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수 의장 웹툰 싱크로율 100% ‘쌩얼+가발’ 투혼…“무논리 비난 이젠 그냥 넘겨, 저 철들었죠 ^^”
“‘지옥’은 미스터리한 작품인데 그 속에서 정진수는 미스터리 그 자체를 담당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그의 내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표현들은 최대한 지양하고 경계하려 노력했죠. 시청자들로 하여금 내면을 끊임없이 추측하게 만드는 것으로 극의 몰입감을 생성해야 하는 인물이기에 어떤 솔직한 표현이나 내면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어요.”
불특정 다수의 ‘죄인’들이 어느 날 천사로부터 지옥행 고지를 받게 되는 사회에서, 유아인은 고지와 관련한 정보를 손에 쥐고 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초대 교주 정진수를 맡았다. 사이비 교주라는 캐릭터의 속성이 대부분 그렇듯, 절대 진리를 통달한 것처럼 공허한 눈빛과 감정이 실리지 않은 나긋나긋한 말투가 특징적이다.
그러나 이야기 중반부에 다다라 밝혀지는 그의 반전을 알고 난 뒤 작품을 다시 본다면 유아인이 만들어낸 정진수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 유아인은 정진수를 연기하기에 앞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절망과 고독, 외로움이 어떻게 인간을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 수 있는지를 제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며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정진수를 보면 제가 20대 초반에 외로움에 심취해서 썼던 짤막한 글이 생각나요. 외로움의 ‘바이브’를 스스로 타면서 썼던 글인데, 그때 내가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내가 좀 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게 바로 절망에 빠진 인간들이 하는 생각이지 싶어요. 진수는 극단적으로 그 내면에 절망이 파괴적으로 표현되는 인물이란 점에서 저와의 차이가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외부로 전이하고자 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에 공감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현세에 대한 미련은 물론, 내세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정진수는 말 그대로 삶을 놓아버린 것 같은 초탈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내면에 맞춰 외양 역시 속세와는 동떨어진 듯한, 누가 봐도 ‘종교 쪽 사람’ 같은 모습이다. 이는 연상호 감독의 요구와 지시가 강하게 발현된 것이란 게 유아인의 이야기다.
“감독님이 다른 부분에서 강력한 주문을 하시는 편이 아닌데 비주얼에서는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요구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연기를 해야 했죠. 가발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지만 감독님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연상호 감독님은 배우에게 부담을 지워요. ‘알아서 잘해주실 거잖아요!’ 하시면서(웃음). 어깨에 어마어마한 짐을 지우시고 나 몰라라 하는 척하며 배우를 미치게 만드는! 그런데 저는 그걸 조금 도발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애쓰게 됐던 것도 있었고요(웃음).”
연상호 감독의 도발을 받고 정진수로서의 연기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유아인의 정수는 3부에서 만끽할 수 있다. 지옥의 고지에 대한 비밀이 조금씩 풀려나가면서 당시 시점으론 유일하게 고지의 진실을 알고 있는 정진수가 그간 절제하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신은 ‘지옥’ 시즌1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오래도록 묵혀온 감정이 분출되면서 정진수로서뿐 아니라 유아인으로서도 어느 정도 희열을 느끼진 않았을까. 이 질문에 유아인은 “그러면 맛이 간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런 느낌을 가질 순 있지만 연기하는 순간에 막 제 연기에 희열을 느끼고 그러면 큰일나요(웃음). 사실 3부 엔딩의 긴 대사를 소화할 땐 희열보단, 정진수라는 알 수 없는 인물로서의 표현을 해 내면서도 유아인의 의식이 그것을 통제하며 끝까지 가져간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그 순간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연기하는 인물의 성격으로 수렴하면서, 그것을 완성해 내고자 하는 의식이 가장 강하게 발현된 순간이었지 싶어요.”
연기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인간 유아인으로 바라보더라도 그는 전에 비해 더 깊어지고 여문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다듬지 않은 가시를 곤두세워 언제든지 반격 태세에 나설 준비가 돼 있던 과거와 달리 어떤 말이 나와도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흘려보내는 식이다. 바람이나 파도에 치여 깎여 나갔다기보다는 스스로 가시를 가다듬고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는 대로 그저 흔들리는 것이 최선이란 걸 깨달으면서다.
“저야 그런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잖아요(웃음).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나를 때리는데 거기에 핵심이 없고 논리가 없으면 그걸 스스로 그냥 수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게 가해지는 그 힘 자체가 때론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냥 내부가 텅 빈 솜방망이처럼 느껴질 때가 훨씬 많거든요. 그걸 떨쳐내면 되는데 너무 수용하면서 살아가던 때도 있었고…. 어쩌면 그런 과정이 싸움보단 세상과 사회, 사람들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내가 무뎌지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드는데, 그냥 긍정적인 측면에선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