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임박, 이재명 배임 수사 사실상 스톱…‘50억 클럽’ 관련 법조인·언론인 수사 집중
곽상도 전 국회의원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권순일 전 대법관, 김만배 씨가 소속됐던 경제매체 회장 등을 최근 잇따라 소환 조사하며 이른바 50억 클럽 관련 법조인과 언론인으로 수사 방향을 변경했다. 법조계에서는 “대선 결과에 따라, 이재명 후보 관련 배임 의혹 수사는 더 진행되지 않고 이대로 사건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핵심 4인방 외 첫 영장 청구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은 11월 29일 오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 등을 받는 곽상도 전 의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곽 전 의원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로부터 금품을 받고 사업 편의를 봐준 혐의다.
수사팀은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과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연결해줬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하나은행이 당시 경쟁 컨소시엄의 러브콜을 받던 상황이었는데 곽 전 의원을 통해 하나금융지주 측에 영향력을 행사해 하나은행이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합류해 사업을 따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곽 전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과 위로금 등의 명목으로 받은 50억 원을 이에 대한 대가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6년 차 대리에 불과한 곽 전 의원의 아들에게 건네진 50억 원은 비상식적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김만배 씨가 과거 남욱 변호사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 등도 검찰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11월 27일에는 곽 전 의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직접 소환해 약 17시간가량 조사했다. 곽 전 의원 측은 이에 대해 “산업재해 위로금 명목 등으로 이 같은 고액의 퇴직금을 받은 것이다. 청탁받았다는 경위나 일시, 장소 등이 심문과정에서도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결국 영장 청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서울중앙지법은 12월 1일 밤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곽 전 의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박영수·권순일도 소환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대장동 핵심 4인방을 기소한 뒤 다음 수사 대상으로 곽 전 의원을 선택했다가 실패로 돌아간 검찰.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50억 클럽’ 명단으로 거론됐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 권순일 전 대법관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박 전 특검은 △화천대유에서 근무했던 그의 딸이 대장동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받고 △인척인 분양대행업체 대표 이 아무개 씨에게 개발수익금 중 일부가 흘러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아무개 씨는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로부터 100억 원을 받았는데 검찰은 이 돈 중 일부가 박 전 특검에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김만배 씨나 박 전 특검 측은 불법적인 사안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일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는 계획이다.
권 전 대법관은 조금 더 사안이 복잡하다. 김만배 씨의 부탁을 받고 과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사직 박탈이 걸려있던 재판에서 무죄 의견을 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권 전 대법관이 대법관에서 퇴임한 뒤 화천대유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고문료로 월 1500만 원을 받은 것이 이에 대한 대가라고 추측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권 전 대법관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정도로 기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이 김만배 씨의 대법원 출입 기록,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의 보고서 등을 일체 확보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비교적 혐의 입증이 간단한 변호사법 위반으로 마무리 할 것이라는 추론이다.
수사팀은 경제매체 홍 아무개 회장도 소환 조사했다. 김만배 씨가 얼마 전까지 법조팀장으로 몸 담았던 곳의 대표인 홍 회장은 역시 50억 클럽 명단에 회자된 바 있다. 검찰은 홍 회장이 2019년 무렵부터 김만배 씨로부터 2~3차례에 걸쳐 50억여 원을 받았던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김만배 씨와 홍 회장 측은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이다. 모두 상환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회사 직원과 회장 사이에 수십억 원이 오고 가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재명과 무관한 것만 수사?
이 밖에 ‘50억 클럽’에 이름을 올렸던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나 최재경 전 검사장 등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열려있다. 다만 검찰은 이들을 소환할 만한 확실한 증거 등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들에게 아직 소환 통보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달 전 꾸려진 수사팀의 규모나 수사 일정을 고려할 때, 50억 클럽에 이름을 올린 법조인과 언론인에 대한 전방위적인 동시 수사는 쉽지 않다. 그동안 수사팀이 보여준 아쉬운 행보 때문인지 비판적인 시선도 상당하다. 특히 곽상도 전 의원의 영장이 기각된 것은 검찰이 제대로 된 사실 관계 입증도 못한 상황에서 정치권과 특검을 의식해 서둘러 영장을 청구했던 것이 드러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에 대한 배임 의혹 수사는 사실상 멈춰선 상태에서 여야가 특검에 합의하는 흐름으로 흘러가자 미리 ‘검찰은 다 확인을 하려 했다’는 모양새를 만들려고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선 후에도 존속할 가능성이 있는 특검이 ‘검찰이 당시 부실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할 수 없도록, 의혹들이 제기된 지점들을 모두 확인하려 했다는 형식적인 소환이라는 비판이다. 실제 검찰이 아직 소환하지 못한 두 명의 전직 검찰 출신 법조인들의 경우 언제 소환할지에 대한 기약이 없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선 전에는 원래 유력 후보들에 대해서 일체 수사를 하지 않으면서 ‘대선 결과 경우의 수’까지 고려해서 수사를 하는 게 검찰의 본능적 생존 전략”이라며 “곽상도 전 의원을 비롯해 김만배 씨와 인연이 있던 법조인들이나 언론인으로 수사 방향을 전환한 것은 다가올 특검에 대비함과 동시에 ‘특정 후보를 봐주려고 한 게 아니다’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수사팀의 전략적 판단”이라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