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하늘’에 두개의 ‘달’ 떴다
▲ 한국여성바둑연맹이 사단법인 설립한 후 자축하는 모습(왼쪽)과 한국아마추어여성바둑연맹이 지난 6월 개최한 바둑대회. |
그것도 아니다. 사단법인 여성연맹에 프로는 없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여성 바둑인들의 단체가 졸지에 두 개가 된 것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일단 여성연맹은 31회 대회가 말해 주듯 꽤 오래 된 단체. 1970년대 결성된 한국여성기우회가 전신이니 40년의 연륜이다. 한국기원의 관철동 시절, 프로기사들은 바둑 인구 저변 확대의 일환으로 여성들에게 무료로 바둑을 가르쳐 주었고, 자연스럽게 수강생들이 모인 ‘여성기우회’가 한국여성기우회로, 한국여성기우회가 여성연맹으로 발전해 온 것.
여성기우회가 1990년대 초반에 여성바둑연맹으로 이름을 바꾼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연맹’이란 이름이 별로라고 생각해 “연맹은 구시대적이며 너무 딱딱하다. 여성기우회가 더 낫다”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가 연맹의 주요 회원들로부터 격렬하게 비난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어쨌거나 한국여성기우회, 한국여성바둑연맹의 발자취는 이름 그대로 한국 여성 바둑의 역사다. 그 세월 속에 한국 최초의 여자 프로기사 윤희율, 조영숙을 비롯해 왕년에 여자 아마국수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던 서진주 김혜순 김상순 김영 노상희 고형옥 등과 이들을 이끌었던 신덕순 신용주 한일랑 회장 등이 있었다.
윤희율은 일본 유학 시절 일본 여류 아마본인방 타이틀을 차지해 국제적으로도 유명했는데 일찍이 은퇴했고, 조영숙은 현재 여류프로 최고참으로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다. 여성기우회 회장을 여러 번 지냈던 신덕순 전 회장은 여성기우회의 터전을 닦아 놓은 대모이며 신용주 전 회장은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시훈 9단의 어머니이고, 한일랑 전 회장은 롯데그룹 신준호 회장의 부인.
여성연맹은 관철동 회관 때는 방도 변변히 없었지만, 한국기원이 훨씬 크고 넓은 지금의 홍익동 건물로 이사 와서는-지금은 이 건물도 좁아졌지만-5층에 널찍한 방 하나를 차지했고, 대바협이 생기면서, 본부는 그냥 한국기원에 있는 상태에서 대바협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가 올해 2월에 독립을 천명하며 ‘사단법인 한국여성바둑연맹’으로 다시 탈바꿈한 것이다. 요컨대 대바협 그늘에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굳이 독립만세를 불러야 했던 이유가 뭘까. 독립을 앞장서 주도한 여성연맹 승순선 현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얘기의 요점은 이렇다.
우선 대바협 산하에는 시도별 협회와 초-중·고-대학, 그리고 아마추어 여성들의 바둑연맹이 있는데, 같은 연맹이지만 학교와 여성은 성격이랄까, 개성이 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일리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여성연맹은 대바협과는 별개로 이미 자체 전국 조직을 구축해 있고 역량도 상당해져 있어 굳이 대바협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것. 대바협의 지원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재원을 마련하고 사업을 펼치는 데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대바협의 지원이 흡족하지 않았다는 뉘앙스가 읽히는 대목이다.
여성연맹이 나가자마자, 두어 달 후에 여성연맹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것이 여성아마연맹이다. 여성연맹은 지난해 이맘 때부터 대바협에 구체적으로 독립 의사를 밝혔는데, 대바협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2주일 간격으로 따로 대회를 여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인데, 행여 시쳇말로 두 단체 사이에 원조 경쟁, 주도권 다툼, 그런 게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농담 삼아들 하는 말이지만 바둑동네에서는 여성들이 남자보다 더 사나운 싸움바둑이라고 하지 않는가. 벌써 현실적으로 감지되는 게 있다.
처음에 말했듯 여성연맹대회는 한국기원에서, 여성아마연맹대회는 분당에서 열렸는데, 같은 인터넷 바둑 사이트인데도 전자는 타이젬이 보도했고, 후자는 사이버오로가 보도했다. 한국기원 자회사나 마찬가지인 사이버오로가 한국기원에서 열린 전통의 여성연맹대회를 보도하지 않고 새로 생긴 대바협의 여성아마연맹대회를 보도했으니 묘하다.
옛날 일이 생각난다. 1974년 이른바 ‘기사파동’이란 게 있었다. 한국기원 행정에 반발해 프로기사들이 한국기원을 나가 따로 ‘대한기원’을 만들었던 사건이다. 대다수가 대한기원에 합류했고, 일부가 잔류, 일부가 중립을 지켰다. 한국기원과 대한기원은 각자 입단대회도 따로 개최했다. 그때 한국 프로바둑의 정통은 대한기원에 있는 것으로 인정이 되었다. 기전을 주최하는 신문사들도 대부분 대한기원 편이었다. 두 기원은 1년 남짓 지나 통합했다.
글쎄, 생각이 다르면 갈라설 수도 있는 것이고 선의의 경쟁은 상승작용의 선기능이 있는 것이어서 이번에도 굳이 통합을 거론하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여성아마연맹은 왜 그렇게 서둘러 나타난 것인지. 도움 받지 않고 따로 나가서 잘 살아 보겠다는데 대바협이 굳이 반대할 것은 없지 않았을까. 연맹 숫자가 많아야 대바협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어서 그랬던 건 아닐텐데. 여성 바둑인구가 아직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