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먹는 밥이 훨 맛있다굽쇼?
▲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혼자 놀기를 즐기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다. 직장 여성들 중에는 혼자만의 자유를 갈망하는 경우가 유독 많다. 이들은 타인과의 조율로 머리가 아픈 것 보다는 깔끔하게 혼자 결정하고 시행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A 씨(여·35)는 이번 휴가 때도 혼자 여행을 다녀 올 계획이다.
“지난해 휴가 때도 혼자 필리핀에 갔다 왔어요.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더군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낯선 여성과 방을 같이 쓰긴 했지만 그것도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고요.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북적대면서 일하고 야근하고 돌아오면 개인적으로 조용히 하루를 돌아볼 시간도 부족해요. 그런 일상을 보내고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여행까지 누구와 함께하고 싶진 않아요. 일정을 짤 때도 서로 이런저런 조율을 해야 하고 여행 가서도 이야기를 계속 하거나 들어줘야 한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죠.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휴가 때가 오면 항상 어디로, 누구랑 가느냐고 묻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냥 가족여행 간다고 얼버무려요.”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O 씨(여·31)도 직장에서 조용한 아웃사이더로 지내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면서 맡은 일은 제대로 해내니 함께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않아도 크게 뒷말이 있거나 하진 않는단다. 그는 점심도 주로 혼자 먹는다.
“뭘 먹을 때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같이 먹을 때 상대방 말이 많은 것도 싫더라고요. 천천히 맛도 좀 음미하면서 여유 있게 먹고 싶은데 동료들하고 먹으면 이야기 하랴, 들으랴 정신이 없죠. 게다가 어찌나 빨리들 먹는지 그 속도에 맞추느라 체할 때도 있었어요. 저는 책이나 신문을 보면서 천천히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가끔 별미가 먹고 싶을 땐 고급 일식당에 가서 혼자 먹고 와요. 처음 방에서 혼자 먹을 땐 머쓱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회사 사람들하고 먹으면 대부분 사무실 근처에서 매일 비슷한 메뉴를 시켜야 하죠. 가격이 좀 센 일식당에 가자고 하면 다들 들고 일어날걸요?”
최근에는 남성 직장인들도 고독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짬짬이 시간 내서 우르르 커피 한 잔,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것보다 혼자인 게 편하다는 사람들이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S 씨(30)는 금요일 저녁을 홀로 보내는 것을 즐긴다.
“금요일에 회식이 많은 편인데 강제가 아니라서 다 참석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회식에 불참하면 회사 생활에도 문제가 있으니까 보통 적당히 참석하고 1차 정도에서 일어납니다. 일부러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도 힘들고 노래방이라도 가면 망가져야 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 걸 잘 못하기도 하지만 딱 질색이에요. 술자리에 가지 않거나 일찍 빠져나온 날에는 혼자 바(Bar)나 음악 듣는 클럽에 갑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해서 크게 들으며 술 한잔하는 게 다같이 어울려서 왁자지껄하게 먹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외식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K 씨(31)는 회사에서 베스트드레서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옷에 관심이 많고 실제 매장에 가는 일도 많다. 그는 퇴근 후나 주말에 주로 하는 일이 ‘나홀로 쇼핑’이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옷 사러 혼자 돌아다니는 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어요. 옷 구경하고 싶을 때는 억지로 친구를 불러내서 같이 보곤 했습니다. 지금은 혼자 다닙니다. 친구랑 시간 맞출 필요도 없고, 퇴근하고도 마음이 동할 때 갑자기 갈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쇼핑할 때 보통 여자들보다 더 오래,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이라 참을성 있게 같이 다녀주는 사람도 없고요. 백화점이야 혼자 다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동대문 쇼핑타운 같은 곳은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잘 다닙니다. 이거 사라, 저거 괜찮다 하면서 옆에서 바람 넣으면 신경 쓰여서 말이죠. 혼자 다니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문화생활 역시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하는 ‘나홀로족’이 부쩍 늘었다. 함께 즐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혼자 보고 느낀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P 씨(여·29)는 영화 마니아다. 퇴근 후 종종 영화관에 들러 영화를 보고 오거나 주말에도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을 즐긴다.
“일종의 ‘귀차니즘’이에요. 약속을 잡고 또 같이 보는 사람과 내가 모두 만족할 만한 영화를 선택하고 이런 과정들이 거추장스럽더라고요. 직장동료나 친구들하고 영화를 보면 근사한 저녁 먹어야죠, 보고나서 차나 맥주 한잔해야죠. 간단하게 때우고 얼른 영화만 보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판 분위기를 깰까봐 그냥 따라가야 하는 것도 싫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영화 볼 때 같이 간 사람이 말 시키는 걸 안 좋아하는데 거의 100% 말을 시킵니다. 대꾸를 안 하면 당연히 사이가 소원해지고요. 그래서 혼자 봅니다. 요새는 전시회나 뮤지컬 같은 것도 단체 아니라도 할인율이 커서 대부분 혼자 봅니다.”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C 씨(30)도 퇴근 후 여가 시간이나 주말을 혼자 보낼 때가 많다. 집에서 혼자 놀기보단 카페 같은 곳을 자주 찾는 편이다.
“노트북 가져가서 커피 마시면서 웹서핑도 즐기고 책도 보고 그럽니다. 남자 혼자 커피숍에서 ‘우아 떨고’ 있으면 어색하던 시절은 갔죠. 사람들이 북적 대며 시끄럽게 떠드는 카페에 혼자 있으면 오히려 안정감을 느껴요. 안 그래도 회사에서 상사나 선후배들한테 이리저리 시달리면서 근무하는데 또 누구랑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혼자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고요. 일단 혼자 있으면 말하기 싫을 때 말 안 해도 되잖아요. 회사 동료들이건 친구건 함께 있으면 궁금하지도 않은 거 물어보고 관심도 없는 이야기해야 할 때도 많아서 혼자 노는 게 제일 편합니다.”
집단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던 시대가 서서히 가고 있다. 일하면서 부대끼는 일이 많아서인지 타인과의 공감보다는 분리가 더 필요하다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이런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발전하지만 않는다면 혼자 노는 것도 나쁠 건 없어 보인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