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길 담벼락에 인생이 녹아 있다
▲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묵호 논골마을. 골목길이 아름답고, 그 골목마다 그려진 그림들이 또한 아름답다. |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골목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몽글몽글 피어나 말을 건네는 그곳,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 논골마을로 향한다.
한때 유행처럼 벽화열풍이 불었더랬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벽화들은 허옇게 뜬 ‘화장’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했다. 벽화가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못 하고 따로 놀았다. 추레한 겉모습을 가리기 위한 붓질에 다름 아니었다. 지난해 묵호 논골마을도 벽화골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걱정이 앞섰는데, 그것은 앞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논골마을은 달랐다. 이곳만의 이야기가 벽화에 담겼다.
논골마을 벽화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실시하는 ‘지방문화원 어르신 문화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2009년 8월부터 장장 15개월에 걸쳐 추진되어 온 ‘논골담길프로젝트’는 2010년 11월 26일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논골마을이 있는 묵호는 30~40년 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번화했던 곳이다. 묵호의 쇠퇴는 동해시의 탄생과 연관이 깊다. 사실 동해시는 1980년 4월 1일 강릉의 묵호읍과 삼척의 북평읍이 합쳐지면서 승격된 도시다. 강릉에 속해 있을 당시만 하더라도 묵호는 재미가 좋았다. 1941년 개항된 이래로 묵호는 동해안 최대의 무역항으로서 지위를 누렸다. 태백지역의 석탄과 시멘트, 철광석 등이 이곳을 통해 해외로 수송되었다. 그러나 동해시 출범과 동시에 동해항이 개항되면서 묵호항은 무역항이 아니라 어업기지로 그 성격이 변해가고 있다.
▲ 묵호등대. |
논골담길프로젝트는 그런 그들을 위로하는 작업이었다. 동해문화원이 그곳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벽화를 구성했다. ‘공공미술 공동체 마주보기’ 회원들이 밑그림을 그리면 마을사람들이 색칠을 했다.
논골마을 여행은 논골갤러리에서부터 출발한다. 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여럿 나 있으나 갤러리를 돌아나가는 논골3길에 대부분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갤러리라는 명칭 때문에 번듯한 미술관을 떠올리고 있다면 당장 그 생각을 털어버리라. 누군가 두고 떠난 집, 외벽을 새로 칠하고 거기에 작품처럼 보이는 액자들을 여기저기 그려 넣었을 뿐이니까.
논골마을에는 약 200호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당 한편에 마련한 덕장에서 도루묵을 널어 말리던 한 노인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고 했다. “시절 좋을 때는 사람이 넘쳐나서 골목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다녔는데, 이제는 나가 봐도 사람 하나 없다”며 흘러간 시간을 추억했다. 노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몇 번씩이나 되물으면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람이 그리운 것이었다. “도루묵이 겨울 생선이지만, 요즘 것도 머리를 떼고 창자를 따서 말린 후에 조림해 먹으면 일품”이라면서 노인은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한 봉지 담아 건넨다.
골목의 담벼락 벽화에는 오징어와 명태, 양미리 따위가 널려 있다. 동트는 새벽의 그림, 등대 그림, 먹빛처럼 검푸른 그래서 묵호(墨湖)라는 지명과 잘 어울리는 잔잔한 밤바다의 그림도 만난다.
특이한 제목의 그림들이 많은데, 그 제목 속에는 논골마을의 삶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머리에 큰 짐을 이고 가는 노파 그림의 제목은 ‘원더우먼’이다. 수십 년 동안 가파른 달동네의 계단을 무거운 짐 이고 올랐으니 원더우먼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데 그것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전거도 오를 수 없는 논골마을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니, 이곳 여성들은 하나같이 원더우먼이었다.
▲ 논골담길 풍경. |
이외에도 고무대야를 든 다라아줌마,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논골상회, 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자는 묵호벅스 등의 그림이 눈길을 끈다. 골목을 지나노라면 가끔 대문 안에서 개들이 컹컹대며 짖는다. 낯선 자에 대한 경계인지, 아니면 반가움의 표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마을 중턱의 모퉁이 담벼락에 그려진 흰둥이만은 언제나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는다. 어느 집의 사연 있는 개를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녀석과의 만남으로 여행자의 마음은 한결 즐거워진다.
논골담길을 그렇게 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등대가 보인다. 묵호등대다. 1963년 건설된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묵호 앞바다를 밝히며 뱃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준 등대. 지난 2007년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내부가 개방되고, 그 주변이 쉼터로 바뀌었다.
논골마을 오른쪽으로 등대오름길이 따로 있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벽화들이 여럿 그려져 있다. 묵호등대는 1968년 제작된 문희와 신영균 주연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촬영지로 유명했는데, 신세대들에게는 이승기와 한효주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찬란한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등대 바로 아래쪽에 그 두 신세대 주인공이 키스를 했던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강릉분기점→강릉→동해 망상IC→7번 국도(하행)→사문재교차로에서 직진→묵호
▲먹거리: 물메기(곰치)탕 집들이 많다. 전날 술이 과했다면 해장용으로 좋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미끈하고 느물거리는 식감 때문에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일단 물메기가 그런 특성을 지닌 고기라는 것을 참고하자. 추천할 음식은 물회다. 묵호항 일대에 물횟집들이 굉장히 많다. 오징어와 잡어를 채 썰어 그릇에 듬뿍 담고 오이, 양파, 당근, 부추 따위의 채소들을 얹은 후 살얼음 둥둥 뜬 빨간 육수를 부어 먹는다. 횟감의 대부분은 오징어다. 육수는 매콤하면서도 달달하다. 이제 오징어철로 접어든 만큼 여름 별미로 묵호에 가면 물회 한 그릇 먹고 올 일이다. 동북횟집(033-532-7156), 오부자횟집(033-533-2676)이 맛있다고 소문났다.
▲잠자리: 묵호항 앞에 제이모텔(033-531-7001), 르네상스모텔(033-531-8122) 등 묵어갈 곳들이 많다.
▲문의: 동해시청 관광진흥과(033-530-2481)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강릉분기점→강릉→동해 망상IC→7번 국도(하행)→사문재교차로에서 직진→묵호
▲먹거리: 물메기(곰치)탕 집들이 많다. 전날 술이 과했다면 해장용으로 좋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미끈하고 느물거리는 식감 때문에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일단 물메기가 그런 특성을 지닌 고기라는 것을 참고하자. 추천할 음식은 물회다. 묵호항 일대에 물횟집들이 굉장히 많다. 오징어와 잡어를 채 썰어 그릇에 듬뿍 담고 오이, 양파, 당근, 부추 따위의 채소들을 얹은 후 살얼음 둥둥 뜬 빨간 육수를 부어 먹는다. 횟감의 대부분은 오징어다. 육수는 매콤하면서도 달달하다. 이제 오징어철로 접어든 만큼 여름 별미로 묵호에 가면 물회 한 그릇 먹고 올 일이다. 동북횟집(033-532-7156), 오부자횟집(033-533-2676)이 맛있다고 소문났다.
▲잠자리: 묵호항 앞에 제이모텔(033-531-7001), 르네상스모텔(033-531-8122) 등 묵어갈 곳들이 많다.
▲문의: 동해시청 관광진흥과(033-530-2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