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조치만으론 ‘장맛비’ 못 막아
2011년도 절반이 지나가며, 이제 남은 여섯 달에 대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주식 거래가 늘어야, 그리고 주가가 올라야 돈을 버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자문사 입장에서는 기대를 담아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을 뿐 ‘잘 모르겠다’는 속내를 숨기지는 못한다. 쉽게 말해 ‘확신’이 부족하다. 올 하반기 주식 투자에 공격적으로 덤빌 때는 아닌 듯하다. 올 하반기 증시 관전 포인트를 정리했다.
일반적으로 주가를 결정하는 요소는 기업이익과 시중에 풀리는 돈의 흐름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를 관통하는 중심축은 경기다. 경기가 좋으면 기업 이익이 늘고, 시중에 도는 돈이 늘어 주식을 포함한 자산가치가 올라간다. 반대로 경기가 좋지 않으면 기업이익이 줄고, 시중에 돈이 줄어 자산가치가 떨어진다. 주머니에 돈이 많을 때와 돈이 적을 때, 물건 값에 대응하는 우리 행태가 다른 것과 같다. 경기는 곧 경제다. 주식은 경제가 좋아지려 할 때 시작하고, 나빠지려 할 때 손을 터는 게 정석이다. 특히 국내 증시를 쥐락펴락하는 외국인들의 행보를 예측하는 데는 해외 경제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세계 경제의 핵심 미국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고,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양적 완화’라는 제목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달러를 푼다. 돈의 양이 늘어나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 경제에 활력이 돌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실제 당시 미국 경제는 회복세를 보였고, 넘치는 돈이 전세계로 투자되면서 원자재 값과 신흥시장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제 올 6월 말로 미국의 돈 풀기가 끝난다. 정말 돈을 많이 풀었기 때문에 이젠 돈을 더 풀지 않아도 경제가 제 체력을 회복할 것이라는 게 투자자들의 기대였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약물을 투입해 일단 효과를 봤지만, 과연 이젠 약 없이도 경제가 정상체력을 회복했느냐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발표되는 각종 경제지표들을 보면 ‘돈 약발’에 물음표를 갖게 한다. 이러다 보니 다시 한 번 더 돈을 풀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그동안 돈을 워낙 많이 풀다 보니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데 자산 가격은 떨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우려된다. 이러면 최악이다.
조병현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세 번째로 또 미국이 돈을 푸는 ‘양적완화3(QE3)’가 시행된다면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면서 “물론 돈이 더 풀리면서 잠시 경제가 살아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돈이 풀려야 경제가 살아나는 ‘돈 중독’ 부작용 우려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지난 23일 나온 게 바로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비축해둔 원유를 푸는 조치다. 장화탁 동부증권 연구원은 “경기적인 측면에서 가장 필요했던 글로벌 정책공조는 유가하락을 야기하는 조치다. 선진국의 경기부진 극복과 신흥국의 물가안정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 원자재가격 하락”이라며 “전략비축유 방출은 선진국의 소비증진, 신흥국의 물가안정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는 멋진 방법이고, 유가하락은 시차를 두면서 글로벌 경기 모멘텀(상승동력)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양에 목이 마른 선진국들이 전략비축유 방출로 일단 응급조치를 취한 만큼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가 하반기 증시의 관건이다. 물가를 낮춰 소비를 위축시키지 않는 효과를 낳는다면 증시에 도움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조치로 끝나 미국 경기가 계속 시원치 않다면 투자자들은 또 부작용을 무릅쓰고라도 세 번째 돈 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자라면 증시에는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 그럼 미국이 괜찮아진다면 만사형통일까. 아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과, 아직은 ‘썩어도 준치’인 유럽이 문제다.
중국을 보면 요즘 물가 잡기에 한창이다. 시중에 돈을 회수해 부동산 등에 낀 거품을 제거하는 게 목적이다. 그럼에도 중국 물가를 보면 아직도 ‘꼭지’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이연신 교보증권 연구원은 “중국 소비자물가지수는 4월 전년 대비 5.3% 증가한 데 이어 5월에는 5.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극심한 가뭄과 홍수 등의 기상이변에, 주간 채소가격이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는 데다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소식은 당분간 물가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 꼭지라는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값이 내려도 문제다. 부동산과 연계된 지방자치단체 때문이다. 중국의 부동산은 은행과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으며, 은행은 증시 최대 업종이다. 2012년부터 지방정부가 가진 부동산 관련 채권의 만기가 돌아온다. 부채 문제가 악성으로 판명 날 경우 금융주를 중심으로 증시가 폭락할 수도 있다. 이철희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중국 지방정부의 부실 규모는 2010년 GDP의 5~8%에 해당한다”며 “2012년 10월 당대회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2013년부터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스 사태’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럽은 어떨까. 그리스 문제가 한고비를 넘겼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유럽 각국은 그리스의 빚과 관련돼 책임분담을 어떻게 할지 이견이 많다. 요즘엔 정부와 정부 간 다툼을 물론, 정부와 민간의 다툼까지 있다. 더 궁극적인 문제는 만기연장을 해줘도 과연 그리스가 갚을 능력이 있느냐다. 그리스는 해운과 관광이 주업인데, 당분간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리스는 유로화를 쓴다. 보통 경제가 어려우면 환율이 올라가서 수출경쟁력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빚 갚을 여력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리스는 그게 안 된다.
끝으로 국내를 보자. 가계부채 문제로 난리다. 개인들이 주식에 투자할 여력이 없으니, 주가는 계속 일부 부자들이나 외국인들이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기가 안 좋으니 수출기업이 대부분인 증시 핵심 종목들의 실적은 더 좋아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물가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개인은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에 소극적이다.
김철중 한국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증시를 긍정적으로 보는 논리 중 하나가 하반기에는 물가 안정이 나타나면서 가격매력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원자재 가격은 하반기에 안정세가 나타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증산과 국제에너지기구의 전략비축유 방출이 신호탄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인간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근원인플레이션(에너지·식품 제외, 핵심소비자물가)은 원자재 가격, 생산자물가지수(PPI)에 9~12개월 후행한다. 올 하반기 소비자물가는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물가 잡기 쉽지 않고, 따라서 물가가 안정돼야 이뤄지는 경기회복과 이에 따른 주가반등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