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형 돈 대고 감독들이 영업… 선수 끼워팔기도
얼마 전에도 대학 입학 추천 명목으로 학부모들로부터 불법 금품을 수수한 서울 유명 고교 교사가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져 가뜩이나 뒤숭숭한 축구계에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유명 선수들을 여럿 관리하는 에이전트 A 씨는 “어릴 적부터 (부모-지도자 간) 금전 거래가 이뤄지는 걸 보았던 선수들은 도박 등으로 용돈벌이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거나 문제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프로에 입단한 뒤에도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 돈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는 의미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돈 거래’와 ‘도박’ 등이 ‘나쁜 행위’란 걸 인식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만연한 검은 커넥션
“아마추어는 훨씬 더해. 돈 문제와 관련해서는 솔직히 아마추어도 만만치 않아.”
노회한 에이전트 B 씨는 K리그 승부조작 사태가 터지자마자 이러한 말을 넌지시 건넸다. 유감스럽게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상급학교 진학은 곧 돈과 연계돼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 선수를 입학시키는 조건으로 금품 거래가 오가는 게 당연시 여겨진다.
90년대 후반까지 서울 유명 대학 감독으로 활동했던 원로 축구인 C 씨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과정이 이뤄진다고 했다.
“어떤 고교 선수 학부모가 팀 훈련이 끝난 뒤 날 찾아왔다. 자신의 아들을 대학에 합격시켜주면 3000만 원을 주겠다고 하더라. 표정이 워낙 간절해 똑 부러지게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숫자 ‘0’ 한 개만 더 붙여준다면 선수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학부모가) 멋쩍은 얼굴로 돌아서는데, 미안하기도 했고 또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 졸업반 학생을 둔 학부형과 대학 감독 간의 직접적인 대면은 극히 드문 일이라는 전언이다. 대개의 커넥션들은 고교 감독과 대학 감독의 사적인 자리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 현직에 있는 수도권 모 유명 고교 감독 D 씨가 “대학 감독들을 황제라고 칭한다면 우린 영업 사원들과 진배없다”고 푸념한 것도 그래서다.
각급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실력이 빼어나다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모두가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인 탓에 한 레벨에서 상위 레벨로 올라갈 때 최소 70% 이상은 걸러진다. 아마추어 클래스도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축구화를 벗어야 한다.
하지만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프로 무대는 언감생심이라고 쳐도, 아무리 못해도 대학까지는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물론 이는 비단 축구뿐 아니라 전 종목 학원 스포츠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다.
여름이 가까워지는 이맘때가 되면 고교 감독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졸업반 학생들의 진로를 결정해줘야 하는 가장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사 청탁이 가장 많아지는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청탁’은 대개 평이한 실력이거나 이보다 조금 낮은 수준의 선수들의 경우에 해당된다.
당연히 고교 감독들은 대학 감독들에게 잘 보이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대학 축구 리그인 U리그나 각종 대학축구 대항전 등이 열리는 전국을 구석구석 뛰어다닌다. 물론 주목적은 경기 관전이 아니다. 스스로를 ‘영업사원’이라는 자조 섞인 토로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D 씨는 “고교 감독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외판원이다. 일단 타깃(입학 대학)이 정해지면 해당 팀 경기에 얼굴을 비치고 접대하는 게 우리의 당연한 업무”라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방의 유명 프로팀 스카우터 E 씨도 “K리그 승부조작 사태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뿌리가 깊다. 어느 한두 명 특정인들에 국한된 게 아니다. 선수 대다수가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봐도 결코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동조했다.
▲ 지난해 제43회 대통령금배전국고등학교 축구대회 조별리그 경기의 한 장면.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상급학교 입학을 위한 거래는 크게 두 가지 양태로 나뉜다고 한다. 인간적인 거래와 ‘대박’ 거래가 여기에 해당된다. 전자의 경우, 이미 고교 감독과 대학 감독이 서로 알고 있을 때 이뤄진다. 후자는 서로가 잘 알지 못할 때 이뤄지는데 위험 부담이 큰 만큼 금전 액수가 올라가게 된다.
요즘 시세는 B 씨가 밝혔던 때와 비교해서 크게 오르진 않았다. 축구부를 갖춘 대학교들이 워낙 많아졌기 때문이다.
축구협회 공식 집계(2011년 6월 15일 기준)에 따르면 축구부가 있는 전국 대학교 숫자는 75개. 서울 지역 8개교를 합친 숫자다. 고등학교는 138개, 중학교는 172개, 초등학교는 200개에 달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서로가 형님 아우를 칭하며 가까운 관계일 때는 3000만~4000만 원선에서, 반대의 경우에는 5000만~7000만 원선에서 거래가 이뤄진다고 한다.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선 많게는 1억 원 이상까지도 들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었다. 축구계 용어로 ‘인사’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선수) 끼워 팔기’ ‘덤 얹어주기’까지 존재한다는 점이다. 스타급 선수들을 대학교에 입학시킬 때 시원찮은 선수를 웃돈을 주고 대학 입학 리스트에 끼워 넣는 경우가 해당된다.
자신의 실력이 동료들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꼭 체육특기생 입학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대학 진학 자체가 목적이라 등록금을 내고서라도 대학 졸업장을 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대개의 불법 거래가 그러하듯이 금전 거래는 통장 거래보다는 현금 거래가 선호된다. 수표 역시 증거를 남길 수 있어 거래 방식에서는 제외된다. 그러나 스타 선수들 사이에 변변치 못한 선수를 끼워서 입학시킬 때는 대학 감독들이 해당 학생 학부형으로부터 나오는 ‘인사’를 일종의 수고비 개념으로 고교 감독들에 쥐어줄 때가 많다.
E 씨는 “솔직히 고교 감독이 돈이 어디 있겠느냐. 결국 대학 감독들이 ‘야, 한 명 붙여서 보내봐라’라고 슬쩍 일러줄 때는 해당 선수 학부형이 감사의 인사를 하는 돈을 나중에 좋은 중학교 선수들을 데려올 때나 다른 거래를 위한 접대용으로 사용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세에 따르면 실력이 우수한 중학교 선수를 스카우트 할 때는 고등학교처럼 2000만~3000만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이동하는 과정에선 200만~300만 원 이상 필요할 때도 있다.
#같지만 다른 검은 거래들
이미 축구계에서는 앞서 거론된 사안들이 아주 공공연하게, 또 당연시되는 일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두가 “도덕적으로나 법적인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문제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마추어 지도자들에 대한 좋지 못한 처우가 배경에 깔려 있다. 대학교 감독의 월급은 300만~400만 원선. 연봉은 대개 5000만 원 이하일 때가 많다. 당연히 고교 감독은 이보다 훨씬 못하다. 그렇다고 별도의 판공비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대개 학교들이 학부모에게 스카우트 등에 필요한 별도 자금을 의존한다고 한다.
각 학교 별로 먹고 자는 비용으로 선수 1인당 한 달에 70만~80만 원씩 거둬들인다. 한 학교 축구부원들을 40명 정도로만 잡아도 꽤 많은 금액이 된다. 전지훈련 등 기타 일정이 발생할 때는 별도 비용을 부과할 수도 있다. 상급 학교 감독들과 축구부장(대개 학교들은 전체를 총괄하는 교사를 ‘부장’이란 직함을 주고 활동시킬 때가 많다)들에게 접대를 하는 돈도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모든 학교들이 똑같은 상황은 아니다. K리그 스케줄에 맞춰 별도 시즌을 진행하는 프로 팀 산하 학교들과 그렇지 않은 학교들은 조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프로 산하 학교들에 대한 상급 학교 감독들의 시선은 “자신들이 준프로랍시고, 인사도 잘하지 않는 싸가지 없는 X들”이다.
해당 구단으로부터 학교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부형들에게 별도 비용을 요구하는 횟수가 적다. 오히려 몇몇 구단들은 좋은 중학교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고교 감독들에게 약간의 판공비를 쥐어주고 해당 중학교 감독들을 설득하는 데 쓰기도 한다. 현금 거래도 있지만 1년치 축구화를 지원하거나 1년치 축구 용품 등을 지원하는 형태로 물품 보상을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프로 산하가 아닌 학교들은 대학 2~3곳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입학을 시키는 나름의 생존 방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이나 고교에서 K리그로 진입할 때는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암묵적인 거래가 형성될 때도 있다고 한다. A 씨는 “지금은 훨씬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프로팀 스카우트에도 별도 판공비가 지급됐다.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적게는 1년에 5000만 원, 많게는 1억 원 가까이 비용이 들었다. 외부 시선으로 보면 이는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라고 주는 돈이다. 신인 드래프트가 시행되기 전에 영입 선수들에게 계약금을 줄 때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검은 돈이 오가기도 했다. 물론 신인 드래프트가 시행된 이후에는 번외 지명 등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연습생으로 데려오는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질 때가 있다. 규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지 언제든 ‘검은 돈’ 거래는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