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땀으로 혼 머금은 놋그릇을 탄생시키다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됐다. 삼국시대 들어 불교문화와 접목되면서 한반도의 유기 공예는 획기적으로 발전했으며, 신라의 경우 ‘철유전’이라는 국가 전문기관을 두어 놋그릇을 만들도록 했다.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유기 공예는 더욱 꽃을 피웠다. 얇고 빛깔이 고운 유기들이 ‘신라동’ ‘고려동’으로 불리며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경공장(궁이나 관아에 배속된 장인)으로 13인, 외공장(지방 관아에 배속된 장인)으로 35인의 유장(유기장)을 배치해 각종 기물을 생산하도록 했다. 사기그릇이 대중적인 식기로 쓰이던 시대였음에도 놋쇠로 만든 유기는 상류층 사이에서 부의 척도로 여겨졌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점차 일반 가정에서도 식기로 사용되었다.
유기는 구리와 합금하는 금속의 종류 및 그 비율 등에 따라 색깔과 질이 결정된다. 구리에 아연을 합금해 만든 그릇은 황동유기, 니켈을 합금해 만든 그릇은 백동유기라 불린다. 전통적 의미의 유기는 구리 1근(약 600그램)에 주석 4냥 반(약 168.7그램)을 배합한 우리 특유의 놋쇠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주석 함량이 10% 이상이면 합금이 깨지기 쉬운데, 구리 78%와 주석 22%의 황금 배합을 찾아내 가장 단단하고 탄성이 높은 그릇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유기의 종류는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 등으로 나뉜다. 전통 유기를 만드는 과정은 기법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방식으로든 불과 쇳물 앞에서 끊임없이 인내하고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기물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방짜는 놋쇠를 녹여 부어 둥근 덩어리(일명 바둑)를 만든 후 여러 명이 망치로 두들기고 펴고 우그리고 쳐서 모양을 만드는 기물을 말한다. 땀과 혼이 담긴 수천 번의 메질(망치질)을 거쳐 강도와 탄성이 빼어난 방짜가 완성되는 것이다. 방짜 방식으로는 식기뿐만 아니라 밥상이나 징, 꽹과리 등 악기도 만들어진다. 특히 평안북도 납청 마을에서 만든 방짜는 품질이 우수해 따로 ‘납청유기’라 불렸다. 방짜의 전통은 이봉주 유기장 명예보유자를 거쳐 아들인 이형근 현 보유자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주물유기란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그릇이다. 그 제작 과정은 놋쇳물을 주형(틀)에 부어 원하는 기물의 형태를 만드는 ‘부질 작업’과 기물의 표면을 깎고 다듬어 유기의 본색을 내주는‘가질 작업’으로 나뉜다. 필요에 따라 여기에 손잡이를 붙이거나 조각 등을 하는 ‘장식 작업’이 더해진다. 조선 중기 이후 경기도 안성 지방에서 질 좋은 주물 유기를 생산했는데, 한양을 비롯한 각지의 사대부 양반들이 앞다퉈 이곳에서 반상기 등을 맞춤 제작하여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주물유기의 전통은 근대기부터 안성에서 활동해온 고 김근수 명예보유자의 뒤를 이어 아들인 김수영 현 보유자에게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 반방짜는 주물 및 방짜 방식을 병행해 만드는 기물로 전라남도 순천 지방의 그릇이 유명하다. 이처럼 유기는 지역별로 독특한 양상으로 발전하였고, 실용성 높은 고유의 공예품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전통 유기는 조선이 몰락한 후에도 한동안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일제가 전쟁 준비에 혈안돼 대대적인 금속 공출에 나서면서 그 맥이 단절될 위기에 처하고 만다. 장인들이 산속에 숨어들어 유기를 제작해 겨우 명맥이 이어질 정도였다. 광복 이후에 유기는 수요가 급증하며 한때 전성시대를 맞게 되지만, 대도시의 연료로 장작 대신 연탄이 널리 쓰이면서 하향길에 놓이고 만다. 독한 연탄가스에 의해 녹이 슬거나 누렇게 변색되는 특성 때문에 소비자로부터 차츰 외면당하게 된 것이다. 그 빈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대량 생산되는 값싼 스테인리스 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이었다.
대중에게 잊히던 유기가 다시 우리 밥상 위로 ‘소환’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고유의 놀라운 품질 덕분이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놋그릇이 독성이 없고 항균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알려지면서 혼수품 정도로 명맥이 겨우 유지되던 전통 유기들이 생활용기로도 새롭게 조명받게 된 것. 특히 메르스 사태 이후 전통 유기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식이 한류의 한 축으로 떠오르면서, 식기로서 유기가 지닌 장점도 재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전통 유기는 구리와 함께 함유된 주석 성분으로 인해 보온 효과가 뛰어나고 은은한 빛깔이 일품이라 기품 있는 식기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가장 위생적이고 견고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멋진 그릇을 탄생시킨 선인들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료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