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는 안해도 아침은 ‘꼭꼭’
골프는 어떨까? 간혹 이른 아침 티오프 시간이 잡혀서 아침식사를 거르고 서둘러 라운드를 돌 때가 있다. 서너 홀을 돌면 어질어질해진다. ‘탄수화물 내놔!’ 뇌에서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실제로 골프 칠 때 아침식사로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해 놓지 않으면 젖산 같은 피로 물질이 쌓여서 활력이 저하된다고 하니, 아침밥은 골프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다. 라운드를 마친 후도 마찬가지다. 끝나고 먹는 밥은 그 어떤 밥도 꿀맛이다. 공이 안 맞은 날은 더 허기가 진다. 밥으로라도 그 공허함을 메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밥심이 제일 필요한 운동은 골프라고 생각한다.
LPGA에서 활약하는 최나연 선수는 밥을 좋아한다. 혼자 이것저것 반찬 만들어서 밥해먹는 착한 취미가 있다. 근처에 사는 청 야니가 최 선수의 집에 자주 놀러간다. 한국의 불고기, 김치찌개를 아주 좋아하는 이유가 절친 최나연 때문이다. 미국에서 혼자서 밥을 해먹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예전에 최나연 선수가 엄마의 음식솜씨를 자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밥 먹는 사진을 보여 준 적도 있었는데 밥상에 반찬이 그득했다. 기본 반찬 10가지 이상 항시 대기라고 하니, 오늘날 최나연의 성과는 엄마표 밥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KLPGA에 성격 좋기로 유명한 함영애 선수가 있다. 작년에 프로 데뷔 이후 첫 승을 했다. 부모님이 경주 근처에서 한식당을 한다. 올해 경주에서 한국여자 오픈이 열렸을 때 이 식당을 찾은 적이 있다. 김치 맛이 일품이었다. 엄마 밥을 먹기 위해서 아무리 먼 곳에서 대회가 열려도 가급적이면 집에서 다닌다는 함 선수의 말이 이해가 갔다.
최경주 선수와 양용은 선수는 모두 결혼을 한 후 외국투어에 도전했다. 나는 이들의 맹활약이 마누라 밥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아내 밥, 부인 밥, 와이프 밥보다는 밥 앞에는 왠지 마누라가 어울린다^^). 두 선수 모두 집밥의 효력으로 투어에서 받는 치열한 중압감을 감내하지 않을까?
얼마 전 ‘디 오픈대회’에 참가한 양용은 선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됐다. ‘승렬이를 위해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했는데, 좀 달게 됐네요!’ 엄마 밥이 그리울 어린 후배를 위해서 집밥을 먹이고 싶어 하는 선배의 마음이 문구에서 읽혀졌다. 평소에도 투어 다닐 때 후배들 때문에 한식당 위치 알아보는 게 주된 업무라고 얘기할 정도니, 달게 된 두루치기라도 얼마나 꿀맛이었을까 상상이 간다.
그러고 보니까 밥을 대충 먹는 건 골프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열심히 먹는 자에게 복이 있다. 스코어는 밥에 달려있다! 오늘부터 더 열심히 밥을 먹어야겠다.
골프는 밥이다!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