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후보, 대장동·김건희 등 예상지 뽑아 ‘열공’…이재명 ‘방심은 금물’ 윤석열 ‘해볼 만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양당 후보 첫 TV토론을 1월 30일 혹은 31일에 열기로 했다. 당초 설 연휴 전으로 합의했지만 국민의힘이 연휴 기간인 1월 31일 저녁 황금시간대를 요구하면서 논의가 길어졌고, 1월 19일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다.
앞서 윤석열 이재명 후보는 토론 개최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 후보가 여러 차례 토론을 제안했지만 윤 후보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서였다. 이 후보는 2021년 12월 21일 “윤 후보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준석 대표 뒤로 피하지 말고 누가 과연 이 나라 미래를 담당할 만한지 한 번 보여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그러자 윤 후보는 2021년 12월 25일 “토론을 하면 서로 공격 방어를 하게 되고 자기 생각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토론 무용론’으로 맞받았다.
이는 정치 신인으로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윤 후보는 경선 때부터 여러 차례 말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1일 1실수’라는 말까지 회자됐다. 그럼에도 윤 후보 측이 법정 토론이 아닌, 설 연휴 전 양자 토론에 응한 것은 ‘이재명과의 승부를 피하려 한다’는 정가 안팎에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후보 측에선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토론 실력에 있어선 이 후보에 열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윤 후보 역시 무시할 만한 ‘내공’은 아니라는 이유다. 윤 후보 최측근 인사는 “국민의힘 경선 때 홍준표 후보가 어디 만만한 사람이냐. 하지만 크게 밀리진 않았다. 그 이후 윤 후보는 짧은 기간 산전수전 겪고, 공부도 많이 했다. 이번 TV토론에서 이 후보에게 속수무책 당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번 TV토론이 안철수 후보 상승세를 꺾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집권 여당 후보와 양자 토론을 하는 1야당 후보의 모습이 전국으로 중계될 경우 지지율 상승에도 유리할 것이란 의미다. 국민의당은 정의당과 함께 거대 양당 후보만으로 진행되는 TV토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법원에 방송중지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다.
윤석열 이재명 후보가 처음으로 맞붙는다는 것 이외에도 TV토론이 설 연휴 기간 열린다는 점에서 정가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밥상머리 민심’의 최대 승부처가 TV토론으로 치환됐기 때문이다. ‘지역 앞으로’를 외치던 윤석열 이재명 후보 측은 ‘TV 앞으로’ 모여들 유권자들 잡기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여야 캠프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토론 준비에 한창이다. 두 후보는 예상 질문지를 뽑아, 가상스튜디오에서 모의고사를 치른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후보 측은 언론전략기획단장 황상무 전 KBS 앵커가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윤 후보는 검찰총장 청문회, 국민의힘 경선을 거치면서 네거티브 공격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이재명 후보보다 분명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토론이 말솜씨로 결판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진성성과 콘텐츠로 승부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후보 측은 그동안 ‘TV출연팀’을 전담했던 박주민 의원을 중심으로 토론준비팀이 보강됐다. 이 후보가 토론의 ‘달인’으로 불리는 만큼 윤 후보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평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며 신중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 후보는 민주당 경선 때 ‘바지 한 번 내릴까요?’라고 했다가 도마 위에 올랐었다.
이재명 후보 측의 한 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는 준비된 대통령이다. 모든 부문에서 윤 후보와 비교가 되겠느냐”면서도 “가장 요구되는 것은 ‘겸손’이다. 윤 후보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다. 상대방이 도발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의 적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구체적인 토론 방식 주제 등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두 후보가 나란히 대형 악재에 휘말려 있는 데다, 최근 각종 녹취록 보도로 예민해진 만큼 난타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대장동 게이트’ ‘김건희 리스크’ 등 두 후보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사안들이 집중 거론될 전망이다. 이 경우 TV토론은 정책보다는 네거티브 공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장동 게이트’는 공통적인 역린으로 꼽힌다. 윤 후보가 대장동 게이트를 꺼낼 경우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자금의 뿌리가 된 ‘부산저축은행 수사’로 맞받아치는 장면이 예상된다. 윤 후보는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간 논란이 됐던 여러 공약을 놓고도 일전이 불가피하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등을 정조준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후보가 최근 꺼내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 원 등을 따져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TV토론은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중도‧무당층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평가 받는다. 두 후보가 초접전 양상으로 흘러가는 만큼 TV토론이 중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 지지율은 오차 범위 내에서 혼전 양상을 나타낸다. 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기관 4곳이 1월 17~19일 공동으로 실시한 다자구도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34%를 기록하며 윤 후보(33%)를 오차범위 내인 1%포인트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TV토론이 결집된 지지층을 움직이게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을 이기려면 중도층을 얻어야 한다. 20~25%의 중도층의 표심을 사기에는 TV토론만 한 게 없다. (TV토론 결과는) 중도층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