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두번 잃기 전에 판·검사 모시기
▲ 이종왕 삼성 법무실장 | ||
지난해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법무실 강화를 지시하면서 한 얘기다. 최근 증권집단소송 도입, 공정거래법의 강화, 적대적 자본의 경영권 공격, 특허를 둘러싼 법적 분쟁, 기술 유출, 적대적 M&A 등 기업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만큼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환경이 높아지고 있는 것. 때문에 기업들마다 법무팀을 강화하는 추세다. 삼성의 경우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고, 에버랜드가 가지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을 가지고 논란을 빚고 있어 법적 전문성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SK그룹은 분식회계와 관련해 그룹 총수가 연이어 법적 처벌을 받은 데 이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법무팀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편 LG그룹은 (주)LG가 지주회사로 출범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법률 문제를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아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기업들의 법무팀 강화 전략은 검사·판사 출신의 법조계의 전문인력을 끌어들이는 것이 두드러진다. 지난해부터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법무팀 강화의 움직임이 제기되면서 올해 초 검찰과 법원 인사이동 시기에 검사들과 판사들의 기업행이 대거 이루어지기도 했다.
법조인맥 끌어들이기에 가장 열성적으로 나선 곳은 삼성그룹. 지난해 7월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을 법무실로 승격시키면서 법무실장(사장급)으로 김&장 대표변호사인 이종왕 변호사(56·사시17회)를 영입했다. 이종왕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동기로 막역한 사이다. 이 변호사를 영입한 삼성으로서는 정부와의 관계가 아무래도 부드러워지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 (왼쪽부터) 삼성은 이재용 상무(왼쪽)의 편법상속 의혹과 관련된 송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3월의 (주)SK 주총에서 소버린측이 최태원 회장의 재신임 부결을 주장하고 있다. | ||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지검 특수1·3부장을 지낸 서우정 서울고검 검사(48·사시23회)를 부사장급으로 영입했다. 서 변호사가 특수1부장에 재직 당시 옆 사무실인 특수2부에서 삼성 이재용 상무에 대한 편법상속 의혹을 조사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의 영입에는 이종왕 법무실장이 발벗고 나섰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8월 이종왕 변호사와 함께 영입된 유승엽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38·사시35회)와 김수목 광주지검 부부장검사(41·29회)도 각각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대검 연구관을 지낸 바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사위인 이상주 전 수원지검 검사(35·사시35회)가 삼성화재로 입사했다.
올해 초에도 판검사 출신 인사 영입은 계속됐다. 유병규 순천지청 부부장검사(40·사시32회), 서울지법 판사를 지낸 이현철 변호사(41·사시35회), 김상균 서울지법 부장판사(46·사시23회), 성열우 대법원 재판연구관(46·사시28회)이 삼성행을 택했다. 김상균 전 판사는 2003년 6월 최태원 SK(주)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바 있다.
현재 삼성그룹에서 일하는 변호사는 1백10명 선이다. 삼성그룹은 변호사 수를 3백명까지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법률 수요가 매년 늘어나는 만큼 필요 인력을 계속 보강하겠다는 것이다. 매년 공채로 변호사들을 뽑는 데다가 유능한 인재는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오겠다는 것이 삼성의 방침이다.
삼성이 판검사 출신 인사 22명을 영입했지만 LG와 SK는 각각 3명, 5명만 두고 있다. SK는 지난해 1월 국내 사법고시를 합격한 법조인으로 강선희 변호사(39·사시30회)를 그룹 최초로 상무급으로 영입했다. 그 전까지는 3명의 국제변호사가 있었다. SK그룹은 2003년 SK사태 때 현직 판검사와의 인적 네트워크가 없어서 아쉬움에 컸다고 한다.
▲ LG 법무팀은 지주회사 출범 및 지배구조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평이다. | ||
지난해 6월 SK그룹은 윤리경영실을 신설하면서 김준호 대검중수 3과장(47·사시24회)을 부사장급인 윤리경영실장으로 영입했다. 김 전 검사는 강금실 법무장관 때 정책기획단에서 개혁업무를 담당해왔다. 올해 3월에는 사내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과는 신일고-고려대 3년 선배로 막역한 사이이다.
올해 초에는 김윤욱 전 서울지검 검사(36·사시35회)를 상무급으로, 남영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47·사시26회) 등 2명을 영입했다.
LG그룹의 경우는 삼성과 달리 법조계 출신 인사들에 대한 영입은 활발하지 않다. 전직 판검사 출신 3명을 포함해 지주회사인 (주)LG에 9명, 그룹 전체로는 총 28명의 변호사가 있다. 비변호사까지 합하면 법무팀 인력은 1백여 명에 달한다.
(주)LG의 김상헌 법무팀장(41·사시28회·부사장급)은 서울대 법학과와 하버드대 석사, 서울지법 민사부 판사를 지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 팀장 덕인지 (주)LG는 국내에는 생소한 법률문제인 회사분할, 현물출자, 공개매수, 합병 등의 문제를 잘 처리해 (주)LG의 지주회사 출범 및 지배구조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LG화학 등 계열사 법무팀은 미국 로스쿨에 유학보내는 등 해외경험 쌓기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과 광주지검 검사를 지낸 이종상 전 검사(37·사시31회)는 2003년부터 상무급으로 (주)LG의 법무팀에 재직하고 있다.
두산도 올해 초 박용만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전략기획본부에 법무팀을 신설하고 임성기 전 창원지검 검사(44·사시29회)를 팀장으로 영입했다. 두산은 한국중공업, 대우종기 인수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어 법률적 전문성을 필요로 했다. 현대건설은 올해 처음으로 변호사를 채용했고 포스코와 KT 등 기업들도 변호사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