제실은 재무부나 재정경제부 소속으로서 옛 재무부의 맥을 잇는 부서다.
1급 공무원인 기재부 세제실장은 재정부 내 최고 요직 중 하나로 꼽혔다. 100여 명에 불과한 세제실 조직이지만, 연간 300조 원에 달하는 국가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세제실장은 승진 코스로 통하며 1급 중에도 ‘특1급’ 자리로 통했다. 승승장구할 때는 ‘세피아’(세제실+마피아)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실제 세제실장의 면면은 화려했다. 제1대 김용진 실장은 관세청장에서 5개월 만에 재무차관으로 올라섰다. 2대 이근영 실장은 한국투자신탁 사장으로, 3대 강만수 실장은 관세청장에서 기재부 장관으로, 4대 윤증현 실장은 기재부 장관, 5대 남궁훈 실장은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갔다. 6대 김진표 실장은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7대 이용섭 실장은 관세청장으로, 8대 최경수 실장은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하고 조달청장으로, 9대 김영룡 실장은 국방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국방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10대 이종규 실장은 국세심판원장으로, 11대 김용민 실장은 조달청장으로, 12대 허용석 실장은 관세청장으로, 13대 이희수 실장은 국제통화기금 이사로, 14대 윤영선 실장부터 15대 주영섭 실장, 16대 백운찬 실장, 17대 김낙회 실장까지 4명은 모두 관세청장으로 영전했다. 하지만 9대 김영룡 전 국방부 차관 뒤로는 세제실장이 중앙부처 장·차관으로 영전하는 명맥이 끊겼다. 실장에서 옷을 벗거나, 기재부 외청인 관세청장·조달청장이 마지막 코스로 자리잡았다.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는 ‘세제실장→관세청장’ 인사 관행까지 깨졌다. 2016년부터는 천홍욱, 김영문, 노석환 전 관세청장까지 3번 연속 기재부 출신이 아닌 인사에게 밀렸다. 문창용 전 실장은 2014년 8월부터 2년 가까이 세제실장을 지냈지만, 차관 승진을 못 하고 자산관리공사 사장으로 이동했다. 문창용 사장의 뒤를 이은 최영록 전 실장도 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옮기려 했지만 이마저 물거품이 됐다. 지난 2018년 신용보증기금 차기 이사장에서 낙마했기 때문이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세제실이 2차관 산하로 편입된 적도 있다. 당시 이석준 예산실장이 2차관에 오르면서 예산과 세제를 총괄해 ‘슈퍼 차관’으로 불렸다. 1년 5개월 만에 원상복귀됐지만, 예산실에 밀린 경험은 세제실 입장에선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산실 인사들이 중용돼왔다. 홍남기 부총리, 김동연 전 부총리,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방문규 수출입은행장, 문성유 한국자산관리공사 전 사장 등이 모두 예산실 출신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