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지난 17일 정몽규 HDC 회장이 결국 HDC현대산업개발(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6일 만이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현장 붕괴 사고 때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겠다”며 사과한 정몽규 회장은 불과 7개월 만에 같은 지역에서 또 붕괴 사고가 일어나자 버티지 못했다.
그러나 정몽규 회장의 회장직 사퇴는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정 회장이 내려놓겠다는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은 원래 미등기였다. 더욱이 그룹 지주사인 HDC 회장을 비롯해 겸직하고 있는 4개 계열사 등기임원 자리는 고수할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사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해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서 18억 원에 가까운 보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등기이기에 법적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반면 권리와 혜택은 가장 많이 받은 것이다.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해서 정 회장이 완전히 손을 뗄 것으로 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정 회장은 그룹 오너이며 현대산업개발의 최대주주인 HDC 회장이다. 또 HDC의 최대주주는 정몽규 회장이며 2대주주인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정 회장의 개인회사다. 오너인데다 지분관계상 정 회장이 현대산업개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 회장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장님’ ‘반쪽 사퇴’ ‘책임 회피성’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 정 회장이 포기한 것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자리가 아니라 연간 18억 원에 가까운 보수다. 잇단 사고로 참혹함에 빠진 희생자와 가족들이 잃은 것에 비할 수 없다.
정몽규 회장은 “대주주 역할은 다하겠다”고 했다. 지주사 HDC가 일주일 만에 40%가량 빠진 현대산업개발 주식을 사들였고, 정 회장은 그런 HDC 주식을 사들이면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HDC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가가 폭락한 시기에 지분을 늘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뭘 해도 좋은 말을 듣기 힘든 상황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철거하려는 건물을 도로 쪽으로 쏟아냈고 한창 짓던 아파트를 무너뜨렸다. 시공능력평가 9위 건설사의 실력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철거작업과 건설작업 모두 엉망이었다. 7개월 사이 일어난 두 건의 사고로 창졸간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사람만 20여 명이다. 그들은 단지 버스를 타고 가던 선량한 시민들이었고 사랑하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던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여태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아무 죄 없이 화를 당한 사상자와 실종자들은 억울하기 그지없고 그 가족들은 망연자실해하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전국의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진행하겠다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지 주민들은 현대산업개발에 알아서 나가달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 24개 아파트브랜드 중 평판 순위 4위였던 아이파크는 한순간에 24위, 꼴찌로 추락했다. 현대산업개발과 아이파크를 내건 공사 현장에는 회사명과 브랜드를 가리기 급급하다.
정몽규 회장이 진정성을 피력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싶다면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미등기 회장자리에서만 내려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룹 경영진에서 모두 물러나겠다고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급락하는 자사 주식을 매입하는 데 사재를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사고 수습과 희생자 그리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데 써야 한다. 사고 수습과 피해자 지원에 현대산업개발 돈이 아닌 세금이 쓰였다는 얘기가 이미 나오고 있다. 가능한 한 밤낮으로 사고 현장을 찾아 머리를 숙이는 정성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현대산업개발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등 최고 수위의 징계가 예상되고 있다. 정몽규 회장의 정성과 책임 있는 자세는 이와 별개다.
임형도 일요신문i 본부장 hdl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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