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무허가 아파트” vs 지자체 “2014년 현상변경 등 허가”
김포 장릉(사적 제202호)은 조선 16대 왕 인조가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능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김포 장릉에서 반경 500m 이내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2017년 개정된 문화재보호법 35조1항2호와 김포 장릉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 고시 등에 따르면 문화재 반경 500m 이내에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아파트를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또 해당 구역에서 20m 이상 건축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장의 개별심의를 받아야 한다.
논란이 된 왕릉뷰 아파트는 검단신도시 4-1구역으로 3개 아파트 단지 19개 동이다. 이 3개 단지는 장릉에서 각각 213m, 375m, 395m 떨어져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해당 단지의 건축물에 대해 건설사와 인천도시공사, 인천 서구청, 김포시에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2019년 착공과 분양을 완료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천시와 김포시에서 허가해달라고 요청한 서류조차 (문화재청에)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 입장은 다르다. 인천 서구청은 2014년 8월 당시 사업시행자인 인천도시공사가 현상변경허가를 완료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2017년 강화된 고시를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천 서구청 관계자 "현상변경허가는 대물적 허가로 승계가 가능하다"며 "그럼에도 2017년 1월 문화재청 고시의 규제 내용을 적용해 다시 허가받게 하는 것은 법치국가원리와 소급효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소급효금지원칙이란 새 법이 제정되기 전에 발생한 행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다.
문화재청은 지자체에 이어 아파트 공사에 참여한 건설사들도 압박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장릉 450m 거리에 지어진 고층아파트 3개 건설사(대방건설, 대광건영, 금성백조)가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며 해당 구역에 있는 19개 동에 대해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또 3개 건설사들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후 건설사들은 명령 취소 소송 및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월 19개 동 중 12개 동의 공사를 중지하라며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줬다.
건설사들은 지난 10월 문화재청에 개선안을 전했다. 해당 안에는 △장릉색을 강조한 아파트 외벽색깔 변경 △아파트 지하 및 지하주차장 벽면에 옥경원 비석과 문인석(문관 형상으로 만들어진 돌) 패턴 도입 등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정작 사태의 근본 문제가 됐던 아파트 높이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는 같은 달 개선안에 대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최악의 경우 현재 골조공사를 마친 해당 아파트 단지에 문화재청의 철거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
건설사들은 억울함을 내비치고 있다. 건설사들은 2014년 인천도시공사가 검단신도시 부지를 매각할 당시 장릉 관리 주체인 김포시청에 문화재 주변 환경이 직간접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했고,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저촉 사항이 없다는 회신을 인천도시공사를 통해 받았다고 주장한다. 즉, 건설사들은 인천도시공사를 믿고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서 잘못이 없다는 얘기다. 건설업계에서는 3개 건설사가 문화재청이 철거 처분을 내릴 경우 인천도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불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2017년 9월 인천도시공사의 ‘인천 검단신도시 공동주택용지 공급공고’를 보면 장릉 500m 이내 구역인 AA12-2블록에 대해 △해당 필지의 일부 구역은 북측 김포시 풍무동 소재 국가 사적 제202호(김포 장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개발행위 제한 구역으로 2014년 8월 문화재청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김포시청에 검단신도시 조성에 따른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득했다 △해당 필지를 공급받은 자가 건축 공사를 착수할 때에는 김포시청을 경유해 문화재청에 현상변경허가에 의거 착수신고 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다시 말해 비록 인천도시공사가 현상변경허가를 받았다 해도, 건설사도 건축 공사시 해당 토지가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심의지역이라는 것을 김포시청이나 문화재청에 신고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측은 심지어 인천도시공사조차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김포시든 인천 서구청이든 인천도시공사든 건설사든) 문제가 된 구역에 대해 현상변경허가를 요청한 자료조차 없다”며 “요청했다면 관련 서류가 남아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건설사들이 고의로 누락하고 책임을 딴 곳에 미루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국내의 한 역사문화연구소 관계자는 “웬만한 건설사들은 법무팀을 두고 있으며 문화재와 관련된 일들을 무수히 겪었을 것”이라며 “이곳과 관련해서도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법원 등의 판단으로 미뤄보면 상황은 문화재청에 유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재청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재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장릉 경관 훼손 문제를 파악한 것은 올해 5월이다. 이 때는 이미 아파트 골조가 모두 올라가고 분양까지 완료된 상태였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골조가 올라가기 전 건설사에 장릉 훼손 문제를 언급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5월 전뿐 아니라 (지난 7월) 공사 중지 요구 전까지 문화재청으로부터 장릉 훼손 문제에 대해 들은 바 없다”고 강조했다.
김포시도 이번 사태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4년 인천도시공사가 김포시로부터 택지개발 허가를 받은 뒤 2017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됐는데 김포시 측에선 공사를 지켜보기만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정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장릉 관리주체인 김포시는 2017년 김포 장릉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 고시 변경사항과 검단신도시 내 아파트가 문화재청의 개별심의 대상임을 알았음에도 이를 인천 서구청에 알리지 않았고, 인천 서구청과 갈등 상황도 문화재청에 뒤늦게 알렸다. 김포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에서 고시를 한 것이기에 (인천시에) 따로 전달한 사안은 없었다”고 답했다. 문화재청이 공식적으로 알린 내용이기에 인천 서구청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화재청과 지자체 그리고 건설사들이 서로 다투고 책임을 미루기 바쁜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사람들은 예비 입주민들이다. 내년 여름 입주를 앞둔 이들은 혹시나 아파트가 철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아파트단지의 입주예정자들은 건설사 간담회에서 "문화재청, 인천도시공사, 인천 서구청, 건설사의 안일하고 성급한 행동으로 인해 국가의 주택공급정책에 따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입주예정자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