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 등 캐릭터 거래 플랫폼 만들고 먹튀…‘개인간 거래, 우리와 무관’ 이젠 안 통해
2021년 12월 22일 광주지법 형사12부(노재호 부장판사)에서 선고된 유로피아 판결을 두고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가 내린 평가다. 유로피아는 2020년 법조계와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P2P 사기 사건 '몽키레전드'가 낳은 또 다른 P2P 사기 사건이다. 몽키레전드와 비슷한 P2P 사건으로 확인된 피해만 70억 원 이상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20년 7월 '유로피아'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박 아무개 씨가 몽키레전드를 검색하면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2020년 7월 박 씨는 검색창에 ‘몽키레전드 사기’를 검색했다. 몽키레전드는 P2P 사기 사건의 원조 격으로 원숭이 캐릭터를 사고팔아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던 사건이다(관련기사 ‘원숭이’ 사고팔면 월수익 150%? ‘폭탄 돌리기’ 신종 사기 조심해!).
가상 캐릭터를 온라인에서 개인끼리 사고팔면서 이자 이익을 얻는 방식인데, 결국 이 캐릭터를 판매하지 못하고 가장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폭탄 돌리기는 1000억 원 이상 피해를 주며 막을 내렸다. 박 씨는 몽키레전드 사기를 검색하면서 이미 이 같은 방법이 사기라는 것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9월 박 씨는 유로피아 대표직을 이 아무개 씨에게 맡겼다. 속칭 ‘바지사장’이다. 이들은 몽키레전드와 비슷하게 가상 캐릭터를 구매하면, 보유기간에 따라 이자가 늘어나고 캐릭터를 사람들끼리 사고팔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의뢰했다. 몇 번의 수정 작업 끝에 이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구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겉보기로는 일반적인 투자 플랫폼이지만 뒤에서는 관리자가 결과를 수정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마련해뒀다.
2020년 11월에는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얻고 유로피아 운영을 시작했다. 대표를 맡은 이 씨는 홍보를 시작했다. 이 씨는 ‘업계 최초 신용도에 따라 올라가는 수익률’, ‘쇼핑몰 모든 상품 100% 포인트로 구매 가능’이라고 기재해 뒀다. 박 씨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방장으로 활동하며 유로피아를 홍보했다.
몽키레전드가 원숭이 종류에 따라 투자금이 달랐다면 유로피아는 국가 별로 차등을 뒀다. 이탈리아는 13만 원, 프랑스 52만 원, 영국 144만 원 등이다.
이 캐릭터는 해당 국가와 상관있거나 투자하는 게 아닌 단순 캐릭터일 뿐이다. 캐릭터를 산 뒤 3~5일 뒤에 수익률이 올라간다. 프랑스를 예로 들면 52만 원에 최초 발행된 뒤 4일 뒤 가격이 14% 오른다. 1차에 52만 원이었던 프랑스는 매 4일마다 2차에 59만 원, 3차에 67만 원, 4차에 77만 원 등으로 올라 20일 만에 100만 원을 돌파한다.
24일 뒤인 7차에 114만 원까지 오른 프랑스는 두 개로 분할해 67만 원에 판매한다. 나머지 차액은 유로피아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와 가상상품 구매에 필요한 티켓으로 돌려준다.
재판부는 “가상상품은 쪼개져서 늘어나는데 이걸 매입할 신규 회원을 지속적으로 모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면서 사업 구조 자체가 사기라고 판단했다.
유로피아가 자랑한 쇼핑몰은 회원들 수익금으로 그때그때 온라인 최저가로 사 재판매한 것에 불과했다. 재판부도 유로피아가 회원들에게 신뢰를 주거나 이들의 돈이 유출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쇼핑몰을 운영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이 씨와 쇼핑몰 담당 직원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2021년 1월 10일 직원이 ‘2~3주인데, 쇼핑몰 디자인을 바꿔야 하나. 2~3주짜리 쇼핑몰 새로 만들라고 맡기는 게 돈 아깝다’고 하자, 이 씨가 ‘돈 아까운 게 아니고 그게 돈 버는 거다. 어차피 2~3주지만 쇼핑몰 리뉴얼도 하고 제대로 더 가겠구나 인식만 심어주면, 설마 이렇게까지 업데이트하고 터트리겠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터지지 낄낄낄. 200만 원 안 넘는 선에서 찾아보라”고 말했다.
이들은 캐릭터 발행뿐만 아니라, 차명 계좌를 동원해 41억 원가량의 가상상품(캐릭터)을 구매하고, 일반 회원에게 캐릭터를 사고 다시 파는 방법으로도 수익을 챙겼다.
재판부는 “(유로피아는) 차명 회원 이름으로 일반인인 것처럼 캐릭터를 구매해 판매하면서 가격을 올리고, 티켓비를 취득하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보유한 캐릭터를 전부 판매해 이익을 얻은 뒤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대화 내용, 사무실 계약 기간 등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이들은 2021년 1월 말에는 사업을 종료하려고 했다. 캐릭터가 약 4일마다 14% 복리로 오르기 때문에 몇 달만 지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캐릭터를 수억 원에 사줄 사람이 나타나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업을 지속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그들의 계획대로 유로피아는 짧고 굵게 종료된다. 유로피아 측은 "경쟁 P2P 플랫폼 관계자의 디도스 공격과 해킹으로 인해 사이트가 마비돼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수사기관이나 이들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로는) 유로피아 운영이 중단될 만큼 공격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씨와 이 씨는 재판부에 “가상상품을 구매한 뒤 다른 회원들과 거래 매칭이 이뤄질지 여부는 우연에 달려 있다. 돈을 걸고 우연에 따라 거래가 되기 때문에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도박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재판부는 도박이라는 주장을 ‘유로피아 측도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유 없다’고 봤다.
법원은 실질적 대표 박 씨와 명의 대표인 이 씨에게 각각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다수와 역할을 분담해 사기 범행을 목적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해,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일부 합의를 했지만, 손해를 보고도 고소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다수 있고, 합의 금액이 실질 피해액의 33%에 불과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은 검찰과 유로피아 측 모두 항소해 1월 6일 상소 법원으로 송부됐다. 특히 이 사건 판결에서 개인 간 거래나 이익이 제3자에게 귀속된 경우에도 사기죄 구성 요건인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상준 변호사는 “현재까지는 여러 P2P 사건에서 주범들은 매칭률 조작, 차명 계정을 통한 범죄 수익을 발생시키고도 개인 간 거래는 본인들과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빠져나가거나 처벌을 약하게 받았다. 하지만 이 판결이 정착될 경우 P2P 범죄 처벌이 더 쉬워질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