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왕’, 천공, 항문침, 건진법사, 무정스님…‘제2 최순실 사태’ 비판 “핵심은 주술 아닌 비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월 18일 무속인 관여 의혹이 제기된 선대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무속인 개입’ 논란이 불거진 지 하루 만이다. 그간 여러 차례 무속 논란에 휘말렸던 만큼, 이 사실이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을 빠르게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1월 17일 세계일보는 국민의힘 선대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에 무속인 전 씨가 윤 후보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건진법사로 알려진 무속인 전 씨가 부인 김건희 씨 소개로 윤 후보를 만나 메시지와 일정, 인사에 관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전 씨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전부터 캠프의 외곽 조직인 이른바 ‘양재동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는 “황당한 이야기”라며 “당 관계자한테 소개 받아 인사를 한 적 있지만 그분은 직책을 전혀 맡고 있지 않다”고 무속인 개입설을 전면 부인했다. 국민의힘 역시 “선대본부 일정, 메시지, 인사 등과 관련해 개입할 만한 여지가 전혀 없다”며 전 씨를 “무속인이 아닌 대한불교종정협의회 소속 기획실장”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이 단체는 2018년 가죽을 벗긴 소 사체를 제물로 바치는 행사로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데다 정식 교단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전 씨가 1월 1일 네트워크본부를 방문한 윤 후보에게 사무실 직원들을 소개해줄 당시 윤 후보 등을 툭툭 치는 영상이 나오면서 국민의힘 해명은 더욱 무색해졌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윤 후보 등을 그렇게 치는 게 흔한 일이냐”라고 반문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진 모르지만, 보통 가깝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윤 후보를 둘러싼 무속 논란은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졌던 것이다. 경선 토론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기고 나와 수많은 억측을 낳았던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윤 후보는 “지지자가 녹화 직전에 써준 것이라 지울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앞선 토론에서도 여러 차례 왕 자를 적고 나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은 확대됐다.
또 윤 후보는 ‘천공’을 둘러싼 주술 논란으로 유승민 전 의원과 맞붙은 바 있다. 윤 후보는 부인 김 씨와 함께 만났지만, 천공을 믿은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천공은 유튜브를 통해 신도들에게 ‘정법’을 강의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말기암 환자와 사지마비 환자가 자신의 강의를 통해 자연치유됐다고 주장해 ‘사이비’ 논란도 일었다. 정법 강의로 인해 금전적 피해가 막대하다는 청와대 청원도 2018년에 올라왔다.
노병한 관상가, 이병환 항문침 전문가도 윤 후보와 가까운 무속인으로 꼽힌다. 노 씨는 2021년 8월 윤 후보와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과 식사 자리에 동참했다. 항문에 침을 놓아 기를 불어 넣는다는 이 씨 역시 2021년 6월 윤 후보의 수행을 도운 인물로 알려졌다.
여권에서는 윤 후보 무속 논란을 부인 김 씨와 연관 지어 바라보는 시선이 팽배하다. 무속이나 역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김 씨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를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김 씨의 ‘무속 사랑’에 대해 “검찰 내에선 유명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특히 삼성동에 위치한 모 점집이 용해 자주 찾는다는 후문이다. 다만 이 점집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씨를 모른다”고 일축했다.
1월 16일 MBC ‘스트레이트’에 보도된 김 씨의 ‘7시간 녹취록’에서도 무속 관련 발언이 나왔다. 김 씨는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으로 칭하고 “도사”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씨는 ‘쥴리 접대부’ 의혹에 대해 “나는 나이트클럽도 싫어하는 성격”이라며 “내가 되게 영적인 사람이라 나는 차라리 이렇게 도사들하고 ‘삶은 무엇인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건진법사 역시 김 씨가 윤 후보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1월 19일 2013년 김 씨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코바나컨텐츠 행사에 건진법사의 딸이 스태프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열린공감TV’는 2021년 10월 12일 방송에서 “충주 일광사 주지인 ‘혜우스님’에 따르면, 건진법사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키웠고 신내림 받은 무속인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부근에서 자리 잡았으며 성신양회 시멘트 회장 등 재벌들이 찾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김 씨와 연관된 무속인 중에는 역술인 ‘무정스님’도 있다. 김 씨는 2021년 7월 20일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정스님이 너는 석열이하고 맞는다며 주선해 결혼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김 씨는 무정스님을 두고 “말이 스님이지, 진짜 스님은 아니다”며 “점쟁이 그런 게 아니라 진짜 혼자 도 닦는 분”이라고 했다.
여야는 윤 후보 무속 논란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여당은 ‘제2의 최순실’ 만들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월 18일 “국민의힘도 ‘굿힘당(굿+국민의힘)’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씨는 부적 갖고 다니고 또 박근혜 전 대통령한테 최태민 목사 굿하라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고, 실질적으로 정윤회 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무속인하고 같이 있었다는 그런 (국민들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즉각 ‘방어 모드’에 들어갔다. 제2의 최순실 사태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 논란이 계속 확대될 경우 국민의힘 중도층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준석 대표는 1월 18일 ‘노영희의 뉴스IN사이다’에서 ‘오늘의 운세’를 언급하며 “많은 비과학적인 것을 개인이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 부분이 있다”며 “이런 것 때문에 우리 후보 배우자가 영부인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라고 옹호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주술 논란의 핵심은 부인 김 씨의 비선 논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수민 평론가는 “핵심은 무속보다는 비선”이라고 본다면서 “배우자가 여러 방면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본인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논란,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현실과 동 떨어진 무속인들이 정치적인 일정이나 계획을 건드리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며 “(김 씨가) 전면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는 건 윤 후보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