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속 비리 거물들 “국회로 왓!”
▲ 지난 12일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 특위 민주당 간사인 우제창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저축은행 국정조사의 증인채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내놓은 증인 명단은 총 192명에 달해 증인 채택을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연합뉴스 |
그러나 법조계 주변에서는 수사권이 없는 국조특위가 사건의 본질에 근접하기에는 분명 현실적 한계가 있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면책특권이 있는 국조특위만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국조특위에 소속된 여야 의원들이 증인채택 협상을 위해 마련한 증인 명단은 민주당 103명, 한나라당 89명 등 총 192명에 달한다. 이 명단에는 전·현직 총리와 장관급 인사는 물론 여권 실세를 포함한 현역 의원도 10여 명이 포함돼 있다. 특히 민주당은 한때 이명박 대통령도 증인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이를 접는 대신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포함시켰다.
여야의 증인 요구가 봇물을 이루면서 증인채택 협상 단계부터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어, 결국 여야 협상을 통해 신청한 증인들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조특위가 시작단계부터 여야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야당이 먼저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국조특위 야당 의원들은 7월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축은행의 불법 자금이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 흘러간 정황이 있다”며 선방을 날렸다.
이와 관련 국조특위 야당 간사인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이 이영수 전 한나라당 청년위원장을 통해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에게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의 전당대회에 총 24억 원을 전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우 의원은 또 “저축은행 비리의 본질은 권력형비리 게이트”라며 “그럼에도 검찰 수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지지부진한 답보상태이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국정조사에서는 권력형 비리 게이트의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14일 삼화저축은행 불법자금 수수설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김기현 대변인도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24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은 고사하고, 단 한푼도 이와 관련해 당 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또 “우제창 의원이 거론한 이영수 씨는 당 청년위원장직을 맡은 바가 없고, 지난 2003년 당 중앙위의 분과위원장직을 역임한 것이 전부”라며 “우 의원이 언급한 기간에 어떤 당직도 맡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해명과 반박에도 불구하고 불법자금 수수설은 저축은행 사태의 새 뇌관으로 급부상하면서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우 의원이 지목한 이영수 KMDC 회장의 역할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버마 해상 4개 광구 동시 탐사개발권을 따낸 국내기업 KMDC의 회장을 맡고 있다. 당시 업계 주변에선 자원개발사업 경험이 전무하고 설립 8개월 된 신생업체가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한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6월 7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KMDC가 어느 날 갑자기 버마 유전광구를 확보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노골적 특혜가 있었다”며 “이 회사의 회장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주도한 ‘선진국민연대’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앞장선 ‘국민성공실천연합’의 새 이름인 ‘뉴 한국의 힘’ 단체의 회장 이영수 씨”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최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은 지난해 1월 버마를 방문해 새만금방조제 기술전수 문제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협력 의사를 표명했다. 5개월 뒤인 6월에는 이 회장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국회 버마 자원외교 방문단’ 소속으로 버마를 3박4일 방문해 정부 인사들과 만나 육상 및 해상광구 공동개발 문제를 논의했다. 12월에는 박 전 차관이 ‘한·버마자원협력위원회’에 KMDC를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과 함께 위원으로 포함시켜서 버마를 방문했다. 그 뒤 KMDC는 버마 정부와 양해각서(MOU) 단계를 아예 건너뛰고 계약을 체결했다.
현 정부 인사로 분류되고 있는 이 회장 사업을 박 전 차관을 정점으로 한 정부가 막후 지원한 게 아니냐는 게 최 의원이 제기한 의혹의 골자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회장이 박 전 차관과 여권 핵심 실세인 A 씨 등 여권 내에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얀마 개발권은 물론 최근 제기된 삼화저축은행 자금 한나라당 유입설 과정에도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또 전일저축은행 사건에 여권 고위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국조특위를 통해 여권을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검찰은 이 은행 대주주 은인표 씨가 여권 실세인 P 전 의원에게 구명로비 청탁과 함께 7억 원의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규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은 씨가 보석 석방 및 형 집행정지 등 청탁과 함께 P 전 의원에게 금품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은 씨를 상대로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또 은 씨가 한나라당 중진인 L·J 의원과 L 장관, 정보기관과 사정기관 수장을 지낸 거물급 등 또 다른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금품 로비를 한 첩보를 입수하고 진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인사들 중에는 구속수감 중인 은 씨와 면회를 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국조특위를 통해 삼화저축은행의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에 유입됐다는 의혹 및 여권 실세들을 상대로 한 전일저축은행의 전 방위 로비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삼화저축은행 리스트’에 오르내린 바 있는 정진석 전 정무수석, 권재진 민정수석,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 박지만 씨 부부,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을 증인명단에 포함시킨 상태다.
국조특위의 적극적인 행보에 맞춰 검찰도 자존심 회복을 벼르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검찰은 저축은행 사태의 키맨으로 지목받고 있는 핵심 브로커들의 신변을 확보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는 캐나다로 도피한 부산저축은행그룹 로비스트인 박태규 씨를 인터폴을 통해 공개 수배하는 등 핵심 키맨들에 대한 신변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박 씨의 국내 송환을 위해 캐나다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 인도청구를 요청하고 캐나다 이민국을 통해 여권취소 후 강제퇴거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은 또 최근 구속된 저축은행 사건 관련 브로커 3명을 상대로 정·관계 로비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P 전 의원을 비롯 여권 실세들을 상대로 한 전일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 정황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검찰은 김준규 전 총장 퇴임이후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등 사정라인에 대한 인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저축은행 수사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