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전후로 국민청원 두 차례나 20만 명 달성해…‘조선구마사’ 전철 밟을까
20일 오전 10시 기준 '설강화'의 방영 중지를 청원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에는 24만 6600여 명이 동의했다. 앞서 방영 전에도 '설강화'는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이 22만 6000여 명의 동의를 이끌어냈던 바 있다. 같은 작품이 부정적인 이유로 두 번이나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가고, 불과 며칠 만에 20만 이상의 청원을 받은 것은 '설강화'의 사례가 최초다.
대중들은 '설강화'가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를 미화했다고 지적해 왔다. 청원인은 "'설강화'는 방영 전 이미 시놉시스 공개로 한 차례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내용으로 큰 논란이 된 바 있으며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해당 드라마의 방영 중지 청원에 동의했다"며 "당시 제작진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으며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1화가 방영된 현재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간첩인 남주인공을 운동권으로 오인해 구해줬다"며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서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것은 분명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짚었다.
청원과 더불어 분노한 대중들은 '설강화'에 협찬한 기업들에 이 같은 논란 사실을 알렸다. 앞서 '조선구마사'의 사례에서 협찬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이 방영 중지의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을 습득한 덕이다. 논란을 알게 된 다수의 협찬사에서는 제품 협찬 취소 의사를 밝혔고 이는 대중들의 '돈쭐 내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례로 협찬사인 떡 브랜드 '싸리재마을'은 지난 12월 19일 오후부터 밀려드는 주문으로 제품 발송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공지를 올렸다.
이외에도 패션브랜드 '가니송', 기능성차 전문 브랜드 '티젠'을 비롯해 도자기 브랜드 '도평요', 인테리어 전기벽난로 브랜드 '한스전자' 등이 협찬 중단 의사를 밝혔다. 또 가구브랜드인 '흥일가구'는 이미 최초로 문제가 제기됐던 지난 3월 협찬 철회를 결정한 바 있다.
'설강화'는 걸그룹 블랙핑크의 지수의 정식 연기자 데뷔이면서 첫 주연을 맡은 드라마라는 점에서 국내외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시대 배경이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협찬사가 붙은 것도 그런 관심을 방증했다. 특히 해외 OTT인 디즈니플러스에서 독점 스트리밍하고 있어 해외 팬들의 실시간 시청도 가능하다.
이 탓에 '설강화'의 논란을 놓고 해외 시청자들과 국내 시청자들 간의 지속적인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외 시청자들의 대다수는 "한국 시청자들은 역사적 사실 왜곡과 극적인 재해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 네 삶을 살아라"라고 국내 여론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국내 시청자들은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이 문제에 왈가왈부하지 마라. 외국인들의 저속한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과거 세대들이 피흘려 싸우며 쟁취해 낸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거세게 맞불을 놓고 있다. 이 같은 설전은 해외 대형 K드라마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 SNS에서 지난 3월부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설강화'의 첫 번째 제작 폐지와 방영 중지를 촉구했던 20만 명 청원에서는 청와대가 "방송법 제4조는 방송사의 편성과 관련해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으며 법률에 의하지 않은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특히 창작물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내용에 대해 창작자, 제작자, 수용자 등 민간에서 이뤄지는 자정노력 및 자율적 선택을 존중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설강화'를 옹호하는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문제 없다고 인정한 작품에 한국 시청자들이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던 만큼, 청와대의 두 번째 답변에 관심이 집중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