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게임사 잇단 투자…국산 코인 ‘카피 기술’ 인식 탓 테라 제외 부정적, 명확한 목표·비전 제시가 관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유튜브 경제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밝힌 입장이다. 2021년 8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입당 직후 “암호화폐를 사실상 받아들이면서 그 거래가 방해되지 않도록 하는 미국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거대 양당 대선 후보 모두 가상자산에 전격적인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몇 년 전 정치권 다수가 ‘가상자산은 튤립 사기’라는 입장이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정치권이 가상자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폭 증가한 가상자산 투자자 때문으로 보인다. 계산 방식을 두고 논란은 있지만, 국내 가상자산 거래량이 코스피, 코스닥을 넘어선 날도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1위 업체인 ‘업비트’ 이용자는 900만 명에 육박한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인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Non-Fungible Token)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등 엔터 기획사와 엔씨소프트, 위메이드 등 게임사 등이 진출을 선언한 바 있다. 기업들은 NFT 신사업을 발표하는 동시에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기도 했다. 넥슨은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비트코인 약 1130억 원어치를 매수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국내에서 국한된 게 아니다. 글로벌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질 뿐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나 직접 진입도 눈에 띈다. 나스닥 상장사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비트코인을 지속적으로 매입해 약 7조 원어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12월 1일 트위터 창업자인 잭 도시가 이끄는 모바일 결제 기업 스퀘어는 회사명을 블록으로 변경하고 블록체인 기업 변신을 선언했다.
월스트리트 전통적 투자자로 꼽히는 인물들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거나 가상자산 매입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데이빗 삭스 페이팔 COO(최고운영책임자)나 페이스북 출신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등도 이더리움 킬러로 불리는 ‘솔라나’에 투자해 한화로 조 단위의 큰돈을 벌기도 했다. 거품인지 혁신인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뭔가 큰 변화가 오고 있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에서 가상자산을 두고 가장 큰 논쟁이 벌어진 건 2018년 1월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과 함께 출연한 가상자산 토론에서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규정했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약 2만 달러 수준이었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약 5만 달러 수준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블록체인은 튤립 사기일까, 신세계로 가는 키일까.
이 질문에 대답이 될 수 있는 가상자산 프로젝트 회사들이 국내에도 있다. 흔히 국내 가상자산 프로젝트는 ‘김치’라고 불린다. 가상자산 프로젝트 국가에 따라 대표 음식으로 이름 붙이는 유행 때문이다. 미국은 햄버거, 일본은 스시 등이다. 하지만 김치라는 별명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가고 있다. 흔히 ‘김치는 걸러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투자 관련 유튜브 ‘김단테’ 채널을 운영 중인 김동주 이루다투자일임 대표는 이런 선입견이 생긴 배경으로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특징을 꼽았다. 김 대표는 “보통 ‘김치코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닌 다른 코인을 카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때문인지 김치코인 중에서 테라를 제외하면 크게 성공한 게 없기도 하다”면서 “주식도 국내 주식 말고 미국 주식에 투자하라는 말처럼 미국 선호 현상도 있는 것 같다. 또한 언어의 제약 때문인지 커뮤니티를 글로벌하게 끌고 가는 데 한계도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 블록체인 회사 대표는 “국산 코인이 특별히 더 사기가 많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상자산 판에 사기는 원래 많다. 다만 국산 프로젝트를 접촉하는 한국인이 많다 보니 그런 인식이 많아진 것 같다. 국산 코인 가운데 괜찮은 프로젝트도 많다”고 말했다.
국산 가상자산으로 꼽히지만 ‘탈김치’로 꼽히는 테라도 있다. 탈 김치는 국내를 벗어나 글로벌급으로 올라섰다는 뜻이다. 현재 가상자산 시가총액 규모 9위에 올라섰다. 테라 재단의 가상자산인 루나의 시가총액 규모는 37조 원 정도다. 테라는 국내 비중이 극히 적고 해외에서 훨씬 더 많이 쓰이고 거래된다.
국내에서도 테라와 같은 가상자산 프로젝트가 나왔지만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덮어놓고 가상자산은 사기라고 하기도 하고, ‘김치는 안 된다’는 인식도 여전하다. 국내 가상자산 업체들이 어떤 목표나 비전으로 돈을 쏟아 부으면서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들어볼 기회는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일요신문은 2022년 ‘창간 30주년의 해’를 맞아 국내 가상자산 프로젝트 회사들과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그 미래를 엿보려고 한다. 이들이 블록체인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가 들어보고 이들이 바꿔나갈지도 모르는 미래를 보고자 한다. 아직도 덮어놓고 사기라는 말로 무시하기에는 가상자산 업계 규모가 너무나 커지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사기 프로젝트 사이에서 기술 혁명의 꽃이 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