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인 윤석열 ‘관료형’ 아웃사이더 이재명 ‘달변가형’ 삼수생 안철수 ‘감성형’
“분열과 분노의 정치, 부패와 약탈의 정치를 끝내겠다.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내겠다.”(11월 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수락연설) “더 새롭고 더 유능한 4기 민주정부, 변화되고 혁신된 이재명 정부를 반드시 만들겠다.” (10월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여도, 단 한 분이라도, 안철수의 정치와 가치를 알아주신다면 망설임 없이 저를 던지겠다.” (11월 4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정치인이자 뛰어난 ‘웅변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단면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이었다. 이날 연설은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현대 정치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실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은 그 정치인의 신념, 국정 운영 방향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또 정치인 특유의 화법도 반영돼 있다.
우선, 윤석열 후보는 30년 가까이 ‘검사’로 살아온 정치 신인이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을 가졌다는 평을 받는다. 2013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할 당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를 상징하는 대사가 됐다.
다만 ‘정치인 윤석열’의 메시지는 모호하고 힘이 빠진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때론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도 구설에 올랐다. ‘주 120시간 노동’, ‘부정 식품’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6월 16일 윤 후보를 향해 “화법이 모호하고 너무 자신감이 없다”며 “국민이 잘 못 알아듣게 말씀한다”고 평가했다.
윤 후보가 아직 관료에 머물러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책 ‘나만의 연설문을 써라’ 저자인 윤범기 작가는 “윤 후보는 보수 핵심 세력인 검찰 출신으로 굉장히 주류적 인물이다. 이 때문에 메시지는 관료답게 온건한 편이다. 정치인으로서 훈련된 분이 아니어서 말실수도 많이 한다”고 했다.
윤 작가는 최근 윤 후보의 ‘침묵 스피치 논란’ 역시 관료 출신의 한계로 봤다. 윤 후보는 11월 22일 ‘글로벌리더스포럼 2021’에서 연단에 오른 후 프롬프터 고장으로 대본을 읽을 수 없자 2분 가까이 침묵했다. 윤 작가는 “관료의 전형적 특징”이라며 “관료는 원고가 없으면 말을 안 한다.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 반드시 원고에 의존해 이야기하는 특징이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윤 후보를 두고는 스피치 숙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인, CEO(최고경영자) 발표코칭 전문인 올댓프레젠테이션 구은화 대표는 윤 후보를 두고 “대중연설에 서툰 정치 신인”으로 평가했다. 구 대표는 “말끝에 어미 처리가 빨라서 아랫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권력자의 입지를 내려놓고 소통하는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원고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스타일 차이가 크다. 말할 때 ‘쩝’, ‘아’ 등의 습관어가 잦고, 목 가다듬는 소리가 잦은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후보는 군중 연설에 능한 달변가형이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선출직 지자체장 출신으로 실전 토론에 강하다. 이 후보가 경기지사였던 2019년 도내 계곡에서 불법 영업 중인 상인들과 벌였던 일대다 토론 영상은 여전히 화제를 모은다.
이 후보는 장단점이 뚜렷한 정치인에 속한다. 행정가 출신으로 진보 의제를 선점해 본인만의 콘텐츠를 구축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본소득, 무상교복, 공공산후조리원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여의도 중앙 정치 경험이 없는 ‘아웃사이더’인 점과 여권 주류 세력인 친문 세력과 거듭 갈등을 겪어왔다는 점이 약점이다.
이러한 이 후보의 특징이 그의 정치 메시지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범기 작가는 “이 후보는 정동영계 출신으로 진보진영의 변두리에 있었다. 친노 친문 출신도 아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굉장히 강하게 내는 게 특징이다. 비주류였기 때문에 진보 주류들의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선점해 비주류성을 극복했다. 강한 메시지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한 셈”이라고 했다.
구은화 대표는 이 지사를 두고 ‘선거로 단련된 연설가’라며 후보 중 가장 후한 점수를 줬다. 구 대표는 “이 지사는 연설과 토론에서 논지가 분명한 두괄식 전개, 대중과 소통하는 말하기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 있는 표정과 힘 있는 목소리가 타 후보들과 가장 대비되는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3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안철수 후보의 경우 전형적 ‘학구파’ 스타일로 꼽힌다. 안 후보는 평소 차분한 말투로 상대방의 공감을 사는 감성적인 화법을 이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인으로서 스피치 실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구 대표는 안 후보를 두고 “새는 발음과 힘없는 목소리, 느린 속도로 인해 내용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라고 했다. 이어 “초기에 정치에 입문할 때는 노련한 정치인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요조체의 ‘기업인의 말하기’ 스타일이 돋보였으나, 여러 번 스피치 스타일을 바꾸면서 본인만의 스타일을 정착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안 후보의 메시지에도 아쉬운 평가가 나왔다. 윤 작가는 “요즘 안 후보가 내는 메시지에는 정부와 민주당에 감정적 반감이 서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안 후보는 중도층에 소구하는 정치인인데, 이런 감정적 메시지가 맞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대선은 결국 중도층이 가르는 선거다. 그만큼 중도층에 호소할 수 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윤 작가는 “본선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온건한 메시지가 어필될 수 있다. 이 후보 역시 전략을 잘 잡은 상태다. 경선 당시에는 강하게 좌파 메시지를 냈지만, 최근에는 ‘실용주의자’로 본인을 소개했다. 경선 때는 집토끼를 잡고, 본선 때는 산토끼를 잡는 메시지 전략이 맞다”고 분석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